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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17. 2017

저기 아픈 장애인이 간다?

김예원 변호사의 장애인 인권 Essay

   

글쓴이 :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변호사를 거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상임변호사로 일했다. 6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아버지가 몹시 사랑하는 딸은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한다. 그 딸은 고등학생이고 야구 관람을 참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이번에도 중간고사 끝난 딸을 위해 어렵사리 야구표를 구했다.   

   

함께 야구 관람에 나선 날, 아버지는 조수석에 딸을 태우고 뒷자리에 수동휠체어를 실었다. 일찍 도착한다고 했는데 장애인주차구역에는 오늘도 비장애인 차량들이 줄줄이 불법주차를 해 놓았다. 주차관리봉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창문을 열고 이야기해본다.     


"여기 휠체어 타는 관람객인데 장애인주차구역에 장애인 표지판도 없는 차가 잔뜩 서있네요"     

"죄송한데 오늘 같이 경기 있는 날은, 먼저 대고 들어가 버리면 저희도 방법이 없어요. 그냥 다른데 찾으세요."     


화가 났지만 일단 빈자리를 찾아야했다. 몇 바퀴를 돌아도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고, 차는 꾸역꾸역 더 밀려들어오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기로 하고 운전대를 돌린다.      


이 거리를 어떻게 수동휠체어로 밀고 경기장으로 들어가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지만 방법이 없다. 근처 공영주차장에 도착하니 오늘 무슨 단체관광을 가는지 전세버스가 한 가득이다.      


경기 시작시간이 지나버렸는데 저기 장애인주차구역이 보였다. 볼 것 없이 얼른 차를 댔다. 저쪽에서 황급히 뛰어오는 주차요원이 마침 뒷자리에서 꺼내는 휠체어를 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지며 짜증을 낸다.     




"지금 여기 버스들 들어 올 건데 다른 데 대세요!"

"장애인이라 장애인용주차장에 댄 거에요. 요 옆에 야구 보러 왔어요."

"아이 씨! 왜 아픈 데 돌아다니고 그래요?"     


아버지는 그 짜증에 숨이 덜컥했다. 고등학생 딸이 조수석에 앉아 그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있었던 이 일에 아버지는 단단히 화가 나서 법적 대응을 상의하러 오셨다.     


"딸내미가 평소 씩씩한 편인데 그 날 그런 일을 겪고 얼마나 울던 지.. 집에 와서 죽고 싶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 경기장이나 그 공영주차장이나 모두 원망스럽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안타깝게도 법은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한 비장애인만 처벌하고 있다. 주차장 관리자의 처벌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주차장이 민간위탁 형태로 운영되기에, 위탁자도 수탁자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결국 위자료 청구뿐인데 인용가능성도, 실익도 너무 적고 감정소모가 심하다.       


그래도 계속 경기장과 주차장에 민원을 넣고 언론에 알려 문제제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진심어린 사과도 받았다. 지금 그 경기장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마디 말, ’아픈 장애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유감이다.


 왜 장애인은 ’아픈’ 존재여야 할까? 왜 장애인은 ’아프니까 도와줘야 하는’ 존재인가? 장애는 아픈  것도 아니고,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한쪽 눈이 아프신데 어떻게 공부하셨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얼마 전, 한 장애여성단체의 행사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다. 뇌병변 장애 여성분이 멋지게 노래를 불러주셨고 감동이었다. 우리 집에서 자주 부르던 그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던 4살 첫째가 집으로 돌아오며 물었다.      


"엄마, 아까 그 노래 부르던 언니는 몸이 아픈 거야? 왠지 슬픈 마음이 들었어."     

"그랬구나~ 아픈 것이 아니란다. 슬프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야.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해~"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 아니다. 

장애는 개인이 노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함께 풀어갈 도전인 것이다.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보는 사회적 차별을 걷어내는 첫 걸음은 이런 작은 시선의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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