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이 만드는 삶의 파도
뜨개에는 ‘바늘 비우기’라는 기법이 있다.
한 코, 한 코 촘촘하게 계속 짜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한 번 일부러 쉼을 둔다. 그게 ‘바늘 비우기’다. 뜨지 않고 넘어간 곳은 일부러 만든 ‘구멍’이 되어 그 구멍이 독특한 무늬를 만든다.
그래서 보통 이 기법은 여름 뜨개에 주로 사용된다. 구멍이 생겨 바람이 통해 편물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에는 ‘바늘 비우기’ 기법으로 파도를 만들어낸 가디건을 뜨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름 바다를 닮은 ‘파도 가디건’을 뜨기 위해 망원동 솜솜뜨개에 들러 ‘어푸-레몬크림’ 색상을 구매했다. 여름 아침의 햇살을 닮은 레몬색이었다.
어푸는 여름용 실이라 된밥처럼 고슬고슬했다. 윤기가 흐르는 실은 몸에 달라붙지 않고 피부를 따라 차르르 흘러내리며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 얼른 몸에 파도를 입히고 싶었다.
이미 뜨개로 옷을 몇 번 떠 본 경험이 있기에 금방 완성할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역시, 항상 그렇듯.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새로운 기법이 사용된 도안 또한 쉽게 정복할 거라는 것은 내 큰 오산이었다.
쉴 틈 없이 반복되는 바늘 비우기와 코줄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무늬가 바로 보이지 않는 점이었다. 설명에 맞게 잘 뜨고 있는 건지, 틀린 건지 파악할 수 없어서 머리를 싸맸다.
완성 사진에서 본 파도 무늬. 그 패턴이 지금 내가 뜬 것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풀어야 하는지, 계속 떠야 하는지 고민이 끊이지 않았고 불안함과 답답함이 마음에 차오르며 뜨개를 이어갔다. ‘에라이 끝까지 가보면 풀어야 하는지 더 명확해지겠지!’
그런데, 그렇게 어리바리하며 15cm 정도 뜨고 나니, 그제야 무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이게 정말 내가 뜬 건가?’
무늬를 확인 한 순간에는 우습게도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다. 마치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산 꼭대기까지 올라와 경치를 내다보는 기분이었다. 동글동글한 구멍들이 자리를 이동하며 웨이브를 만들고 있었다. ‘바늘 비우기’가 지나간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유심히 바라보니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삶에도 바늘 비우기가 있지 않을까?’
뜨고 있는 지금은 구멍이지만, 뜨고 나면 보이는 예쁜 무늬처럼.
덜어내야 보이는 것들 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쉬지 않고 짜내려 가기만 했다. 바늘 비우기란 없었다. 조금의 빈틈이 두려워, 하루를 빼곡하게 계획을 끼워 넣었다. 그럴수록 내 무늬가 옅어지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어느새 내 삶의 무늬가 사라졌다. 쭉 이어진 민무늬의 편물이 되어 있었다.
오? 이상하다?
난 분명 나만의 패턴이 있는 편물이었는데,
언제 내 무늬가 없어졌지?
한참 생각해 보니 그렇게 만든 범인은 나였다.
바늘 비우기를 넣어야 할 자리에도 계획들을 채워 넣어 무늬를 만들 수 없게 했다. 바늘 비우기를 할 때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쫀쫀했던 장력이 느슨함을 넘어 ‘헤벌레’해지는데, 마치 바늘에서 한 코를 빠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아무거나 마구 채워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다. 그렇게 내 패턴은 민무늬가 된 것이다.
‘집 나간 패턴을 찾습니다.’
한참 고민 끝에, 잃어버린 내 무늬를 찾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미 너무도 빼곡하게 짜인 편물 때문에 숨을 쉬는 것조차 답답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바늘 비우기로 구멍을 만들어 선들선들 바람이 통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멈추기로 결단을 내렸다.
누군가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오히려 더 깜깜했다. 자려고 누우면 불안이 침대 밑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처음에는 살짝 눈인사 정도였는데, 어느새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또다시 휘청거렸다. 판단이 흐려지고 주변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나는 지금보다 더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 보이려 애썼다.
그럴 때마다 지켜보던 남편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정신 차리게 했다.
“네 무늬를 찾는다며. 그걸 해.”
아차.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멈추기로 결정한 그날의 마음과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오랫동안 미뤄온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 이제야 한 코.
바늘 비우기를 했다.
처음에는 생산성을 만들지 않는 그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허전했다. 여전히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엉덩이는 들썩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멈춤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비움이 다녀간 자리에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 구멍이 생기며 파도 무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쓸모없음이 만들어 낸 파도 무늬 사이로 살랑살랑 바람이 통한다.
‘한결 시원하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파도의 리듬을 만든다. 비움의 시간에서는 무늬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무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성실히 비워내며 무늬를 짠다.
비운다는 건, 비워버리는 게 아니라
무늬가 숨 쉴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일.
비운다는 것은 사실 비움으로 채우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