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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는 퇴보가 아니라 전진의 밑천이다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by 조우성 변호사

무한경쟁시대.

‘양보’는 결코 미덕이 아니다.

‘양보’는 뒤쳐짐과 동의어로 취급된다.


양보(讓步).

사양할 양(讓), 걸음 보(步).


글자 그대로의 뜻은 ‘내가 걸음을 내딛지 않고 남이 먼저 가도록 사양함’이다.

과연 양보는 더 이상 환영받지 않는 무능력, 무의욕의 상징일까.

아니면 여전히 양보는 인생살이에서 미덕이 될 수 있을까.

양보의 미덕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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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양보는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게 한다.


내 입장만 생각해서는 양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양보는 나만을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고 그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양보는 상대에 대한 폭넓은 관찰과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양보는 내 상황을 파악하게 한다.


양보를 하려면 내 상황이 먼저 파악되어야 한다. 내가 나아갈 수 없어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양보가 아니다. 내가 양보를 할 수 있는 또는 할 만한 상황인지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나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양보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셋째, 양보는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파악하게 한다.


양보를 통해 우선권을 얻은 상대방은 자신이 뜻한 바대로 나아간다. 의견의 개진이든 사업의 진행이든. 우리는 양보를 통해 상대방이 어떤 행보를 하는지 냉정히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앞질러 갔다면 놓칠 수도 있었던 그의 행보를 서늘한 눈으로 지켜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에 큰 도움이 된다.


넷째, 양보는 내 주위 평판을 좋게 할 수 있다.


내가 나아갈 수 있음에도 상대방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일은 요즘 결코 흔하지 않다. 바로 그 점에서 이러한 태도는 내 가치를 높여준다.

이 세상 누가 자기를 먼저 내세우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평범한 모습과는 다른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어? 저런 면도 있었네?’라며 나를 다시 보게 된다.




그래서 채근담은 양보를 단순한 퇴보가 아닌 전진을 위한 밑천이라 했다.


處世,讓一步爲高。退步,卽進步的張本

처세,양일보위고。퇴보,즉진보적장본。

세상을 살아갈 때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을 훌륭하다고 말한다.
이는 물러서는 것이 곧 앞으로 나아갈 밑천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 딱 1번씩만 양보해보자.

내 공덕을 쌓는 일이며 내 평판을 좋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군자의 처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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