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장날

by 기억창고

N장과 처음 대면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외갓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차역에서 집까지는 1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마침 장날이었다. 아버지는 추운데 뜨뜻한 국물이나 먹고 가자며 역전에서 가까운 장터로 우리들을 데려갔다.


시퍼런 칼바람에 맥을 추지 못하는 정오의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미 파장인 듯 난전을 걷는 장꾼들 틈으로 대충 둘러싼 얇은 비닐천막이 펄럭이는 곳으로 들어섰다.

국밥을 푸던 주인 내외는 ‘아이고 오늘 어린 손님들과 같이 오셨네’ 하면서 우리를 반겼다. 그릇 몇 개 겨우 얹을만한 나무의자 겸 식탁에서 국밥을 드시던 어른 몇이 어린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비닐 자락 사이로 연신 바람이 몰아쳤지만 불기운 탓인지 한 데보다 한결 온기가 돈다. 장작불이 검붉게 사그라드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누리끼리한 기름기가 도는 맑은 국물이 맴돌이를 하며 부연 김을 위로 날리고 있었다. 콩나물 몇 가닥과 고기 서너 점에 비개가 뜨는 국은 밍밍해 보였지만 밥을 말아 목젖으로 넘기는 순간 구수하고 칼칼한 맛이 구미를 확 당겼다.

‘후루룩후루룩’, ‘아부지 맛있어요’.

한 대접의 국그릇을 싹싹 비웠다. 먹어본 소고깃국 중 가장 맛있는 국이었다.

동생도 그날을 기억할까?


나는 지금 동생 차를 타고 엄마에게 가는 길이다. 마침 장날이라 장을 봐서 가기로 한다.

‘거기 국밥 맛있었는데...’

흘리는 내 말에,

‘장터국밥 지금도 유명해, 일부러 소고기국밥 먹으러 그 장에 가는 사람들도 많다니까’,

‘뭐? 아직도 국밥이 있어?’

세상에, 50년 전의 국밥이 지금도 있다니, 나는 갑자기 흥분되었다. 거무레한 기억이 팔딱이며 살아난다.

장터로 달려가는 마음을 꽉 막힌 차들이 훼방을 놓는다. N장은 없는 거 빼고는 다 있는 큰 장이라 장날이면 이렇게 사람들이 몰린다는 거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은 장터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시대에 발맞추어 열심히 살았다는 의미다.

장터 근처에는 넓은 들판이, 차로 이삼십 여분 거리에 각각 바다와 큰 산이 대각선으로 뻗어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농산물, 해산물, 축산물이 골고루 있어서 살림을 제대로 하는 근방의 주부들이 꼭 가볼 장으로 꼽고 있단다.

예전에 유명했던 우시장을 옮기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주차난이라며 간신히 차를 댄 동생이 볼멘소리를 했다.


번화한 도시의 한가운데처럼 장터는 복잡했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아치형 지붕 아래 반듯하게 나눠진 구획마다 신선한 물건들이 넘쳤다.

비릿한 바다 냄새를 풍기며 펄떡이는 생선은 종류마다 다르게 붉은 대야의 뽀글거리는 물속에 담겨 있었고, 맞은편엔 싱싱한 야채와 과일 등이 푸짐하게 쌓였다.

옷과 생필품,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도 '날 데려가시오' 라며 너른 장터를 구역마다 차지하고 있다.

난전도 여전히 있었다. 갓 뜯어서 미처 다듬지 못한 봄나물과 약초뿌리를 투박한 손으로 다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어린 시절의 이웃들을 보았다. 그때는 듬성하던 공간이 빼곡히 차 있었다.

난전의 한끝에서 ‘뻥이요’가 '뻥뻥' 소리를 낼 때마다 하얀 연기가 공중에 흩어지며 곡물의 고소한 맛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마약 토스트에 마약 김밥도 지나가는 행인을 자꾸 불러 세운다. 장날은 살아 있었다.


‘말린 생멸치 지금 나올 때거든, 그거 사지 않을래?’

내 생각을 읽은 듯 동생이 말했다. 이럴 땐 하이파이브라도 해야 되나.

손가락만 한 굵은 생멸치를 꾸덕하게 말려서 된장과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등을 넣고 짭조름하게 조린 밑반찬을 우리는 좋아했다. 구수하고 쫄깃한 멸치볶음은 입맛이 떨어지는 초봄의 밥상에 언제나 환영받는 반찬이었다.

몇 군데의 건어물 가게를 거친 뒤에 ‘고향이 여어지요? 이건 먹어본 사람만 찾는 건데 오늘은 많이 찾네, 이게 다’ 라면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주인이 웃으면서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 멸치조림은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가야 한다.

보리 밀떡과 쑥 인절미, 팥앙금 빵 등 어른들이 좋아할 한 먹거리를 가득 사서 집으로 향했다.

국밥을 먹고 싶었으나 고향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 우리끼리 먹을 수는 없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변하고 있는 것은 더 많다.

수확의 흔적이 남은 들판은 햇살 속에 졸고 몇 년 전부터 보이던 아파트는 더 늘어나 삐죽거리며 산을 가린다.

드디어 성성한 대숲에 둘러싸인 푸른 기와집이 빼꼼히 모습을 내민다. 그 아래쪽은 깃발 몇 개가 펄럭이는 반듯한 마을회관이다.

회관에는 노동력을 상실한 마을 어른들이 모여 당신들이 살아오고 지켜온 이곳을 기억하면서 지금은 도회로 다 떠나고 없는 자녀들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바쁘게 사는 동안 고향은 나와 무관한 듯 지냈다. 삶에 대한 무게가 좀 가벼워진 요즘에야 내게 찾아와서 오래 묵었던 이야기를 쭈빗쭈빗 건넨다. 죽은 듯 엎드려 있던 살아있는 순간들을 알맞게 곰삭은 언어로 끄집어낸다. 따닥 거리는 모스 부호처럼 공기 중에 부유하다가 뒤늦게 나를 걸고넘어지는 신호들, 미세한 떨림이나 작은 눈짓들이 오늘은 또 무슨 말을 전해 줄까 기대하면서 고향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