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 시간은 흐르고 자란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말과 같다.

by 김수현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불편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지기 전까지 나는 오히려 일상을 갑갑해하는 쪽에 가까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했고 무가치하게 느껴졌으며 기회가 되면, 일상을 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상상을 했다. 해외든, 국내 전혀 다른 지역이든 새롭게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매일의 일상이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는지를. 늘 당연하다고 여겼던 공간, 시간, 관계들이 사실은 ‘살아 있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코로나는 매일 일상 속에서 생활하던 공간, 자유롭게 보냈던 시간 그리고 관계들에 대한 가치를 직접 느끼게 했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일상의 가치를 느껴 볼 기회가 없었을 것 같다. 비슷하게 뜨개를 하며 손에 쥐고 있었지만 내가 손에 들고 있는지 마저도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몇 벌의 옷을 직접 떠본 나는. 누군가에게 직접 뜬 옷을 선물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한 친구 아기에게 가디건을 떠서 선물하기로 했다.

‘아기는 작으니까 금세 완성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쳤다.


아기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연희동 바늘이야기에 들려서 ‘엘런 가디건’ 패키지를 구입했다. 이 가디건은 6개의 단추와 주머니를 가진 민무늬 가디건이다. 2~3세 사이즈로 뜰 예정이라 원작실 ‘필 소프트’ 6볼을 구매하고, 소매를 뜰 숏팁까지 구매해 바늘에 첫 코를 걸었다.


그런데 작은 고추가 매웠다. 작다고 전혀 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얇은 바늘과 얇은 실 때문에 진도가 느렸다. 그래도 내 특기, 근성으로 참고 견디며 뜨개를 이어갔다.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내며 작업했다. 그런데 더 큰 일을 마주하게 됐다. 애가 컸다.


불과 일주일 전과 다르게 아기가 큰다.

아니, 하루하루 애가 큰다.


2~3세용으로 넉넉한 사이즈를 준비했는데, 그 사이즈가 거의 딱 맞을 것 같았다. 아직 완성도 못했는데. 완성해서 선물하면 이미 애는 더 커있을 것 같았다.


아뿔싸. 애가 크구나.

아,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아, 나도 흐르고 있구나.

아, 나도 크고 있겠구나.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다들 나를 지나쳐 앞질러 가는 느낌. 나만 우두커니 멈춰 서서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의 뒤통수와 그림자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 그럴 때 나는 불안하고 슬퍼진다.


나를 두고 가지 마!

뒤처질 수 없어!

얼른 일어나서 뛰어!


나는 나를 채근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에 떨고 있던 내 안의 작은 내가. 재촉거리는 아우성에 그야말로 멘붕. 목적지로 향하던 방향을 잃고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를 따라 무작정 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면, 하루를 낭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혼낸다.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 또 어제와 같은 하루야. 내일은 더 생산적이게 보내자!’


애는 큰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애는 큰다. 아니,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다. 아이는 하루를 보냈다. 주어진 자신의 시간 속에서 하루를 보냈기에 성장했다. 그렇다. 그냥 하루를 보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저 겉으로 티가 안 날 뿐. 똑같은 하루라고 말하지만, 사실 똑같지 않다. 시간은 흐르고 자란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청주에 있는 외갓집을 갔다. 할머니 집 화장실 구석에는 검정 비닐이 덮인 엄청 큰 빨간 고무대야가 있었다. 할머니는 화장실 앞을 오갈 때마다 손잡이가 달린 파란색 바가지로 그곳에 촥 촥 물을 부었고, 물은 그대로 쭉 쭉 밑으로 흘러내렸다.


엄마는 거기에 콩나물이 있다고 했다. 콩나물은 그렇게 물만 부어도 자란다고 했다. 이상했다. 물은 전부 밑으로 빠지는데. 콩나물은 그렇게 쑥 쑥 자라서 밥상에 반찬이 되었다.


그랬다. 크려고 발버둥을 치고 애를 쓰지 않아도 시간의 물줄기는 쏟아지고, 쏟아지고, 쏟아졌다. 쏟아지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 자라고 있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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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에 보이는 성장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훌륭한 성적표, 모두가 수고했다고 말하는 높은 성과, 확연하게 다른 비포와 에프터. 거창한 변화가 있어야만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끔 아주 미세한 변화로 성장했다고 박수치는 친구들이 미안하지만 우스웠다.


‘고작 그거로?’


나는 누군가의 눈에 보일 만큼 확실하게 달라져야 비로소 ‘자랐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동안 친구의 아기가 크는 모습과 뜨개질이 자라나는 보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제야 친구의 성장에 진심의 박수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아기이기 때문에 빠르게 크고, 성인은 성인이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히 클 뿐이었다.


하루하루가 콩나물에 쏟아지는 물처럼 흘러가고, 그 속에서 조금씩 길러지는 존중, 이해, 수용, 인내, 여유 같은 것들. 그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조용한 성장 아닐까.


나도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똑같은 하루 속에서, 한 단의 변화를 쌓아가며.

보이지 않아도, 분명하게 한 걸음씩.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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