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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an 18. 2020

입매를 반듯이, 마음처럼

입모양이 작아졌(진 것 같)다. 일정기간 동안 말의 총량이 줄면 입도 작아질까? 나는 10년 전에 비하면 완벽한 백수로의 전환과 함께 말의 양이 확실히 줄었다. 정성적으로 말수가 준 것은 아니지만 정량적으론 그렇다. 


입이 작아졌다는 느낌은 막연하긴 하다. 입이 오므라들고 있다는 표현이 그나마 비슷하다. 이와 함께 떠오른 가능성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중력 때문에 입이 처져서 상대적으로 작아보일 수 있다. 둘째, 전날의 음주 또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얼굴 붓기가 입술을 작아보이게 할 수도 있...나? 이건 좀 망상이고. 셋째, 다 늙어서 입 내밀고 이쁜 척의 생활화? 이건 많이 아픈 거고.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친구와의 기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그녀는 먹는 일에 안면을 다 사용하는 먹부림의 소유자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1박2일’ 강호동이 떡 먹고 휘파람 불듯, 물고기가 아가미 호흡하듯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뻐끔뻐끔 음식을 입안에 넣었다. 어찌 보면 미비한 차이지만 20년지기의 밥 먹는 모습이 확 낯설어졌다.


왜 밥을 그렇게 먹어? 

와, 내가 우찌 먹는데? 

입을 동그랗게 말면서 요상스럽게.

내가? 아이다 그런 적 없다~


서로를 흉내 내면서 웃고 끝난 저녁식사가 가슴 뭉근하게 생생하다. 친구는 그 즈음 건강이 나빠져 병원치료 중이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입을 쓰는 횟수가 줄면 근육이 퇴화하고 가동범위 안에서 입을 쓰게 될 테다. 말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웃지 않은 날이 이어져도 입매가 굳는다는 거겠지. 


마음이 쪼그려 굽어있으면 얼굴도 돌돌 말린다. 말할 때, 먹을 때 심지어 침묵할 때조차 입모양은 그 사람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마음을 쓰는 방향에 따라 성격의 길이 바뀐다. 어른들은 이걸 심보라 하셨다. 입매는 심보를 나타낸다는 관상학이 엉터리는 아닌 듯.    


결론 : 요 며칠 입이 줄어든 것 같다는 내 느낌은 심히 겨울전쟁을 치르는 중인 내 심리상태가 반영된 것. 친구의 표현대로 ‘쪼그라든 주디’ 펴는 방법은? 기다려야지 뭐.  


* 누구, 나랑 밥 먹을 때 내가 동그랗게 입을 말면서 뻐끔뻐끔 먹거들랑 일전의 나처럼 물색없이 지적질하지 말고 못 본 척 지나쳐주시압. 마음이 굽어있는 것일 테니 펴질 날도 머지않을 거임.  


#이목구비 #웃어요 #세월은화살과같이 #심보 #반디의숲 #반딧불이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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