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도 완성인 삶에 대하여
매번 연희동에 있는 바늘이야기 오프라인 매장에서 뜨개질 키트를 구매했던 나는 그 밖에 다른 도안들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더 다양한 뜨개 소품과 의류들이 있는지 궁금해졌고, 그동안 보았던 것들 외에 다른 영역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음을 느꼈다.
인스타그램에 뜨개질 관련해 검색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에도 뜨개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개인이 직접 도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뜨개인들이 ‘올드패션드 가디건’ 이라는 의류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올드패션드 가디건은 이전의 조끼와는 다르게 소매와 카라 그리고 주머니를 가진 구조였고, 전체적으로 여러 패턴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이 가디건은 열정과 패기를 가진 뜨개 초보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딱 좋았다.
인스타그램으로 뜨개 세상을 둘러보며 알게 된 또 다른 한 가지. 바로 실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콘사류 외에도 수입해 들어오는 수입실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모양도 타래형, 볼형 등 다양했다. 더 넓은 세계로 입문한 것 같아 즐거웠다. 사람들은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뜨개를 즐기고 있었다.
비교적 집 근처, 망원동에 위치한 솜솜뜨개에 방문했다. 직접 다양한 실을 손으로 만지며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 올드패션드 가디건과 어울리는 컬러를 고민했다. 점원은 무엇을 뜰 예정인지 물었지만, 나는 괜히 부끄러워 얼버무렸다. 그렇게 프빌 3합 애쉬브라운을 들고 나왔다. 마음이 먼저 들떴다.
보통 뜨개 시작 전 게이지를 만들어 바늘 또는 합사 실을 조율하지만, 당시 게이지로 낭비하는 실이 아까웠던 나는 무턱대고 바늘에 실을 엮어 코잡기를 시작했다. 당시 게이지는 나에게 지루한 절차이자 낭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0x10cm의 샘플을 만드는 대신, 바로 본편에 뛰어드는 게 훨씬 짜릿했고. 그렇게 나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퇴근 후 또는 주말 시간을 내어 조금씩 가디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차트 도안과 다양한 무늬 뜨기에 적응하는 데에만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뜨고 풀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무늬 뜨기에 적응해 나갔다. 그래도 조금씩 실이 시간을 만나 면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신비롭고 경이로워서 지칠 줄 모르고 작업에 빠져들어갔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유튜브로 다른 사람들의 작업기를 보며 공부했고, 인스타로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며 올드패션드 가디건 작업에 점점 더 빠져들어갔다.
그러던 무렵, 드디어 가디건의 주머니를 만드는 단계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인지 내 가디건의 주머니는 주머니가 있을 위치가 아니라 가슴 바로 밑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게 맞나? 내가 빼먹은 단이 있나?’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나의 올드패션드 가디건은 배꼽티가 된다는 것인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듣고 자라는 말이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번에도 시작이 잘못된 것이었다. 손의 장력이 강해 ‘쫀손(쫀쫀한 손)’에 속했던 나는 빨리 시작하고 싶은 욕구에 눈이 멀었고 그렇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게이지를 내지 않고 첫 코를 떴다. 성격이 급한 나는 종종 그랬다.
중학생 시절 반장에게 첫 고백을 받았을 때도 그랬고,
대입 수시 원서 6개를 넣을 때도 그랬고,
이직을 할 때도 그랬다.
선택의 순간에 오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첫 단추의 중요성은 까맣게 잊은 장님이 된다. 그 어긋남에 대한 후유증은 대부분 바로 오지 않는다. 주머니가 가슴 밑에 달려버려 배꼽티로 끝나버릴 이번 작품처럼, 한 참 뒤에 어긋난 균열이 시간 힘과 손을 잡고 뭉쳐서 더 강력한 쓰나미가 되어 밀려 들어온다.
미처 피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채로.
나는 또 갈림길에 섰다. 이 작업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배꼽티가 되어 옷장에 처박힐 것인지, 전부 풀어서 첫 단추부터 다시 바르게 채울 것인지, 그냥 포기하고 버릴 것인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해볼 것인지. 그래도 다행인 건, 타고난 기질에 ‘근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도. 어떻게든 하는 방법이 있겠지!’
나는 내 장점을 앞세워 첫 단추가 만들어낸 균열을 밀어내기로 결심했다. ‘주머니가 가슴 밑에 있으면 좀 어때! 어차피 주머니에 아무것도 안 넣을 거였는데 뭐.’ 배꼽티 문제는 도안보다 더 늘려서 뜨기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이제 고작 조끼 1개 떠본 초보에게 도안에 없는 무늬 영역을 이어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한 대로 무늬는 나와주지 않았고, 몇 차례 풀었다 떴다를 반복하며 걸음과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오 이 정도면 꽤 많이 했는데?’라고 생각이 들 때면 어김없이 무늬가 반대로 떠진 곳이 보였고, 한숨을 쉬며 게이지를 맞추지 않은 과거의 나를 탓했다. 체념과 푸념을 오가며, 뜨기와 입기를 반복하며 뜨개를 마무리 지었다.
완성된 가디건을 입고 거울을 보니, 확실히 원작자의 ‘올드패션드 가디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작아 넉넉하고 고즈넉한 느낌의 올드패션드 가디건이 아니라 몸에 딱 맞는 자켓에 가까웠다. 작은 사이즈 때문에 단추 구멍에 맞춰 단추를 전부 달 수 없었고, 여전히 가슴 바로 밑 주머니의 존재감은 흐릿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계획과 달랐지만, 딱 내 몸에 맞는 느낌이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네!’
결국 도안은 참고일 뿐이었다. 완성의 모양은 내 손끝이 결정한다.
그 과정에는 ‘틀림’이 ‘다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유연해졌다.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도안은 길을 알려주지만, 내 손이 그 길을 바꾼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계획이 틀어졌다고 해서 멈추지 않아도 된다. 틀린 게 아니다. 길은 결국 늘어나는 실처럼 나아가는 동안에 계속 만들어지니까.
우리는 종종 도안처럼 삶의 정답을 외부에서 찾는다. 문제집을 풀고 난 뒤 답지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둔 답지를 보고, 그 안에 내 인생을 맞추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실수를 통해서만 길이 생기고, 길 위를 걷는 과정에서 비로소 나의 무늬가 드러난다. 도안은 그저 방향성을 안내할 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교실에서 모두 각자 다른 시험지를 풀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시간을 쏟아 만들어간 그 길도 정답이고, 갈림길에서 내가 한 선택들 모두가 정답이다.
누가 내 가디건을 보고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안대로’보다 앞서있는 건 ‘나답게’인 것을.
그래서 나는 뜨개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