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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Dec 01. 2015

임신,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40주간의 생소한 변화

새까맣게 변한 겨드랑이
25kg 불어난 체중
버거운 숨쉬기


아기를 처음 가졌을 때, 나는 순진했다. 대학 강의실에 앉은 어린아이가 새로운 환경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손뼉을 쳐대듯이.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고결한 줄만 알았다. 그 누구도 내게 그 이면을 보여준 적 없었다.



온화한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15주가 지나가자 몸의 변화가 또렷해졌다.

거뭇거뭇 여기저기 색소침착이 되기 시작했다. 호르몬의 변화때문이라지만,


오마이갓!!


마치 검은 털옷을 입었다 벗은 직후 색소가 묻어나온 것처럼 겨드랑이부터 거무칙칙하게 변했다. 몇 번을 때수건으로 문질러봤지만 썩은 바나나색의 그곳은 결코 하얘지지 않았다.


이후 입주위가 검게 변해갔다.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곰돌이 입처럼.

아무리 화장을 떡칠해보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여자로서의 내가 점점 죽어갔다.




18주 경부터 뒤늦게 철분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건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의사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야 게으른 예비엄마는 철분제를 샀다.


곧이어 입덧을 연상케하는 구토가 시작되었다. 철분제는 생각보다 속에서 받지 않는 경우가 많고, 운나쁘게도 나는 그들 중 하나였다.


먹고 토하면 다시 먹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출산 시 위험할 수 있다는 말에 꾸역꾸역. 하지만 계속되는 구토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음식으로 섭취하면 되지 까짓거!


자가처방을 내린 대가로 출산 직후 나는 출혈성 빈혈로 기절하여 아기를 보러 내려갈 수 없었다.




25주경 이미 내 몸은 불어날데로 불어났다.

+25kg

당연한 결과였다.

움직이질 않으니 그대로 찔 수밖에.


나에게도 그럴법한 이유는 있다.

내 체중은 아무리 꾸역꾸역 밀어넣고 먹어도 결코 45kg 이상 늘어나 본 바가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기에 이것은 몇 되지 않는 나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어머! 넌 먹어도 안찌는 체질인가봐, 부럽다! 소리를 듣다보니 정말 그런 줄 알았나보다. 더욱이 이건 아기가 먹고싶어하는 거야란 완벽한 구실까지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전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산지대에 오른 것마냥 호흡이 가빴고 이미 메론 한통만큼 커진 배는 폐와 여타의 장기를 눌러대어 기능을 방해했다.


20주 경부터, 턱 밑까지 물이 차오른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정말 완벽하게 이것과 동일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숨을 깊이 들이마셔도 예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자궁에 밀린 폐 때문이다.


자려고 누우면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숨이 차서 잠이 오지 않았고, 한겨울에도 곤히 잠든 남편이 깰까 노심초사하며 반 뼘정도 연 창문 틈새에 코를 박고 헐떡거렸다.


임신 중기부터 20주간, 똑바로 누워서 잘 수 없었다. 배가 척추까지 짓누르는 통증과 숨이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에.


그 누구도 아이를 가지면 호흡이 곤란해진다는 힌트를 준 적 없었다.





출근지하철이 극기훈련장과 서바이벌장으로 바뀌었다.

1호선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지옥철의 문이 열리는 순간, 노약자석까지 가는 것은 사치이다. 최대한 배를 안전히 밀어넣을 수 있는 공간을 스캔한 후 누구보다 빠르게 파고든다!


뒤따라 뛰어든 아저씨가 출근을 위한 흐읍! 기합소리를 넣는다. 그는, 아슬아슬 출입문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뒤꿈치를 밀어넣기위해 나를 푸쉬하기 시작한다.


버텨야한다. 지금 버티지 못하면 내새끼의 목이 꺾일지, 물렁한 머리뼈가 눌릴지, 탯줄이 눌릴지 아무도 모른다. 팔다리의 근육이 터져라 버텨보지만 방도가 없다. 결국 안전거리는 무너지고 최후의 수단으로 난 앞사람을 밀 수밖에 없다.


....?


짜증섞인 표정으로 필시 돌아볼 것이다. 뭘로 눌러대나 확인하기 위함이다. 커다란 배가 보인다. 아가씨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든다. 내 배를 누르지 않기위해 아가씨의 팔다리 근육도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한시간 일찍 집에서 출발하면 안전히 올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했냐?


불평하긴 쉬워도 생활패턴을 바꾸는 건 쉽지않으니까.

나는 불평하는 쪽을 택했다.




미란다 커는 임신 중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빛났지만 나는 미란다커가 아니었다. 주 3회 레이저토닝을 받을 수도, 한 병에 20만원을 호가하는 미백크림을 바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만한 미모도 없었고.

임신으로 변모해가니 그 모습이 더이상 어떻게 봐도 예쁘지 않았다.


한때 공주님이 되고싶다고 요술봉을 사달라 떼쓰던 계집아이는 이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30주경의 배. 오른쪽으로 치우친 까닭은 아기 궁뎅이가 팔다리가 모두 향했기 때문이다.


30주, 배꼽이 사라졌다. 대신 임신선이 생겼다. 가슴 아래에서부터 배꼽 아래까지, 새까만 직선이 아이라이너로 그려둔 듯 선명해졌다. 마치 물고기 옆선처럼.


저건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랑스러운 태동과 무럭무럭 커가는 내새끼는 희열과 감동을 선사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포기해야 할 것이 늘어난 것 역시 사실이다.


양말 신을 거야?


외출 시 남편의 필수 질문이 되었다. 더이상 혼자 양말을 신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이 쪼그려 앉는 자세는 한결같다. 쩍벌자세. 저들도 분명 소녀시절엔 누구보다 다소곳하게 무릎을 붙이고 앉았을텐데 왜저리 변했을까 싶었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있다.


수박통같은 배때문에 다리를 모을 수 없다. 떨어진 수건이라도 집으려면 쩍벌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열달 동안 학습되자 출산 후에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괜찮아, 예뻐.


코를 후비적 거리며 툭 내뱉는 빈말이지만 남편이 매일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완벽히 변모한 내 변화에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으리라.


딱 하나, 만족스러웠던 변화는 젖공장이 건설되어 컵이 3단계나 높아졌다는 것 정도?




아기는 날개없는 천사이다.

첫 뒤집기 성공 후 의기양양하게 엄마를 바라본다. 많이컸다...

이 천사를 얻기 위해서라면, 난 이 모든 과정을 수어 배로 혹독히 겪어야 한다해도 다시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행복하고 기쁘게 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임신 중의 신체변화를 사전에 좀 더 알고있었더라면. 그런 아쉬움이 남아 누군가 하나라도 더 정보를 얻어갔으면 한다.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는 나비가 된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알아서 나쁠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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