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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25. 2016

장애남편 위해 1인 2역 한 아내의 후회

김예원 변호사의 Law 에세이

글쓴이 김예원 변호사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상임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에서 공익전담변호사로 일했다. 지난 5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에서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어떤 중년 여성이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신다. 빠글빠글 파마머리에 거친 손을 가지신 그 분은 일생동안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하신다.


“제 남편이 장애인이라 제가 어쩔 수 없이 한 일인데, 나라에서 보호를 해 주지는 못할망정 처벌을 받으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함께 가져온 서류를 읽어보니 ‘피고인 안민우는 공판기일에 출석하라’는 통지였다. 이 여성분의 남편이 무고죄로 기소된 것이었다.


사건기록은 생각보다 꽤 두꺼웠다. 단순한 무고죄 사건이 아니었다. 사문서위조죄, 위조사문서행사죄 등 여러 개의 죄명이 함께 기소되어 있었다. 몇 권의 사건기록을 차분히 읽다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김필순씨는 젊은 시절 자신을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니던 안민우씨와 일찍 결혼을 했다. 남편 집은 꽤나 유복하였지만 남편이 워낙 술을 좋아하고 밖으로 돈을 헤프게 쓰는 바람에 결혼 초기부터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알콜중독에 이르게 되었고, 술을 마시면 자주 아내와 두 딸들을 폭행하였다. 그러다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걸렸고, 알콜중독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어가고 신장이 손상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는 이 웬수떼기가 자기한테 돈 안준다고 시어머니한테 부엌칼을 들고 설치는 거에요.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장애인 등록을 하게 된 거에요.”

안민우씨는 지체장애와 정신장애의 중복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 이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졌다.


안민우씨는 장애인으로 등록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지인들에게 술값, 도박비 등 명목으로 집을 담보로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울리는 친구들 연대보증에 도장을 찍어 준 건도 여러 개였다.


“빚 갚으라고 전화가 빗발치는데 정말 아득하고 멍하더라고요. 망나니 남편 만나 시어머니 수발하며 아이들 홀로 대학공부까지 잘 시켜놨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빚 갚아주려고 시장바닥에서 악착같이 장사하며 모아놓은 돈을 한 순간에 날려야 한다니요. 어떻게든 막으려고 소송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연대보증의 법적 효력을 없애려는 소송을 했고, 다음에는 근저당권 설정등기의 법적 효력을 없애려는 소송을 했다. 장애인 등록을 하고 신장투석과 요양을 위해 요양원에 입원한 남편의 입원비를 홀로 대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마지막 남은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한 이 소송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김필순씨. 그 시간들은 정말 지옥같았다고 한다.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또 터지고, 정말 막아도 막아도 끝없는 소용돌이 같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 거죠.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저도 조용히 살고 싶었으니까요.”


소송이 지연되면서 내야할 서류도 찾아야 할 증거도 점점 많아졌다. 경찰서와 관공서를 수시로 다녀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매번 대동할 수 없었기에 김필순씨는 안민우씨의 복지카드,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인감증명서를 항상 챙겨다니며 일을 보았다.


안민우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안민우 명의의 서류를 내고, 도장을 찍었다. 나아가 연대보증하게 만든 아무개, 근저당설정을 해 간 일당 아무개를 형사고소하는 일도 주저함이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고소한 형사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저보고 안민우씨냐며 검찰청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제가 안민우의 보호자 된다고 했더니 안민우를 무고죄와 사문서위조죄로 재판에 넘긴다는 거에요. 아니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신장투석 받으면서 휠체어로 다니는 사람을 재판에 나오라는게 말이 되나요?” 안 나가면 큰일 나는 건가요?“


결국 김필순씨가 안민우씨 이름으로 고소한 사건으로 인해 수사가 확대되면서 안민우씨가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김필순씨는 ‘남편도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었고 자기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서 수족처럼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 이 재판은 안민우씨가 그동안 여러 서류를 위조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허위 사실로 고소했다는 내용으로 처벌을 받으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정말 안민우씨가 재판을 받을만한 일을 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김필순씨와 함께 안민우씨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침대에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는 안민우씨는 온몸이 창백했고 특히 오랫동안 걷지 못했던지 다리에 근육이 전혀 없이 뼈가 앙상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안민우씨를 일으켜 앉혔다. 눈을 바라보고 말하는데 자꾸 눈을 못마주치시고 초점을 흐리셨다. 그래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예원 변호사라고 합니다. 선생님과 관련해서 어떤 서류가 법원에서 날라와서 그 부분을 좀 도와드리러 왔는데요, 혹시 이 서류를 한번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민우씨께 검찰이 위조한 것으로 특정한 사문서 몇 개를 보여드렸다. 본인은 전혀 컴퓨터로 글을 작성할 줄 모르고, 아래 찍혀있는 도장도 자기 도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서는 처음 보는 문서이고 자신은 도장을 찍은 사실도 없다고 한다.


이어서 안민우씨가 작성하여 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는 고소장 사본을 보여드렸다.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옆에서 김필순씨는 남편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민우씨께 힘드신데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편히 누워서 쉬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 사건은 김필순님께 제가 별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왜요? 저렇게 장애인인 남편이 그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아니오. 안민우씨는 처벌받지 않으실 겁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사실 안민우씨가 아니라 김필순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정에서 안민우씨에 대한 공소기각을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김필순씨에 대한 수사가 개시될 것입니다.”




가슴 아프지만 법적으로는 그러했다. 정신적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별도의 법원의 판결이 없다면, 행위능력(법률행위를 할 능력)이 제한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 선고를 받았는데 지금은 ‘성년후견제도’를 통해 행위능력을 제한한다. 


안민우씨는 금치산 선고를 받은 적이 없고, 빚을 지던 때는 장애인 등록을 하기도 전이었다. 빚을 지던 행위는 법적으로는 유효하기에, 이 유효한 행위를 스스로 뒤집는 내용의 사문서는 아내에 의해 위조된 것이 맞았다. 아내가 한 남편 명의 고소도 무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우리나라는 유독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 내가 선의로 얼마든지 그 의사를 ‘대리’해도 적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김필순씨는 아내로서 알콜중독 남편이 장애인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봤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증 지적장애인이라도 스스로 의사를 표시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장애인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해결사’가 아닌, 장애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조력자’ 역할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좀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기다려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 상식인 사회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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