사냥개 메리

사냥을 즐기던 아버지의소울메이트

by 기억창고

장에 다녀온 아버지가 큰 개를 몰고 나타났다. 사납고 영리해 보이는 셰퍼드 종이었다. 개를 처음 본 어머니는 ‘우야꼬, 무슨 개가 송아지만 하노’라고 했다.

대청마루 아래서 늘어지게 게으름을 부리던 토종개 워리가 낯선 침입자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듯 맹렬하게 짖어댔다. 워리를 흘깃 쳐다본 그 개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음날이었다.

헛간에 임시로 만든 개집에는 끊어진 목줄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온 동네에 개를 찾으러 다녔다. 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는 옛 주인을 찾아 나섰다. 개가 영리해서 가족처럼 지냈다고 한 전 주인은 장터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나 걸리는 중학교의 선생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상처투성이가 된 메리가 아버지와 함께 나타났다.

새벽에 컹컹 짖으며 계속 문을 긁어 환청인 줄 알았다가 문을 여니 상처투성이의 개가 옛 주인을 보고 푹 쓰러졌다고 한다. 어림잡아 백 여리가 넘는 밤길을, 험한 산등성이를 몇 개를 넘는 동안 덤불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된 개를 보고 주인은 기가 막혔다고 한다.


하룻밤 사이에 개는 동네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충성심과 영리함을 갖춘 개를 보러 오는 사람이 늘자 아버지는 튼튼한 나무로 근사하게 개집을 짓고 이름을 ‘메리’라고 지었다.

다갈색 몸통에 눈과 입, 귀 주위로 검은색 털을 가진 메리는 영특하고 기품 있었다. 집에 누군가 오면 무조건 짖어대는 워리와는 달리 메리는 정말로 낯선 사람만 짖었다. 치열한 눈치작전이 시작되었다. ‘왕왕’하다가 점잖게 있는 메리를 보고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는 워리는 잘못을 깨달은 뒤 어른들 뒤에 숨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촌은 긴 휴식기를 갖는다.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거나 멍석을 만들며 겨울을 보내던 아버지가 공기총 한 자루를 샀다. 면허세도 내고, 일정기간마다 총을 가지고 면사무소에 가서 안전진단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새 취미를 어머니는 별로 환영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군에 있을 때 뛰어난 소총수였다는 것을 알고는 ‘꿩고기가 맛있다는데 꿩이나 많이 잡아 오소’하고 말했다.


아버지와 몇 번 사냥에 나간 메리는 아버지의 예상대로 사냥에 특화된 개가 되었다. 총알이 날아간 방향을 정확히 보고 아버지의 신호에 따라 꿩이나 비둘기, 토끼를 잽싸게 물어오고, 아버지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짐승의 방향을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짓으로 알려주며 사냥을 매우 즐기는 개가 되었다. 그렇다. 메리는 사냥개였다. 사냥을 갔다 온 날의 메리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야생의 본능을 한껏 곧추서게 한 아버지를 대하는 메리의 모습은 절대신을 믿는 신자 같았다.

아버지도 자식만큼 소중하게 메리를 돌봤다. 아버지가 있는 곳엔 항상 메리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보호자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메리가 있으면 격한 환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발자국 소리를 들은 메리가 대문 밖으로 나와 가슴팍까지 뛰어오른 뒤 바로 턱 밑에서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본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두 발을 쿵 바닥에 놓고 가방을 끌었다. 한창 놀기 좋아한 남동생은 대문 밖에서 ‘메리, 가방’, 하고는 놀러 갔다. 메리는 동생의 가방을 물어다 마루에 턱 얹었다.

칠, 팔 년 여의 시간이 훌쩍 갔다. 메리도 늙어갔다. 왕성하던 활동량이 줄고 식욕도 줄었다. 메리가 우리 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할머니가 맨 먼저 알아차렸다. 아마도 겨울 초입인 것 같다. 양지쪽에서 햇볕 바라기를 하던 개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할머니는 ‘기운도 없는데 어딜 가노’ 하면서 메리를 나무랐다. 저녁밥을 먹은 후 할머니는 메리가 곧 떠날 것 같으니, 이별을 준비하라고 했다. 산과 들에서 메리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영악한 짐승이라 제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니 누구든 메리를 잘 살펴보거라. 짐승도 내 가족인데 밖에서 죽어서야 되나’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메리에게 ‘네가 쉬고 싶은 곳을 찾거라, 이렇게 넓은 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야지. 밖에 나가지 말고’라고 자꾸 타일렀다.

며칠 뒤 메리가 사라졌다.

우리는 메리를 찾아 나섰다.


집 뒤는 대밭이었다. 대숲 끝자락에 밤나무 댓 그루가 자랐는데 자라면서 간격이 솔아 몇 그루를 베어냈다. 베어낸 옹이구멍에 칡이 자랐다. 우리가 칡을 캘 때 메리는 켜켜이 쌓인 댓잎 위에 뒹굴기를 좋아했다. 그곳에 메리는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메리를 묻었다. 도루코 칼로 ‘메리 지묘’라고 새긴 대나무 십자가를 무덤 앞에 세웠다. 우리 집에서 천수를 누린 최초의 개 메리와 함께 한 아름다운 시간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