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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7. 2017

어느 외로운 항해 (feat. 모비 딕)

# 1

외동 아들 박경훈 일병이 전방 모 부대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박철상씨가 들은 때가 5년 전 아침. 논에 물 대러 가다 휴대폰으로 소식을 들은 경훈씨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박일병은 부대 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포상 휴가가 걸린 부대 내 경진대회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내무반 선임병들로부터 핀잔을 듣고 괴로워 했습니다. 더욱이 사귀던 여자친구가 변심을 한 듯 하여 동기들에게도 비관적인 말을 했었는데, 야간 경계근무 당시 소지하고 있던 K1 소총으로 자신의 목을 쏴 자살했습니다.’


소속 중대장이 철상씨에게 설명한 사고 내용.


평생 농사만 짓던 철상씨로서는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착하고 씩씩한 아들이 자살을 하다니. 제 엄마도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경훈씨는 오로지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다. 




다행히 구김살 없이 잘 커준 아들. 공부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지만 손재주는 뛰어났다. 공고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3년간 일 하다 입대했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전액 집에 가져다 주었고, 본인은 철상씨로부터 월 10만 원 용돈을 받아 생활한 알뜰한 청년이었다. 


박 일병은 중, 고등학교 때 역도를 해서 힘이 좋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어보면 누군가 부당하게 당하고 있을 때 개입해서 이를 말리던 와중에 발생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철상씨는 그런 아들이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다. 막내에 몸도 허약한 철상씨는 살면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대항하기 보다는 그 자리를 피하면서 자신이 손해보고 넘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렇게 씩씩하다니. 잠든 경훈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는 일이 철상씨의 낙이었다.


# 2

아들 일을 상의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다만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말로는 군인은 자기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단다. 스스로 자기 몸을 다치게 하는 일도 죄가 된다고 했다 (근무기피목적사술죄). 군인은 인격체인 동시에 ‘전투자원’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함부로 자살을 했으니…


다행스럽게도 부대 소속 지휘관들은 철상씨에게 정말 친절했다. 부대에서 장례도 지내주고 조위금도 거둬서 철상씨에게 전해 줬다. 죽은 아들 때문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동시에 군대에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자살이기에 당연히 국립묘지에 묻힐 수는 없었다. 철상씨는 집안 어른들께 사정을 설명하고 종중 산 한 귀퉁이에 아들 묘를 썼다. 마음이 허할 때마다 그 묘지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고 넋을 잃고 앉아 있다 오는 때가 많았다.


# 3

아들이 자꾸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아들은 울고 있었다. 철상씨도 울었다. 깨고 나면 눈이 퉁퉁 불었다. 뭔가 맺힌 일이 있어 저승에도 못 가고 구천을 떠도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예전부터 철상씨는 세상살이에 관심이 없어 TV나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읍내 장터에 갔다 들른 설렁탕 집에서 틀어 놓은 TV 프로그램에 눈길이 갔다. 


“아들이 군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면서도, 남의 아들은 멀쩡히 군생활 잘 하는데 왜 그것도 못 견뎌서 자살을 했을까. 내가 아들을 잘못 키운 거 아닐까 라는 자책이 들었십니더.”


“하지만 도대체 내 아들이 자살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지예. 다행히 이런 문제를 도와주는 단체가 있어서 상담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래서 저는 의문을 가졌십니더. 내 아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살펴보기 시작했지예. 의문투성이였십니다.”


“정말 아들놈에게 미안했십니더. 대체 아버지가 돼서 한 일이 뭐가 있는가. 그냥 눈물만 질질짜고 있었지예,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것도 못 밝히고… 그때부터 싸움을 시작한 기라예. 이거 끝날 때까지 저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더."


철상씨는 온 몸을 덜덜 떨었다. 저건 내 얘기 아닌가? 방송 끝 부분 안내 멘트에 나오는 단체 전화번호를 적었다.


# 4

군 의문사 문제를 도와주는 Y단체 직원이 철상씨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 단체에 접수되는 사건의 유형과 박 일병 사건이 너무 흡사하다고 했다. 철상씨는 제발 도와달라고 직원에게 매달렸다. 우선 해당 군부대에 가서 아들과 관련된 기록 복사를 요청했다. 사망진단서, 자살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서, 평소 아들의 군생활을 알 수 있는 서류들.


처음 군부대는 자료 복사를 거절했다. 규정상 안 된다는 설명. 하지만 Y단체에서 철상씨 지역구 국회의원과 연결시켜 줬고, 그 국회의원실에서 해당 부대에 협조 요청을 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비로소 받을 수 있었다. 


# 5

Y단체 직원과 철상씨가 자료를 같이 검토해 봤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자살을 했다는 박 일병의 몸에는 여기 저기 타박상이 있었고 차고 있던 시계는 부서진 상태. 부대원들의 진술에는 박 일병이 운동신경도 좋았고 성실한 편이어서 선임병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진술이 있었다. 박 일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선임하사와 소대장 진술서에서만 발견되었다. 박 일병의 주요 자살 이유라고 하는 애인의 변심 부분도 수상했다. 다행히 기록에 박 일병의 여자 친구 인적 사항이 나와 있어 철상씨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박 일병과 중학교 동창. 친하게 지내고 편지를 한번씩 주고 받은 사이였지만 이성관계라고 보이진 않았다. 특히 그녀가 철상씨에게 보여 준 박 일병 편지 중에는 ‘다음 휴가 때 소개팅 꼭 시켜주라. 너처럼 너무 건강한(!) 스타일 말고 좀 가녀린 스타일로’라는 부분도 있었다. 박 일병과 그 녀는 허물없이 지내는 중학교 동창에 불과했다. 그런데 애인의 변심이라니.


그녀는 박 일병 사망 후 군부대 요청으로 해당 부대에 가서 진술서를 하나 썼다고 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최근 자기가 바빠서 박 일병의 편지에 제대로 답장을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박 일병이 좀 상심했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은 군 담당자가 방향을 제시해 줬단다. 사건을 잘 마무리 지어 박 일병에게 손해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서류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것.




# 6

진실은 분명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상씨는 수시로 해당 군 부대에 가서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선임하사와 면담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 면담신청은 번번히 거부당했다. 철상씨는 왜 최초 사고 당시 부검을 하지 않았던가 두고 두고 가슴을 쳤다. 부검은 죽은 아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라 생각해서 진행하지 않았다. 만약 그때 힘들더라도 부검을 진행했으면 자살이 아니라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이 사건은 관련자들을 법정으로 끌어내고 아직 제출 받지 못한 자료들을 정보공개청구나 문서제출명령 등을 통해 확보해야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7

철상씨는 논과 밭을 팔았다. 아들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집중하려면 농사를 지을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이래 저래 돈도 필요했다. Y 단체에 출근하다시피해서 향후 대응 전략을 구상하고 다른 군 의문사 가족들의 문제도 같이 도와주었다.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선 본인이 좀 더 다양한 지식을 가져야만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더 컸다. 여러 사건들을 접하다 보니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 갖고 있는 유사점이 발견됐다.


우선 철상씨는 아들이 자살이 아니라 공무 중 사망했음을 이유로 보훈청을 상대로 국가유공자등록신청을 했다. 당연히 이 신청은 거부당했다. 그러자 철상씨는 행정소송으로 ‘국가유공자등록신청거부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보훈청을 행정소송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유공자등록신청을 했던 것.

아울러 부실한 수사를 진행한 군내 수사관과 지휘관들의 직무상 불법행위를 지적하는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철상씨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너머에 있다. 이러한 행정소송과 국가배상사건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들을 파헤치다 보면 아들을 죽인 범인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였다. 


그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분명 그 놈은 멀쩡히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 철상씨의 확고한 믿음이다. 보이지 않는 그 놈에 대한 적의가 철상씨를 버티게 해 주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는 한 아버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 8

우리들에겐 ‘백경(白鯨)’으로 널리 알려진 징편소설 ‘모비 딕’은 1851년에 출간된 미국작가 허먼 멜빌의 대표작으로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흰 고래와의 사투를 다룬. 적대적인 세계에서의 삶의 투쟁과 운명에 저항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선원 이슈메일이다.


이슈메일은 맴포트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다 식인종 원주민이 사는 어느 섬나라의 왕자라는 퀴케그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바로 친구가 되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가 함께 포경선인 피쿼드호에 타게 된다. 이 배의 선장인 에이허브는 배가 열대 지방 가까이 이른 뒤에야 갑판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침울하게 보이지만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얼굴의 반 이상을 긴 흉터가 지나간다. 그 흉터는 셔츠 속으로 사라지므로 사람들은 그 흉터가 옷 속으로 들어가 몸 전체를 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모습도 모자란 듯, 에이햅은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달고 다닌다. 이것은 그가 예전에 큰 고래와 싸웠음을 상기시킨다. 


선장은 승무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모비 딕'이라 불리는 흰 고래에게 한쪽 발을 먹혔기 때문에 복수를 해야 한다 말하고는 최초로 흰 고래를 발견한 자에 대한 상금으로 스페인의 다브론 금화를 메인 마스트에 박아 놓는다.


그 고래가 그를 불구자로 만든 이후 에이허브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해왔는데, 그것은 바로 그 흰머리 고래를 찾아 죽이는 것이다. 선원들 중 누구도 에이허브의 생각에 반대하지 못한다. 오히려 복수심에 불타는 선장의 야심에 감화되어 재앙을 몰고 올 여행의 목표를 향하여 두려움을 안고 무모한 시도에 빠져들게 된다. 모비 딕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포경선에서 쏘아 맞힌 작살을 숲의 나무처럼 꽂은 채 돌아다니고 있는 괴물이었고 성질 또한 사납고 흉악해 오히려 포경선에 대해 반항해 오기까지 한다.




몇 주일 동안 피쿼드는 바다를 항해한다. 선원들은 때때로 고래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이 쫓는 목표물은 단 하나, 드넓은 망망대해를 누비는 모비딕이다. 다른 배라도 만나면 에이햅은 그 선원들에게 흰머리 고래를 보았는지 묻는다. 그들은 그 악명 높은 괴물에 대해 경고하면서 악의 없이 피쿼드 호가 재앙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에이허브는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배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분의(quadrant, 망원경이 발명되기 전에 사용된 천체 관측기)를 부숴버린다. 말하자면 이제 에이허브는 혼자 우주에 대항하게 된 셈이다.




에이허브 선장은 직접 돛대 망루에 올라가 밤을 새운 끝에 대망의 흰 고래를 발견하고 사흘 동안에 걸쳐 추격을 한다. 첫째 날에 에어허브가 타고 있던 보트가 부숴지면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둘째 날에는 피쿼드호의 포경 선원들이 모비 딕에게 작살을 던지며 공격하지만 모비 딕의 반격으로 작살에 연결된 밧줄들이 뒤엉키며 보트가 세 척이나 파괴된다. 그리고 선원들과 선장은 간신히 구조된다. 셋째 날에는 모비 딕이 모선인 피쿼드호를 향해 달려들었고 배를 산산조각 나게 된다.


한 척만 남은 보트에 타고 있던 에이허브는 흰 고래를 향해 작살을 쏘아 꽂았고 그와 동시에 작살의 줄이 그의 목에 휘감기며 바다 속으로 끌려가 버린다. 결국 에이허브 선장의 집착으로 인하여 애꿎은, 그리고 유능한 선원들은 피쿼드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피쿼드 호에 탔던 승무원들 중 이슈메일만이 수장을 면하고 바다를 표류하다 퀴퀘그가 자신의 관으로 준비해 둔 상자를 발견해 살아남게 된다.


# 9

위 소설에서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모든 불가해하고 불확실한 그 무엇, 아니면 인간의 집요한 공격에도 살아남는 불면의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 또는 모든 악마서의 표상.


자신의 다리를 고래에게 먹힌 이후부터 에이 허브 선장의 인생 목표는 그 놈을 죽이는 일이다. 그것이 광기로까지 이어진다. 피쿼드 호의 선원 중 가장 이성적인 1등 항해사 ‘스타벅’ 은 광기에 사로 잡힌 선장으로부터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잠자고 있던 에이허브 선장을 죽이려고 하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장면도 나온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리고 나아가 오히려 잡으려다가 내가 죽음을 당할 위험이 큰 대상인 모비 딕. 하지만 에이허브는 이미 자신의 삶의 좌표를 그리고 잡았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


1948년부터 70여년 동안 약 39,000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이는 전사나 순직으로 인정된 사망건수를 제외한 것으로 1년에 600여명이 군대에서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살로 처리되어 국가로부터 아무런 예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아들 앞에 평범한 농부였던 철상씨는 진실을 찾으려는 전사(戰士)로 변모했다. 그가 상대하려는 대상은 모비 딕보다 더 치명적이고 거대한 세력일 수 있다. 하지만 철상씨의 위험하고도 외로운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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