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 꼬임을 푸는 법

안 풀고 지나간 꼬임은 톡, 도르라진다.

by 김수현

“아이 씨… 쪽팔려 진짜”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종종 과거사가 스쳐가 뻥뻥 이불킥을 한다.


이십 대 초, 첫 남자친구 앞에서 술 취한 척 연기했을 때.

혼자 떠난 포르투갈, 안 되는 영어로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라떼를 주문할 때.


이미 생각만으로도 두 눈이 질끈 감기는데…

이건 귀여운 수준이다.

가끔은 쪽팔림의 팡팡 이불킥을 넘어, 가슴 깊은 곳 밑바닥으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라오는 불꽃슛도 있다.


‘나만 피해자’라는 태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다’는 태도,

그리고 전 부치듯 자꾸 바뀌는 상대의 말.


가끔 마주하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확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난다. 심하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사실 나도 안다. 순간 터져 나오는 푸념과 넋두리인 것을. 그러니 그렇게까지 속을 부글거리며 화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러나 가끔은 스스로 다잡던 노력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발을 땅에 구르며 언제라도 돌진할 듯 성난 콧김을 내뿜는 황소가 된다.


그런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아 뭔가 내 안에, 단단히 꼬여있는 부분이 있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잘 짜진 편물들 사이로 삐쭉삐쭉 꼬인 실들이 보인다.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크게 보면 푼다와 안 푼다로 나뉜다. 안 푸는 건 지금 당장은 편하다. 멈추지 않고 가던 속도대로 나아가면 되니까. 그러나 뜨개가 완성될수록, 안 풀고 지나간 꼬임은 톡, 도르라진다.


뜨개질을 처음 시작했을 때, 다들 그렇듯 몇 번은 흐린 눈을 하고 안 보이는 척 넘어갔다. 하지만, 특히 니트 뜨개일수록 잘못 꼬여있는 부분이 도드라져서 덜 입게 되는 것 같아 이제는 틀린 부분은 꼭 수정하고 지나가는 편이다.


만약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했다면, 지금 바로 뜨던 것을 멈추고 바늘을 빼서 몇 단만 풀어 수정한다. 그러나 특정 지점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면 해당되는 코만 살금살금 풀어서 수정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하는데, 감쪽같이 수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수정으로 끝나는 거면 공수가 덜 드는 실수이다. 그러나 이밖에 전체 한 파트를 다시 풀고 떠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모비 스웨터의 오른쪽 팔을 3번이나 떴다.






모비 스웨터는 꽈배기 무늬와 다이아몬드 무늬, 멍석 뜨기 등 여러 패턴이 쓰이며 동적이면서도 단정한 이미지의 스웨터다. 이미 많은 뜨개인들의 입소문을 탄 도안. 나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실과 도안은 망원동 솜솜뜨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했다. 식물을 연상케 하는 딥그린 컬러의 ‘프빌-포레스트’ 3합을 준비하고 첫 코를 떴다.


소매 부분에 진입하면 간단한 멍석 뜨기가 반복되는 구간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소매 코 줄임을 하며 무늬가 꼬였다. 그것도 한참 뒤에 알게 되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찾기도 어려웠다. 겨우 겨우 문제가 시작된 곳을 추측해 보았더니, 6cm 이전까지 풀어야 했다.


풀기 두려웠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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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처음에는 수정을 하려 일부분만 풀어냈다. 정갈하게 풀어낸 뒤 잘못된 곳이 어딘지, 실수가 시작된 지점이 어디인지 찾으려 했다. 그러나 문제 지점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최대한 정갈하게 풀어냈지만, 문제 지점을 찾으려 뒤적거리다 보니 모두지 어떤 형태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꼬여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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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뜨개 고수가 아니라서,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6cm만 풀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던 확신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소매 전체를 풀지 않으면 다시 짤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조금씩 풀다가 소매 전체를 다 풀게 되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비슷하게 내 인생에도 그런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이미 지나갔다며 묻고 지나온 일. 그러나 거기에. 그 장소에. 아직 내 감정이 한 코를 단단하게 붙잡고 얽혀 한 덩어리의 매듭이 되어있다. 코가 감정을 잡은 걸까? 감정이 코를 잡은 걸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나아갈 수도 없어서 막막할 때 내뱉는 혼잣말.


어떤 꼬임은 ‘안 푸는 게 편한’ 것들이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면 일단 괜찮아 보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꼬인 매듭은 반드시 도드라진다. 그리고 그때는 더 깊게 다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쑥 찾아오는 ‘불꽃슛’에 점점 더 자주 당황하게 될 테니까.


꼬임을 푼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꼬임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꼬인 이유를 알아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푸는 것은 쉽지만, 이해는 어렵다. 보면 볼수록 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삶도 같다. 감정도 같다.


사실 나를 두렵게 하는 건 ‘꼬임’ 자체가 아니라 ‘푸는 과정의 혼란’이다. 풀리면 형태를 잃고, 형태를 잃으면 더 헷갈려서 혼란스러우니까. 그렇지만 새로운 무늬를 짜려면, 반드시 그 혼란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뜨개질은 항상 선택의 문제다.

나는 늘 선택 앞에 선다. 지금 풀어 괴로움을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매번 실수를 보며 흐린 눈을 할 것인가?


‘어느 쪽이 덜 괴로울까?’


괴로움을 저울에 달아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풀 수 있는 나를 믿는 것.

풀기에 도전하고, 결국엔 쌓아온 일부를 모두 잃더라도, 꼬임을 풀어내고 다시 새롭게 무늬를 짜낼 나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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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짜였다 풀은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실에 자국을 남긴다.

빳빳한 새 실과 다르게 울퉁불퉁한 실을 만지면 괜히 시무룩하다. ‘흉터’ 같아서.

근데 다행인 건, 다시 새 무늬로 엮어 편물이 되면 이내 흉터는 자연스러운 질감이 된다.

나는 또 그 모습에 용기를 얻는다.


꼬임을 풀겠다 다짐하면, 어떤 방법이든 반드시 다시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몇 번 하다 보면, 풀기를 결심하고 풀어가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다.

그리고 다시 엮는 것에도 익숙해진다.

나는 또, 이런 나의 성장에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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