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변호사의 Law 에세이
글쓴이 김예원 변호사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상임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전담변호사로 일했다. 지난 5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에서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건장한 40대 남성인 그 분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변호사님, 제가 운동을 엄청 좋아해요. 그런데 공차다가 너무 세게 잘못 맞아서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죠. 한쪽 눈 실명하고 초기에 대처를 잘 해서 다행히 나머지 눈이 잘 적응해 주었어요. 그래서 지금 보는 거는 아무 이상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택배기사인데 운전면허 갱신하러 갔다가 날벼락을 맞았어요! 눈이 하나가 없어서 무조건 택배배달을 할 수가 없대요! 제가 15년 무사고에요. 그런 것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냥 절대 안 된다고만 하는데 저는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요?”
매우 절박한 모습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1종 면허가 갱신이 안 되면 무면허 운전으로 택배배달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제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졸지에 무면허 운전이라니.. 이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잠이 확 깨고 길 가다가도 천불이 나서 숨이 턱턱 막힙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나도 짧게나마 같은 이유로 숨이 턱 막혔던 적이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 의료사고로 평생 오른쪽 눈 없이 살아왔지만, 왼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가끔 얼굴을 자세히 보는 누군가가 놀라거나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골살이로 생계형 운전면허가 필요했던 나는 대입시험을 마치자마자 바로 운전면허를 땄다. 1종 보통 운전면허를 희망했지만 어찌어찌 2종 보통 운전면허를 가지게 되었다.
운전은 신세계였다. 더 이상 매일 통학하는 버스에 왕복 3시간 혹사당하지 않아도 되고, 동생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면서 언니 노릇도 톡톡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고 7년 운전행진을 이어가던 어느 날, 사법연수원 2년차였다.
경찰서에서 왠 우편물이 왔나 싶어서 뜯어보았다. 7년 무사고 운전이니 1종 보통 운전면허로 무상 업그레이드를 하라는 안내문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헌법재판소에서 시보로 있었던 때라 몹시 바빴지만 1종 보통 운전면허를 간단히 취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일을 제쳐두고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접수방법도 간단했다. 수수료 내고 서류적어 내고 신체검사 받으면 끝이었다. 기대감에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신체검사실로 들어갔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깝지 않았다. 간단한 신체상태 검사 후에 시력검사대 앞에 섰다. 한쪽 눈을 가리는 큰 수저를 들고 나는 늘 하던대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른쪽 눈은 없어요 의안인데요, 왼쪽만 검사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랬더니 검사하던 공무원은 짜증을 내며 나의 서류를 북! 찢었다. 순식간의 일에 너무 당황해서 사색이 된 나를 지켜보던 머리가 희끗한 다른 공무원은 급하게 나를 데리고 나간다.
“ 1종 운전면허가 나오려면 양쪽 눈이 다 있어야 돼서요.. 그래서 그런거니 이해해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안내문이 저한테 와서 제가 온 건데요?”
“법으로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안내문이 잘못 간 것 같은데요. 그냥 아까 내신 돈 환불 받아 가세요”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신체검사를 기다리고 있고 찢겨진 내 서류는 온데 간데 없어서 일단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얼른 법전을 펼쳤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한 눈 시각장애인은 아예 1종 보통 면허시험에 응시조차 불가능했다. 내가 왜 2종 밖에 딸 수 없었는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택배 기사님과 비슷한 일을 겪으신 분은 생각보다 많았다.
“지금 근처 교회에서 봉사활동으로 12인승 교회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데요, 한쪽 눈에 녹내장이 와서 수술을 하다가 뭐가 잘못 됐는지 그 눈을 못 쓰게 된 거에요. 그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1종 운전면허를 반납하라니요. 2종 면허는 9인승까지 밖에 운전을 못한대요. 요새 누가 9인승을 사나요? 자동차 회사에서도 9인승은 단종시키고 있는데 눈 한쪽이 안 보인다고 봉사활동도 못하는 게 어딨나요”
“저는 초등학생 때 눈을 다쳐서 한쪽 눈으로 보는데요, 이번에 대학 들어간 기념으로 운전면허학원 등록하려니까 1종은 아예 응시도 안되던데요? 눈이 한쪽 밖에 없어서 시야가 좁다니요, 고개 조금씩만 돌리면 다 보이거든요? 게다가 요새 사각지대 잡아주는 백미러에, 후진기어 넣으면 카메라까지 다 나오는 세상인데 눈 한쪽이 안 보인다고 아예 주행시험을 볼 기회조차 안 주는게 말이나 됩니까?”
왜 이런 규정이 생긴 걸까?
‘눈이 하나밖에 없다면 세상이 반쪽 밖에 안 보인다’는 편견이 낳은 규정이다. 한쪽 눈만큼 좁아든 시야를 가진 사람이 트럭 같은 큰 차를 몰고 다닌다면 도로가 위험해 질 것이라는 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버젓이 우리 법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조차 몇 년 전에 ‘한쪽 눈이 안보이면 시야가 반 쪽’이라는 모 병원장 의견서를 받아들여 이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장애인에 대한 1종 보통 운전면허 응시제한은 10년도 전에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래! 시각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편견도 바꿔보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함께 국회의원실을 통해 도로교통법과 시행령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택배 기사님도 수시로 전화로 하소연을 하셨다. 계속 법개정을 위하여 노력한 끝에 드디어 내일(11월 30일)부터 한 눈 시각장애인도 1종 보통 운전면허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변호사님, 정말 너무 기쁩니다. 그동안 이거 바꾸겠다고 여기저기 민원 넣고 다니면서 진상이라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이제 합법적으로 일하면서 가장으로서 당당하게 밥벌이할 수 있다니 정말 홀가분하네요!”
몇 년이 걸린 법개정 과정동안 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 등 거창한 이야기를 반복했지만, 정작 택배 기사님이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이 더 귀해보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잘 작동되는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