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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거 Feb 14. 2016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삼국유사따라 길떠나기 / 포항 운제산 오어사

                                      

내리 사흘을 겨울비가 내린 뒤에 날이 맑았다. 화창했으므로 창가에 내리쬐는 햇살만 믿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가 낭패를 당했다. 햇살 뒤에 숨어있던 차가운 바람이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오어지는 꽁꽁 얼어붙었다. 바람은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언 강을 건너오면서 비수가 되어  몸속으로 파고 들었다. 문득 삼국유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황룡사의 말단스님인 정수가 한겨울에 얼어 죽어가는  거지여자에게 옷을 벗어 입혀주고  자신은 발가벗고 돌아왔다는  '정수사구빙녀' 이야기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절간 어디에도 추위에 떠는 나그네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해수관음상 조성, 대웅전 천불호신불모시기, 일주문 건설 사업을 알리는 현수막과 광고물이 어지러울 뿐이다.

               

 오어사는 짙푸른 호수를 앞에 두고 수직의 직벽이 병풍처럼 둘러싼 배산임수 터다. 호수에는 최근 나무데크를 설치한 둘레길과 호수의 남북을 연결하는 원효교가 들어서 관광명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천년사찰에 호수를 낀 아름다운 경관 덕에 휴일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몰려든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오어사 이야기는 대략 1,500년전쯤 전 이야기이다. 혜공스님과 원효스님을 통해서다. 오어사는 본래 항사사(恒沙寺)였는데 이 두 스님의 장난 때문에 이름이 오어사로 바뀌었다. ‘항사’는 바로 풀면 ‘인도의 갠지스강의 모래알’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수로 비유된다.  

               

항사사가 오어사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경위를 『삼국유사』「이혜동진」편은 이렇게 전한다.“원효가 여러 가지 불경을 풀이하면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나 혜공스님에게 가서 묻고 혹은 서로 희롱했다. 어느날 혜공과 원효가 시내를 따라 가면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다가 돌위에서 똥을 누었다.

                

혜공이 원효를 가르키면서 농담을 했다. ‘그대는 똥을 누었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이 절을 오어사라고 했다.” ‘너는 똥을 누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여시오어汝屎吾魚)’에서 절이름을 따왔다.혜공은 생명체를 생명이 있던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원효는 잘 소화시킨 밥 찌꺼기를 결과물로 내놓았다. ‘여시오어’는 유사 곳곳에 나오는 원효의 몇차례 굴욕 중 하나다.    

            

삼국유사에서 묘사되는 원효는 굉장히 인간적이다. 그는 신라시대 불법의 고수들에게는‘밥’이었다. 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엑스트라였고 일진들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푼수’였다.   

              

 사복과의 일화 하나만 더 소개하자. 역시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사복은 12살까지 말도 못하고 기어다니던 모자란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가 죽자 원효가 함께 장사를 지내게 됐다. 원효가 시신 앞에서 빌며  ‘나지 말 것을, 죽는 것이 괴롭나니. 죽지 말 것을, 나는 것이 괴롭거늘’ 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복은 말이 많다고 핀잔한 뒤 ‘죽고 낢이 괴롭구나’라고 고쳤다. 천하의 원효가 첨삭지도까지 받는 굴욕을 당했다. 문장은 간단하고 명쾌해야 의사전달이 잘되고 강력한 힘이 생기는 법이다.

               

오어사는 한국 불교사에서 강력한 빛을 발하는 큰 별들이 총총한 은하계다. 신라 시대 흥륜사에는 신라의 10대성인 소상이 있었는데 그중 혜공, 의상, 자장, 원효 네 조사가 오어사에 머무르며 지팡이를 걸고 신발을 벗었던 터전이었다고   ‘영일운제산오어사사적’(1774년)이 전하고 있다.  

               

사적에 따르면 오어사를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는 운제산 이름은 원효와 의상,혜공과 자장에 관한 설화에서 비롯됐다. 원효와 의상은 남쪽 벼랑바위에 살았고 혜공과 자장은 북쪽 산꼭대기에 머물렀다. 구름(雲)을 사다리(梯)처럼 걸쳐놓고 오갔다고 해서 운제산, 구름사다리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자장과 원효 의상은 중국의 종남산 운제사에서 공부를 했거나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이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네 분이 조사에 더해 삼국유사를 쓴 고려 시대 국사 일연스님까지 오어사에 머물렀으니 절의 내력과 거쳐간 인물의 역사로 치자면 가히 국보급이다.  

              

18세기 중반때까지만 해도 의상암과 자장암, 원효암과 혜공암이 존재했던 것으로 ‘영일운제산오어사 사적’은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오어지를 건너 절의 서쪽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원효암과 절의 북쪽 깎아지른 듯한 직벽 꼭대기에 서 있는 자장암 만 있다.                          

원효암,자장암 가는길

               


원효암

포항은 눈이 귀한 곳인지라 1월 하순에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은 눈 대신 묵은 낙엽천지다. 산 위에서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칼바람이 아니라면 계절이 가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늦가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어사에서 동쪽 으로 발걸음을 옮겨 발아래 오어지 언 물을 보며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서면 원효암까지는 계곡을 끼고 오르는 산행길이다. 완만한 경사에 거리는 약 600미터. 2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걷는 내내 계곡물의 조잘거림, 칼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 진심을 다해 쌓았을 돌탑을 보며 즐겁다가 경건해지다가를 반복한다.암자는 관음전과 산신각, 원효암으로 단촐하다.  


             

자장암


원효암에서 오어사로 내려와 다시 자장암에 오른다. 가파른 길이지만 거리가 짧아 걸음이 느린 사람도 10분이면 거뜬하다.  자장암은 법당과 절벽사이에 난 길이 1m 정도도 채 안된다. 암자에서 발아래 내려다 보는 오어사와 호반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멀리 건너편 산봉우리의 능선도 아름답지 그지 없고 암자 뒤로 돌아가 진신사리탑에서 멀리 북서쪽으로 아스라이 보이는 포항시가지도 환상적이다. 포항시가 최근 조성한 원효교를 건너 오어지를 끼고 트레킹하는 ‘오어지둘레길’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현대인에게는 오어사 만큼이나 힐링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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