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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그녀 Oct 16. 2015

영화의 장면이





나는 모든 움직임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웅크려 앉아 조물조물 손빨래를 하는 것도,

너저분한 옷가지 차곡차곡 개는 것도,

오래도록 샤워를 하는 것도.


소용돌이 치는 마음은

이 몸의 움직임과 합의할 의사가 없는 듯 했다.

정리하고 또 정돈했건만, 그러한 몸의 노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마음이란 녀석은 전혀 정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잠에 드는 일 조차 할 수 없었다.

통속적인 노래가사처럼,

 감으면 더욱 선명해져 버리 탓이었다.





내가 사랑을 하다니.

나는 이해하기도 전에 이해해야 할 일을 만났고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

내게 사랑은 그렇게 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사랑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엇인지 알아내지도 못한

그 사랑,이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옷장을, 쓰레기를, 방을 정리해도 마음까지 정돈될 수 없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랑은 그 훨씬 전에 이미 정리되어 떠났으니.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전부 꺼내어 들고있던 서랍 속 물건들을 가만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생각멈춘 것은 내 자의식이 아니었다.

내 영혼이 스스로 위험을 감지해

비극적 결말 예상을 멈춘 것이었으리라.



나는 손에 들려있던 메모지와 갖가지 명함들을 내려놓고

TV 앞에 가만 앉아 영화 채널을 틀었다.


아득한 눈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는 남자주인공과

쓸쓸한 표정으로 부엌에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보였다.




이내 눈물이 났다.

그것은 영화 속 창문에 부딪히는 물방울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 대답했으리라.



여주인공이 썰고있던 양파가 너무 매워서,

단지,

그 양파가 너무 너무 매워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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