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철도 레일 사이의 표준 간격(궤간, 軌間)은 1,435mm다. 이보다 넓으면 광궤(廣軌), 좁으면 협궤(狹軌)라 한다.
표준 궤간이 1,435mm로 정해진 이유는, 로마시대 두 마리 말이 끄는 전차 바퀴의 간격이 그 넓이였기 때문이란다. 불편할 만도 하다. 큰 물건을 나르기 위해서는 더 넓은 폭의 기차가 필요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기차 바퀴는 레일 간격에 맞춰 만들어졌다. 길고 긴 기차길에서 레일 간격은 언제나 같아야 한다. 중간에 함부로 레일 간격이 좁아지거나 넓어지면 기차는 탈선하고 만다.
언제나 동일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하지만 ‘커브길’에 접어들 때 레일 간격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고려가 필요하다.
왼쪽으로 굽은 길.
왼쪽 레일이 왼쪽으로 꺾어질 때 오른쪽 레일은 정해진 간격(1,435mm)을 맞추면서 커브를 돌아야 한다. 이때 당연히 오른쪽 레일은 왼쪽 레일보다 더 먼 거리를 돌아야 한다. (원형 육상 트랙 경기장의 코너 부분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가려면 바깥쪽에 있는 왼쪽 레일이 오른쪽 레일보다 더 먼 거리를 돌아야 한다. 기찻길이 어디 직선 선로만 있던가. 우리나라는 특히 산악지형이라 수많은 곡선 선로가 있다. 왼쪽 철로와 오른쪽 철로는 무신경하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앞과 옆을 살피며 커브의 방향을 파악하고 더 먼 거리를 기꺼이 달려야만 철로 위의 기차는 탈선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곡선선로에서 기차가 탈선하지 않는 메카니즘에는 캔트(cant)라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캔트는 커브길에서 탈선을 막기 위해 바깥쪽 레일을 좀 더 높게 만드는 기법이다. 아무래도 커브를 돌 때에는 차량의 바깥 부분이 원심력으로 밀려날 수 있어 바깥쪽 레일을 좀 더 높이 올려 차가 밀려나가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곡선선로에서 얼마나 다양한 조작과 노력이 필요한지 떠올려보면 참으로 놀라울 지경이다.
일정한 간격 유지는 대단한 세심함과 유연성,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문득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올려 본다.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친구 사이...
우리는 모든 소중한 관계에서 너무 가까워지려다 상처받고 상대를 멀리 보내버리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격’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내 속으로 빨아들이려 할 때 두 사람의 사랑은 일정한 궤간을 유지하지 못하여 사랑의 기차는 탈선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 아름답고도 소중한 거리를 유지해야 사랑에 '빠지지' 않고(falling in love),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지(living in love) 않겠는가.
레바논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 화가, 소설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를 소개한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