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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Dec 02. 2015

출산, 전율의 순간

2015.08.04 은율이의 탄생


아기가 골반에 이미 진입해있다는 말을 들은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일찍 나올거란 말과 달리 좀처럼 진통이 오지 않아 애가탔다.


3km씩 가볍게 공원을 돌고 짐볼 위에 앉아 무거운 배를 출렁이며 공을 튀겨보아도 아기는 꼬물꼬물 놀기만 할뿐이었다.



이미 초음파로는 한 화면에 아기가 잡히지 않을만큼 커진 은똥이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듯 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어서 40주의 대장정을 끝내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밤마다 약한 가진통이 찾아오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진통 주기를 체크하며 진통이 거세지길 기다렸다.


해봤어야 알지, 도대체 뭐가 진통이야?


임신 막달이 되면 잦은 배뭉침이 온다. 종아리에 쥐가 나듯 근육이 수축하는 느낌이 배에서 느껴지며 딱딱하게 뭉치는데, 때로 이것이 심하면 억 소리나게 아파 진통으로 오해하곤 한다.


분명 나올 때가 되었고 여러 출산 징후도 보였으니 신경이 곤두서는 건 당연하다. 배뭉침이 점점 심해져 통증을 수반하였다.


-진통인가봐!


이제 곧 나도 비명을 지르게 되는걸까. 꽤 아프긴한데 이정도면 애낳을만 하다, 라는 거만한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아기심박 및 진통수치 측정장치

남편과 대기실로 향하니 간호사가 어쩐일이냐고 물었다. 배가 아프다고했더니 배 여기저기에 무언가를 붙여대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아직일거에요. 초산이시죠? 허리 피고 들어오는 분들은 보통 아직이더라구요.


분명 배는 아팠다. 기계의 진통수치도 최고치인 99를 찍고있었지만 간호사는 얄밉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시래요'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주기적으로, 정말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프면 꼭 다시 오라고 하며.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하는 거야?


뭐가 진통인 거야?

우매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튿날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다.


2015.08.04 새벽 4시 경.


퍽!


배구공에 맞은 듯한 통쾌한 타격음에 놀라 화들짝 잠에서 깼다. 하지만 집은 고요했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다릉다릉 기분좋게 들려왔을 뿐이다.


아기도 자는지 뱃속도 고요했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로 향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주르륵, 변기에 떨어지는 무언가는 분명 소변이 아니었다. 내가 내보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로만 듣던 요실금인가!


이미 별별 망가짐을 다 겪은 직후라 그저 우울하게 속옷을 올리던 순간, 무언가가 계속 흘러나왔다. 냄새늘 맡아보니 약한 락스냄새가 났다. 양수가 터진 것이다.


여보!!!! 나 양수터진것 같아!!!


아무리 소리쳐도 깨지 않는 남편의 등짝을 후려쳐 깨운 뒤 부푼 마음으로 차에 탔다.




양수는 흐르지만 통증은 아직 없었다. 힘주려면 꼭 밥을 먹고 가란 선배들의 조언대로 나는 기어코 속을 든든히 채우고 가겠다며 당황한 남편을 끌고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슬슬 젖어들어갈 무렵, 순대국밥을 후후 불어대던 그 때, 강렬한 통증이 배를 강타했다.


눈물이 찔끔났다. 아파도 이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삼십초 가량 지속된 후 오분 정도는 평온했기에 순대국을 싹 비우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여보, 난 우아하게 낳을 거야


이틀전, 이정도 진통이라면 난 기꺼이 인내하고 참으며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을 거라 말했었다.

구령에 맞춰 힘주며 우아하게 출산 할거라고.


병원에 도착할 당시 이미 나는 급속한 분만 진행이 되어있었고 자궁문이 30%가량 열린 후였다. 말도 안되는 통증이 찾아왔다.


으으으으으!


참아보려해도 흡사 짐승의 소리가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고, 30초 간격으로 진통이 찾아올때면 침대 헤드를 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몸을 꼬아댔다.


기차가 밟고 가는 듯한 아픔이란게 빈말이 아니었다. 우아는 개뿔! 결국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때 왜 손 안잡아줬어? 란 내 물음에 남편은 머쓱하게 웃으며, 주위 아기아빠들의 조언대로 행동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와이프 진통할때는 초인이 된다더라. 어찌나 악력이 쎈지 잘못잡히면 손 으스러진다고.



남자들이란....




간호사들이 들어와 친정엄마를 쫒아냈고 남편만을 남긴채 힘을 주라고 했다.

자궁문이 빠르게 열리는 바람에 관장을 못했던게 그와중에 떠올라 '실수'할 것이 염려되었다. 하지만 다시 진통이 찾아오자 이 지옥같은 순간을 끝낼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을 듯했다. 똥 정도야.


진짜 지옥이 펼쳐졌다. 진통이 오는 순간에 맞춰 힘을 주라는데 가뜩이나 심한 통증은 힘을 주면 더 심해졌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자궁문 입구를 열어주기 위해 간호사들이 입구에 손을 넣고 마구 헤집어댔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 혼이 났다.


-엄마, 소리지르면 안 돼요. 힘이 분산 돼서 안 돼.


남편은 분만이 시작되자 기꺼이 손을 내주었지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더더더더 라고 외치는 간호사에게 이 이상으로 더 힘을 줄 수가 없다고, Max치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비명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던 와중, 옆 방에서 울려퍼지던 비명 소리가 별안간 뚝 그치고 아기 울음 소리가 선명하게 내 귀에 들어왔다.


옆 방 산모가 아기를 낳은 것이다.

땀과 눈물 콧물이 뒤섞인 얼굴로 나는 다시 한번 힘을 내보았다.




이윽고 의사가 들어왔다. 힘줘요! 라고 말하는 순간 살점이 잘리는 쓱쓱 소리가 났다. 아기가 나오며 회음부를 찢는 것을 막기위해 미리 절개를 해두는 소리. 진통 때문에 그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으니 푸쉬 좀 해줘


지시가 떨어지자 마자 두 명의 간호사가 침대에 올라탔다. 힘을 줄 때 아래로 내려오는 아기가 다시 올라가지 않도록 체중을 실어 배를 눌러댔다.


그들 역시 필사적이었고, 도움에 힘을 얻은 나는 마지막 젖먹던 힘을 내어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져나갈 때까지 힘을 줬다.


-보인다! 머리 만져지네, 보인다!


분명 그렇게 외치고 있지만 좀처럼 아기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점점 탈진증상이 오고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남들은 제왕절개 시켜달라고 빈다던데,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따위 할 수 없었다.


살려줘 여보, 살려줘, 살려주세요



그렇게 한시간을 더 빌고 외치고 비명을 질러댄 후, 무언가 미끄덩 배출되는 느낌이 났다.


힘차게 울어대던 아들,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말도 안 돼.


응애 응애 소리가 우렁차게 분만실에 울려퍼졌다. 정녕 내 뱃속에 있던 이 아기의 소리인가

내아들인가

내가 낳은건가


어디보자 내새끼,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그토록 안아보고 싶었던 아이가 내 품에 처음 안기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갖태어난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눈을 떠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 까만 눈과 오물거리는 입이 가슴 귀퉁이를 먹먹히 적셨다.


이건 기적과도 같았다.

 고맙고 미안하고 희열과 환희가 몰려옴과 동시에 슬펐다. 아직도 모르겠다. 도대체 그 감정이 뭐였는지.


출산 후 임신 중이던 친구들에게 '어땠냐'는 질문을 꽤나 받았다.


아팠어, 라고 말하고는 더불어 그 당시의 감동을 떠올리다가 감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고개만 끄덕여 버리곤 한다.




회음부가 많이 찢어졌다고 봉합해야 하니 마취제를 투여하겠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고, 정말 고생했다는 말하며 머리를 쓸어주는 남편의 손길이 느껴졌다.




병실로 옮겨졌다. 신생아 면회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난 '첫소변'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다. 침대 상체를 조금만 세워도 어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극심한 출혈성 빈혈이었다. 결국 엄마와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로 향하던 중 기절하여 아들을 보러가지 못했다


홀로 면회한 남편이 보여준 사진. 어찌나 못생겼던지, 하지만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아마 모든 부모들이 같은 마음일거다. 신생아는 참으로 못생겼다. 양수에 퉁퉁 뿔어 심술궂어진 눈과 얼굴이 객관적으로 이뻐보이진 않다.


하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과 사랑이 차오른다.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다. 못난 얼굴이 더없이 어여쁘다.


생후 3주,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엄마가 되었다.


열 달간의 대장정이 끝이 났다.

이제 한 평생의 농사를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서


나는 몇 번이나 작고 보드라운 뺨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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