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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Dec 01. 2015

딸이 아들이 되었다.

16주, 바뀌어버린 아기의 성별


달렸네! 아빠 닮았겠어


나와 남편은 장난스레 말하는 의사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남편의 살짝 벌어진 입과 동태같은 멀건한 눈을 보니 얼마나 당황한 건지 짐작이 갔다.


분명 저번주까지만 해도 엄마를 닮았다 했다. 다리 사이가 허전하다고, 내 귀로 똑똑히 들었던 터였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아기의 가랑이 사이를 보기위해 어르고 달래며 한참을 훔쳐본 후 의사가 내린 결론은 한 주만에 뒤바꼈다.


우린 허탈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딸래미였으면 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딸바보가 될 완벽한 준비가 끝나있었고.


없던 고추가 한 주만에 생긴거냐는 바보같은 내 질문에 의사는 예의 그 짖궂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다리 사이에 감춰서 잘 안보였던 걸 수도 있고, 작으면 더 안보이긴 하죠.


뭣?




지난주 시아버님의 입꼬리가 귀까지 걸리는 걸 봤던 게 떠올랐다.


시댁은 소위 말하는 고추밭이었다. 남편과 도련님 뿐 아니라 남편의 사촌들까지도 대부분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어머님과 아버님은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손녀딸을 굉장히 바라고 계셨다.


-아들 낳으면 국물도 없어, 얘.


손뼉을 치시며 깔깔 웃으시며 농담하시던 큰어머님도 스쳐지나갔다. 그만큼 시댁의 '딸' 로망은 컸다.


무뚝뚝하시던 시아버님이 그토록 환하게 웃으시는 건 정말이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웃는 모습이 주책이다 생각하셨는지 슬쩍 멋쩍게 돌아서서 걸으시는 어깨가 웃음보에 밀려 들썩들썩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녀딸로 믿고있던 은똥이에겐 그때도 분명 고추가 붙어있었다.


..비록 작았지만 말이다...




어머님, 고추가 생겼대요!
응? 그으래? 하하하.....


성별이 뭐가 중요하겠니,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아쉬운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나이 많은 손주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시할머님만이 태양처럼 환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했다. 400년 전이었다면 난 기세등등하게 아침 문안인사를 드리려 들어가 남편의 옆구리를 꾹 찔렀을 것이다.


"아버님, 사내아이라 하옵니다."


남편이 고하면 아마도 길쭉한 수염을 두어번 어루만지고는 이렇게 대답하셨겠지.


"허허허, 집안의 경사로구나! 아가, 장하다. 정말 장하구나!"


이후 가장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워서 '부인, 정말 고맙소!'하는 말을 만끽했을 것이다.





세상이 정말이지 많이 변했다. 여자로서 살아가기 그닥 힘들지 않다.


주위에 널린 딸바보들을 보라. 아마 '난 커서 아빠랑 결혼할거야' 한마디면 천국을 맛볼 것이다. 심지어 딸을 낳고 싶다는 말은 딸바보 소식보다 훨씬 더 많이 들린다.


남편과 나는 우리의 일을 은똥이가 태어나면 말해줄 재미난 추억거리로 넘겼다. 딸과 함께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 나갈 순 없어졌지만, 야구 글러브를 끼고 아빠와 함께 캐치볼 하는 모습을 눈에 새겨넣을 순 있으니까.


남편은 벌써부터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싶다는 철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태교일기를 보면 딸과 아들을 대하는 자세가 완연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딸이란 얘기를 듣고 썼던 남편의 태교일기. 개발괴발인 글씨지만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들임을 알고난 이후. 아빠의 말투가 돌변했다
나와 같은 고추라니.... 휴...
말 잘들어야 돼, 알았지?


남편의 (개떡같은 글씨가 매력인) 태교일기가 바뀌었다. 아마도 본인의 과거를 되집어보며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뛰어다녔던 자신을 잡기위해 애쓰셨던 부모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혹은, 혹독한 군생활이라든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의 막중한 책임감이라든지 하는 것을 상기해봤을지 모른다.


왜 딸을 낳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나는 왜 딸이었으면 했냐는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일단, 아들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


장가를 보내려면 연금을 받고 사는 퇴직 노인일지라도 집을 해줘야 한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투사들처럼, 장성한 자식의 독립자금을 긁어보아 보태야 한다.


아마 이런 나라는 한국 뿐이리라.

우린 양가의 도움을 일절 받지않고 원룸 월세로 시작한 터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정도 그럴만한 이유는 있는 듯 하다.


군대.


이는 남자의 사회활동 시작점을 늦춘다. 대학을 졸업하고 25살에 첫 입사를 했던 그 때, 동기 남자애들은 고작 2~3학년에 불과했다.


30살에 결혼을 한다 치자. 그들은 기껏해봐야 사회생활 3년차일 것이다. 억대를 호가하는 전세자금을 마련할 여유따윈 없다. 함께 대출을 받고 차근차근 갚아나간다는 방법도 있지만 직장과의 접근성, 주위 환경 등을 따지고 위치를 선정한 뒤 집값을 알아보면, 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나마 대출 한도 내의 집을 발견해도 여자친구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서울을 벗어나고 아파트를 포기한다 해도 전세난 속 집구하기란, 고난의 연속이다.


그때 부모가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으면 내 아들은 무능한 남편으로 처갓집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쉽지 않다.

우리가 그랬듯이, 홀로서기를 시키자고 남편과 약속해두었지만 새 가정을 빚쟁이로 시작해야 한다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썩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최악을 염두해두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딸은 금전적 부담이 덜할 것으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친구처럼 알콩달콩 지내고 머리를 빗겨주며 어릴적 소꿉놀이를 하듯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이런 건 아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출산한 당일,

남편에게 은밀한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고추 떼고 나오진 않았냐는 시아버님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고, 남편은 아들이라는 확인사살을 가혹히 실행했다.


물론 지금은 더할나위없이 사랑받는 손자이다.

하지만 아마 그때는 입이 꽤 쓰셨으리라.


축 쳐진 연시와 허벅지 사이에 끼어 닦아내기 무척 힘든 아들의 똥....



목욕을 시킬 때마다 손가락에 턱턱 걸려서 걸리적 거리지만,

나는 참 좋다, 내 아들의 작은 고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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