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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Mar 22. 2016

개와 아기

육아, 안 되는 것과 되는 것



오늘 처음으로 생후 230일이 된 아들을 데리고 집 근처 애견카페를 갔다. 시베리안허스키와 골든 리트리버와 같은 대형견부터 말티즈에 이르는 소형견까지 총 여섯 마리의 개들이 신명나게 짖으며 유모차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눈이 커져 두리번 거리는 아들은 아직 개가 무섭다고 여기기엔 너무 어렸는지, 연신 발끝을 꼼지락대며 킁킁대는 멍멍이들을 핥아보려 부던히도 애를 썼다.


이내 냄새판독을 마치고 흥미를 잃은 개들은 일광욕을 하기위해 모두 테라스로 나갔는데 걔중 눈망울이 너무나도 예쁘고 몸매가 섹시하게까지 느껴지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마리는 자리를 떠나지않고 계속해서 아들의 곁을 지켰다.


유선이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출산 경험이 없는 어린 암컷이 분명했다.


마치 어르고 달래듯, 아들이 지루함에 찡얼찡얼 거릴때마다 발끝을 콧등으로 밀어주고 손을 핥아댔다. 신기하게도 발만 척 올려도 아들의 얼굴이 녀석의 혓바닥 사정거리에 들어올텐데도 결코 얼굴을 핥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 예쁜 눈망울을 빛내며 유모차 주위를 한바퀴 돌때마다 흰색과 회색이 절묘하게 섞인 가느다란 털들이 뿜어지듯 휘날리며 허공을 떠돌았다.


녀석의 분홍빛 혓바닥이 훑고 지나간 아들의 고사리같은 손이 침에 번들거리기도 했다.


좋을 것 없다는 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아마 아들의 할머니가 보셨더라면 입에 거품을 무셨으리라.



하지만 안 될건 또 뭐란 말인가!



육아를 하다보면 좋으나 싫으나 방대한 육아 지식과 경험담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유식을 시작하는 시기, 아직 먹으면 안되는 음식, 놀아줄때 해선 안되는 행동들, 피해야 할 섬유와 환경.


때론 이것들을 확고하게 지키려는 좋은 엄마의 마음과 무시하고싶은 나의 마음이 외다리에서 마주친 원수처럼 맡붙어 조바심이 난다.


신생아 적엔 적어도 남들만큼 하기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더랬다. (그래봤자 남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케어였을지도 모르지만)

 젖병도 사용하자마자 세척하여 매번 소독하였고, 아물지 않은 회음부의 통증이 밀려와도 쭈그려앉아서 매일 아기옷과 가제손수건, 천기저귀를 손빨래한 뒤 삶았다. 정해진 시간에 목욕을 시키고 짓무른 고환과 허벅지를 후후 불어 말린 후 기능성화장품 뺨치게 비싼 (하지만 선물받은) 로션을 꼼꼼히 발라주었다. 시기에 적절한 놀이자극을 주기위해 몇시간씩 모빌을 흔들어주었고 30종 동물소리 흉내를 내며 나름 소리자극도 열심히 줬다.


아, 하지만 모든 아기들이 다르듯 모든 엄마들도 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안돼,란 스스로의 자책에 끊임없이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찾아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혹은 그 변명거리에 뻥을 얹어 '그렇게 하기도 한대'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있는 내 모습에 또다시 죄의식이 스물스물 기어오를 때마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와는 다른 엄마라는 걸 인정해야했다.


모빌에 흥미 잃은 아들에게 새로운 눈요기감을 대령하던 지난 날들...


매일 소독하던 젖병은 하루 한 번을 거쳐, 이제는 그저 세척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있다. 천기저귀는 서랍속에 쳐박아놓은지 오래이고, 겨울이라 춥다는 핑계 하에 목욕은 이틀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아기옷 삶기? 백일이 채 되기도 전에 포기. 초반엔 그나마 아기옷만 따로 세탁기 돌리던 것을 요즘엔 그냥 엄마아빠 옷과 함께 때려박고 쿨하게 가루세제를 투척한다.


그나마 매일 하던 청소도, 요즘엔 청소기만 돌리고, 뜸뜸히 걸레질을 한다.


부지런한 엄마들 앞에서 말하자니 많이 찔리지만, 난 이마저도 버겁다. 고무장갑을 내팽게치고 머리를 쿵한 아들을 안아주러 가거나 우는 아기 소리에 화장실에서 보던 볼일도 대충 끊고(...) 뛰쳐나오다가 한시간쯤 후 물도 내리지않았던 처참한 변기와 마주하거나, 낮잠에 빠져든 틈을 타서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한 뒤 오후 3시가 훌쩍 지나 첫끼니를 부엌에 서서 흡입할 때에도 나는 언제나 이유모를 조바심에 불안하고 동시에 버겁다.


새벽녘 뒤척이던 아들이 흐느끼며 잠에서 깨려고 할 때면 일단 부엌으로 달려가 젖병을 타놓고 비몽사몽인 상태로 쭈그려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데, 이는 아이가 다시 잠에 빠져들거나 혹은 완전히 깨서 우유를 찾을때까지 짧게는 오분, 길게는 삼사십분 지속되곤 한다. 이때 특히나 쫓기는 기분에 한숨이 나온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하나씩 하나씩 의무감을 내려놓았다. 이건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100%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애를 볼 땐 온전히 그 아이에게
모든 걸 쏟아야해! 그게 엄마란다



울엄마는 나를 볼때마다 늘상 그렇게 말한다. 당신이 보기엔 너무나 불량스러운 엄마로서의 태도에 혀끝을 차는 건 옵션. 1+1 행사처럼 세트로 붙어오는 잔소리는 기본!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엄마딸은 헌신적인 엄마가 되기엔 너무 이기적이다.


"이렇게 키웠어도 탈한번 난적없고 병원 한번 간적없는 걸? 발달도 빠르고 키도 크고! 독일에선 요즘 오히려 좀 지저분하게 키운대요. 그게 면역력 강화에 더 이롭대잖아요."


어디서 본 적 있는 연구 결과를 들먹이며 어떻게든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건 친정에서만 가능하다. 보기 드문 친절한 시댁을 만났지만 때로 '어린이집을 운영하셨던' 어머님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한 날카로운 지적은 나를 깨갱 하게 만든다.




위험하거나 지나치게 더러운 것만 아니면 난 대부분의 물건을 빨게 놔둔다. 구강기는 입으로 세상을 만나는게 아니던가.


물론 핸드폰과 리모컨, 쓰레기통, 벗어놓은 양말이나 발가락은 안 돼!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믿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런 양육방침(이라 쓰고 방생이라 읽는)에도 장점은 있다.


아이는 여러 물건들을 핥아보며 어떤 물건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찾는다. 아이가 핥는다고해서 그 모든 물건에 흥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엄마 아빠의 발이나 손 따위는 짠맛을 느끼고는 이내 돌아서고, 청소기 코드나 엄마 핸드백의 금속 부분은 핥았을때 나는 쇠맛이 신기한지 꽤나 오래 빨지만 결국 돌아선다.


아이가 최종적으로 손에 꽉 쥐는 것은 가장 빨기쉽고 만만한 치발기이다. 이건 '안 돼'가 아닌 아기의 선택이므로 나는 그저 아이가 흥미를 잃은 아밀라아제 그득한 물건들을 닦아두면 된다.


다른 아이들에비해 호기심이 왕성하고 변화를 빨리 눈치챈다. 처음부터 이런 아기는 아니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쥐어줘도 뚱 하니 관심을 잘 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그러나 집안 대부분 이미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을 맛보고 즐긴 후인지라, 누구보다 빨리 변화를 눈치챈다. 처음보는 물건인 중국집 전단지가쇼파 위에 있었고 이를 잡기위해 최초의 직립보행을 감행하였다. 생후 227일인 7개월 반 무렵의 일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우리집 강아지!


주위에서 책망과 걱정어린 시선을 보낸다해도, 나는 그저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있고 또한 키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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