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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07. 2017

부끄러움을 잊으면 안 되는 이유

김예원 변호사의 Law 에세이

글쓴이 :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변호사를 거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상임변호사로 일했다. 6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변호사님! 어머니께 잘 해드리려고 돈 모은건데... 이제 많이 아픈 어머니께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어요.”     


장애인 인권단체를 통해 알게 된 강민수씨는 느리지만 다급한 목소리였다. 지적장애인인 민수씨는 힘이 세고 지겨운 일도 꾀부리지 않아 집 근처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분명히 자기한테 맡기면 돈을 모아준다고 했거든요. 매 달 사장님이 월급주면 그 돈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가져다가 줬는데, 제 돈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어머니 병원가야 되는데 환장하겠어요. 다시 그 돈 받게 해주면 안될까요?”     


홀어머니와 착실하게 살고 있던 강민수씨에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집 근처에 김애리씨가 이사를 오면서 부터였다. 김애리씨는 강민수씨보다 15살 정도 많은 이웃이었는데 동네 시끄럽게 싸움도 자주하고 목소리도 컸다. 그래도 유독 강민수씨에게는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강민수씨는 그런 김애리씨가 조금은 든든했다고 한다.     


“어머니한테 반찬이랑 내복이랑 자꾸 사다주더라고요. 저 좋아하는 통닭도 사주고요. 그래서 어머니가 제 월급 잘 모아서 장가라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걸 믿고 매 달 사장님이 월급을 주면 갖다 준거라고요.”     




강민수씨는 사실 국민기초생활수급법상 ‘수급자’였기 때문에 별도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어머니 간병비도 부족했다. 그래서 공장에서 틈틈이 일을 했고 월급은 현금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 월급에 장애연금, 수급비까지 한꺼번에 김애리씨에게 꼬박 꼬박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강민수씨는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계산이나 은행거래, ATM기 사용은 하기 어려웠다. 김애리씨는 그런 것을 처리해주겠다며 돈을 받아간 것이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게 되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강민수씨는 김애리씨에게 그동안 갖다 준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면박만 받았다. 돌아온 강민수씨는 속이 까맣게 탔고 용기를 내서 공장 동료에게 알렸는데, 그가 여기 저기 수소문하다가 장애인 인권단체에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제가 민수씨와 다시 그 여자 집에 가서 통장을 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그런 것 없다고 했다가, 계속 달라고 하니 마지못해 주더군요. 바로 은행에 가서 확인을 해 봤는데, 세상에, 통장이 0원짜리 빈깡통이지 뭡니까?”     


가서 따지니 김애리씨는 강민수씨로부터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강민수씨가 수급자라서 몰래 일을 하고 있는 약점을 잡은 것이었다. 수급비도 자신이 법적으로 관리할 권한이 있어서 관리한 것이고 전부 강씨 모자의 반찬값, 공과금 등으로 처리해 주었다는 것이다.      


“저는 나라에서 지정된 강민수씨의 수급비 관리자거든요.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받아다가 저 두 사람 먹이고 입히느라 돈이 다 들어간 거에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여기 서류들이 다 증명해 주고 있다고요.”     


국민기초생활수급법상 무연고자 또는 가족이 있어도 수급비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주 예외적으로 이웃이 수급비 관리권한을 받기도 한다. 그 관리자는 1년에 몇 번 영수증을 정리해서 공무원에게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애리씨가 건네 준 서류뭉치에는 주민센터에 제출한 영수증 뭉텅이가 들어있었다. 영수증을 자세히 보니 강민수씨가 가본 적도 없는 곳의 이용료,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점의 식비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 특별한 수입도 없는 김애리씨는 최신 SUV차량을 구입했다.     


“거참 이상하군요. 강민수씨가 네일아트를 이렇게 자주 받는 사람이었나요? 이걸 이렇게 정리해서 내도 담당 공무원이 물어보지 않았다는 건가요?”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 봤는지 당황한 김애리씨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며 저 분들 기호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냐, 장애인 봉양하는 데 돈이 한 두푼 드는 것이 아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도 큰 일이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장애인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들이 지나친 합리화의 긴긴 터널을 빠져나와 이제는 매우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도 힘든데 이런 것을 보고 착취라고 하다니 가당치도 않단다.     


“네 좋습니다. 그렇데 법적으로 떳떳하시다면 법적으로 해야죠. 더이상 강민수씨한테 접근하지 마세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형사 고발이 필요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죄로 고발을 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위탁관계가 인정되어야 하고 횡령일시와 횡령금의 용처가 범죄일람표로 잘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런 사안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준사기죄로 고발장을 쓴다. 준사기죄라고? 형법 제348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미성년자의 지려천박 또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     

준사기죄는 심신장애를 이용한 것만 입증하면 별도로 기망행위(속이는 행위)를 한 것을 입증하지 않아도 사기죄와 같은 법정형으로 상당히 중하게 처벌된다. 그리고 횡령죄와는 달리 어디에 썼는지까지 자세한 범죄일람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나쁜 일이든 핑계와 변명은 있죠. 하지만 법에 위반되는 일을 했다면 핑계나 변명과는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꼭 그 돈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경찰조사에서 김애리씨는 월급은 구경도 못했다, 수급비도 꼭 필요한 곳에만 썼다고 거짓말을 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강민수씨가 장애인인것도 몰랐다고 했다. 네일아트 종업원의 진술서, 월급을 갖다주는 것을 봤다는 사람의 진술서를 발로 뛰며 받아서 냈다. 그래도 계속 오리발이었다.     


6개월 후 1심 선고가 있었다. 김애리씨는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구속되면서도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앙칼지게 내지르는 소리가 법정 밖으로까지 새어나갔다.      




염치(廉恥)는 ‘부끄러움을 살핀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을 살피는 것을 포기하면 사람은 한없이 이기적인 괴물이 된다. 지적장애인 주변에는 이런 괴물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 그 지적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 끼리는 서로 모르는 게 분명한데 어쩜 변명하는 것도 저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본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는 반증이다.      


염치를 잊은 인간은 머리에 뿔이 달려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다. 조금만 눈과 귀를 열어보면 스스로 멈출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이 보인다. 보이면 멈추게 해줘야 한다. 그 작은 용기들이 모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를 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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