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 불완전함을 입는 법

틀림과 함께 살아갈 용기, 그건 나를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이었다.

by 김수현

나는 조금 더 ‘나를 닮은 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옷을 떠보기로 결정했다. 규격 사이즈에 맞춰 모두 동일하게 제작된 기성품이 아니라, 나의 신체 구조에 맞게 직접 떠서 만드는 옷이라면 그건 정말 나의 연장선일 것 같았다.


뜨개질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의 바늘로 뜨는 코바늘, 두 개의 바늘로 엮는 대바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뜨개질 할머니’의 모습이 바로 ‘대바늘’이다.


뜨개질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대바늘 뜨개에 도전하고 싶었다. 바늘 두 개로 실을 엮는 모습이 꽤나 무게 있고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 흔들의자에 앉아 손주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작업하던 뜨개를 완성시키고 곧바로 연희동 바늘이야기에 들려 ‘익스플로러 키치 브이넥 조끼’ 패키지를 구매했다. 익스플로러 4 볼이 필요한 이 패키지는 6.5mm와 7mm 바늘을 사용해 속도감 있게 작업할 수 있는 입문자용 의류다. 익스플로러 실은 여러 색이 뒤섞인 도톰한 볼륨의 실이었는데, 그중 나는 그린 톤의 실을 골랐다. 초록색은 항상 마음을 너그럽게 해 주니까.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은 참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코바늘과 다르게 대바늘을 사용하는 이번 작업은 대바늘을 손에 쥐는 법부터 차근차근 익혀야 했다. 다시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라 답답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내가 직접 입을 수 있는 의류를 작업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설레었다. 얼른 완성해서 초가을 무렵 청반바지와 매칭해 입고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계절은 벌써 단풍이 물드는 가을의 절정이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괜찮아. 겨울에도 껴입을 수 있으니까!’


뜨개질을 할 때면 속에서 다그침과 위로가 몇 번이고 아웅다웅 대며 싸웠다. 그래도 난 계속 틀림을 반복하며 푸르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것이 당연하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독학으로 깨우쳐가며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작업 한가운데에 있던 사람에게 그런 것이 보일리 만무했다. 대바늘 뜨개 초보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지루함이 찾아오기 전에 얼른 이 작업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밀고 나갔다. 틀린 게 보이더라도 일명 ‘흐린 눈’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코 개수가 하나씩 늘어나더니 점점 편물이 옆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이 걸어온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가로로 넓어지기 전, 그러니까 코 개수가 늘어나기 전까지 전부 풀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실에서 바늘을 전부 제거한 뒤 실을 돌돌 감아 뜬 것을 풀어갔다. 그전까지는 바늘에서 하나씩 옮겨가며 풀어도 가능할 정도였기에 이렇게 대대적인 수정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에이씨 몰라!’


걱정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풀고 나니 다시 완성도가 높아져서 지켜보고 있는 내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한 가지 난관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바늘에 남은 코를 끼우는 것. ‘그냥 끼우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코에 바늘을 끼울 때에도 방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지금까지 해온 코바늘에서는 없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배울 수 없던 부분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넣어야 하는지 모르는 나는 그냥 끼웠다. 코 방향에 차이가 있는지 아무도 경고하지 않기에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바늘에 걸린 코 방향을 자유롭게 하며 조끼를 떴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네 집에 들러 식사를 같이 하다가 작업 중인 조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코에도 방향이 있다고 말했다. 너무 놀랐다. ‘아니, 정방향이 있다니? 나는 그러면 다 틀렸을 수도 있네?’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너짐을 느꼈다. ‘이미 꽤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모든 게 틀린 걸까?’ 머릿속에서 ‘다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완벽한 조끼를 위해 몇 번이고 다시 했는데,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니. 복잡한 생각과 좌절감에 어찌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동안 편물을 만지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다시 편물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조끼는 겉뜨기로만 이루어진 민무늬라서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보더라도 크게 틀린 것이 안 보였다. 게다가 실 자체에 여러 색깔이 섞여있어서 더 자연스럽게 묻어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완벽한 조끼보다 ‘완성된 조끼’를 만들기로 했다. 더 이상 코 방향을 확인하지 않았고, 실수가 보이더라도 그냥 넘어갔다. 내 목표는 오직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풀고 고치느라 멈춰 있는 시간보다, 완성 후에 느낄 따뜻함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끼 밑단을 고무단으로 마무리하고, V넥과 소매에서 각각 코를 주워 고무단 마무리를 했다. 가능한 실수가 없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정확하게 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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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조끼를 처음 입어보았다.

V넥 가운데 중심 선은 오른쪽으로 삐뚤었고 게이지를 내지 않아 전체 기장은 짧고 통도 좁다. 군데군데 코를 반대로 끼워서 짜임이 반대로 되어있고, 몇 차례 풀었다 다시 짜기를 반복해서 그런지 실들은 금방이라도 보풀이 일어날 것처럼 잔털이 잔뜩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이건 내 손의 흔적이니까. 완벽한 옷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울 앞에서 삐질 웃음이 났다.

처음으로 나에게 조끼가 생겼다. 삐뚤빼뚤하지만 충분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완벽해야 칭찬받고, 잘해야 사랑받는다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남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살아오다 보니, 정작 나를 실망시키는 일에는 너무 무뎌졌다.


내 삶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도, 나의 호불호와 함께 항상 남들의 기대를 동일선상에 두고 같이 고민했다. 나의 세상이 좁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점점 더 세계가 넓어지고 관계가 다양해지며 나는 그 안에서 괴로웠다. 나의 의지나 기호는 후순위가 된 지 오래였고. 내가 아닌 타인이, 나에게 실망할까 두려움에 떨며 지냈다.


‘나한테 괜히 맡겼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그 일은 내가 무조건 한다고 생각할 텐데, 거절하면 나를 싫어하겠지?’


이 조끼는 나를 실망시킨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실망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줘도, 스스로가 봐도 괜찮았다. ‘괜찮다’고 생각하니 정말 괜찮아졌다. 우리는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실망시킬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자유를 얻고 진정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다음날 내가 뜬 조끼를 입고 출근했다.


"이거 제가 뜬 조끼예요!"


일부러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로부터 돌아오는 칭찬이나 호응은 없었지만. 나는 직접 만들어 삐뚤빼뚤한 조끼가 내 일부처럼 자랑스러웠다. 그날 나는 나의 엉성함을 입은 채 하루를 보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엉성함이야말로 나를 닮아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실망을 향해 다시 뜨개질을 시작한다.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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