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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5. 2017

섣부른 허영의 대가 (feat. 모파상의 목걸이)

섣부른 허영의 대가 (feat. 모파상의 목걸이)


본문 속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세부적 사실관계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다소 수정하였습니다.


내가 현재 발 딛고 있는 토대보다 남들 토대가 더 멋져 보일 때가 있다. 내가 그 동안 지키고 가꿔왔던 것이 소중한 데도 이를 알지 못한다. 그런 기초 없는 욕망을 허영이라 부를 수 있을까?




김성희씨(42세)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중견기업에서 부장 5년차, 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하나 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중산층이라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희씨는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 시간 여유라기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리고 예전 동창을 만난다고 하니 기대감 못지 않게 묘한 긴장감도 있어서 그 동안 동창회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참석하기로 했던 것.


성희씨는 학창시절 주목 받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동창회 모임에서 단연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으니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임옥경이었다. 옥경씨는 학교 때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공부든 다른 기타 활동이든 두각을 나타낸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투자 회사 임원으로 있단다. 이번 동기회 모임 장소 주선 및 그 대관비용도 옥경씨가 절반을 냈기에 다른 참석자는 돈을 조금만 내도 됐다.




옥경씨는 가정주부인 성희씨가 이해하기 힘든 전문 용어를 써가며 요즘 창업 트랜드, 투자가치분석 등을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옥경씨 주변에는 많은 친구가 둘러 앉아 부업으로 어떤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성희씨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갔고,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친구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다른 친구와 마찬가지로 집안 살림하고 애 키우는 일이 전부인 전업주부에게 그들이 무슨 관심을 두겠는가.


성희씨는 동창회 이후 자신이 너무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헤어질 때 옥경이 명함을 건네 주며 “투자나 창업 등에 관심 있으면 연락해”라며 웃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성희씨는 이제 나도 뭔가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경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좋은 방안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들었다. 성희씨는 동창회 1주일 후 옥경씨에게 연락을 했다. 옥경씨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듯 했지만 은연 중에 세상물정 모르는 전업주부를 낮게 보는 듯한 느낌을 성희씨는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나만의 착각이겠거니 라면서 성희씨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내가 사회 경험이 없는데 그래도 뭔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옥경씨는 마침 성희씨에게 알맞은 투자 건이 하나 있다고 했다. 이태리 음식점을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옥경씨 설명은 이랬다.


마침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오랫동안 셰프로 있던 김진형씨(52세)가 독립을 계획하고 있다. 진형씨는 이태리에서 유학했고, 호텔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독립을 준비 중이긴 한데 혼자서 가게를 차리기에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 현재 옥경씨 회사에서 진형씨의 창업 상담 및 브랜드 컨설팅을 하면서 투자처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성희 네가 자본을 대고 김진형씨가 모든 실무를 맡아서 하는, 말하자면 동업형태가 되는 거야. 재료나 주방, 서빙 등은 진형씨가 워낙 경험이 많으니 총괄하면 되고, 성희 너는 카운터를 맡되 대외적으로 홍보도 하고. 여사장이 되는 거지. 앞으로 동창 모임이나 중요 회식은 거기서 하면 되겠네. 그냥 음식점 사장 보다는 이태리 레스토랑 사장이면 어디 가서 명함 내밀기도 좋잖아.”


성희씨는 옥경씨 말에 화려한 샹델리아가 달려 있는 멋진 레스토랑 모습이 떠올랐다. 음식이나 서빙 등 궂은 일은 실무를 잘 아는 사람이 하고 자기는 자본을 투자하는 대신 대외적인 활동을 주로 한다고? 나쁘지 않은 조건 같았다.






성희씨는 남편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남편도 회사 생활을 10년 이상 더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차라리 이번 기회에 외식업 쪽에 기틀을 잡아두면 나중을 대비할 수도 있다 는 식으로 설득했다. 성희 씨 남편은 아내가 아무런 사업 경험도 없는데 왜 이리 흥분해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완강히 반대했다. 몇 번 설득을 하다 성희씨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내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냐. 나도 얼마든지 사회생활 잘 할 수 있다. 이렇게 뒤처지는 삶은 싫었다. 그리고 친구가 이미 잘 봐둔 자리이므로 위험 부담이 없다. 성희씨 남편은 성희씨가 워낙 강하게 요청을 하고 감정적으로도 격해 있는 터라 더 이상 반대하기가 힘들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옥경씨는 새롭게 장소를 마련하고 기초 설비를 준비하는 데 대략 2억 원 정도가 들고 초기 운전자금 5,000만 원이 필요한데, 셰프인 진형씨가 5,000만원을 대는 대신, 2억 원을 현금으로 출자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는 것. 투자자는 2억 원을 출자하지만, 진형씨는 노무를 출자하고 모든 실무적인 일을 다 한다는 전제에서였다. 그리고 수입은 5:5로 가져가는 것. 특히 진형씨는 업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기에 그가 끌어올 수 있는 고객도 꽤 된다고 했다.


성희씨는 펀드에 가입한 돈을 정리하고서도 투자금이 모자라, 성희 씨 남편 회사에서 퇴직금 중간정산까지 받았다. 결국 2억 원을 맞출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인 옥경씨를 믿고 또 전문가인 셰프와 같이 한다는 점에서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압구정동에 건물을 임차하고 전반적인 준비를 마친 후 가게를 오픈했다. 성희씨는 이태리 레스토랑 “쏘렐”의 여사장이 되었다. “President”라고 쓰고 자기 이름이 멋지게 들어간 명함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 한 두 달 간은 큰 문제없이 진행됐다. 그런데 곧 문제가 발생했다. 동업자인 진형씨와 불화가 점점 심해져갔다. 성희씨는 자기도 50% 지분을 갖는 동업자인데도, 진형씨는 언제부턴가 성희씨를 단지 카운터에서 돈을 받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했다.


레스토랑에 관한 모든 일은 진형씨가 관리하고 있었다. 성희씨가 특별히 알고 있는 바는 없었다. 인사문제, 재료선정문제, 메뉴선정문제 등 중요한 모든 결정은 진형씨가 독단적으로 알아서 진행했다. 성희씨가 몇 번 의견을 제시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무시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성희씨는 친구인 옥경씨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옥경씨는 ‘사업초기에는 누구나 그런 어려움이 있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사업경력이 없는 성희씨가 보기에도 진형씨는 경영자로서 자질이 없었다.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에서 주방에서 요리만 하면 잘 할지 모르겠으나 진형씨 자신이 이것 저것 맡아 하다 보니 보조 주방장에게 조리를 많이 맡길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음식의 질이 떨어져 손님들 평판도 안 좋게 변해갔다.




오픈 한 지 1년. 매월 2,000만 원씩 적자가 누적됐다. 초기에 준비했던 운전자금은 거의 소진됐다. 임대료도 3개월 이상 연체됐다. 무엇보다 동업자 간 불화가 커져서 더 이상 동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성희 씨는 차라리 동업관계를 청산하고 자신이 투자한 2억 원을 돌려받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동업 법리상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변호사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 동업을 청산하려 할 경우 청산 당시 동업재산가치를 100으로 보고 이를 50 : 50씩 나눌 수 있을 뿐이다(잔여재산분배청구권). 


지금 현재 동업재산이라고 해봐야 임대차 보증금 5000만 원(그 중 1.500만원은 연체로 인해 감액되어 현재는 3.500만 원이 남은 상황), 집기류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상희씨가 회수할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었다. 더구나 그 와중에 진형씨는 성희씨가 전문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동업자로서 제대로 업무를 하지 않고 소위 ‘폼’만 잡으면서 동업자로서 의무를 게을리했으므로 그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책을 묻는 성희씨 앞에서 나 역시 속 시원한 답을 해 줄 수 없어 심히 난감했다.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이 189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목걸이’는 허영으로 인해 인생의 고난을 맛 본 어느 여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 



주인공 마틸드는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문교부 하급관리의 아내라는 자신 처지가 항상 못마땅했다.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생각하는 마틸드. 어느 날 남편은 문교부장관 내외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갖고 온다. 마틸드에게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는 화를 낸다. 화려한 파티에 입고 갈 옷이 없는데 무슨 파티냐 라며.


하는 수 없이 남편은 저축해두었던 400프랑으로 그녀 드레스를 사는 데 쓴다. 드레스를 산 마틸드는 다시 괴로워한다. 드레스에 걸 맞는 액세서리가 없었기에. 

고민 끝에 마틸드는 친구인 돈 많은 마담 포레스티에로부터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다. 파티는 성대했고, 마틸드는 드레스와 목걸이 덕에 사람들 주목을 끌었다. 


그들이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4시. 마틸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 번 도취해 보려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목에 있어야 할 목걸이가 없는 것이 아닌가. 


목걸이를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한 그들은 결국 빌려온 목걸이와 똑같은 것을 찾아내어 무려 3만 6천 프랑을 주고 샀다. 그 돈은 남편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다가 빚을 끌어들여서 마련한 것이다.


마틸드 부부가 그 빚을 모두 갚기까지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틸드는 빚을 갚기 위해 하녀를 내보내고 싸구려 다락방으로 이사한 뒤 10년동안 하층계급 여자들처럼 온갖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다. 그녀는 가난에 찌들어 거칠고 우락부락한 할머니 같은 여자가 되어버렸다. 머리를 빗지 못하고 스커트가 구겨져도 태연했다. 굵은 목소리로 지껄이면서 벌개진 손으로 물을 첨벙대면서 마루를 닦았다. 결국 마틸드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그 빚을 모두 갚았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마틸드는 포레스티에를 만났다. 포레스티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포레스티에는 자신의 친구인 마틸드가 너무 많이 변해서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마틸드는 이제 모두 지난 일이라 생각하고 포레스티에에게 목걸이를 잃어버렸던 일, 그리고 똑 같은 목걸이를 사주기 위해 빚을 내고 그로 인해 10년간 고생해서 이제서야 빚을 다 갚은 이야기를 했줬다. 그 말을 듣자 마담 포레스티에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내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기 드 모파상의 이 작품은 극적인 반전과 인간의 허영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유명한 작품이다. 마틸드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허영을 메꾸기 위해 친구로부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리고, 그 목걸이를 잃어버려 10년 세월을 고생하는 마틸드. 하지만 그 목걸이는 가짜였다는 허탈한 반전을 통해 독자들은 탄식과 아울러 허영심에 대한 경계를 갖게 된다.




성희씨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누리고  있었다. 안락한 가정, 성실한 남편, 착한 아들. 하지만 동창회에서 옥경씨를 보고 상희씨는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화려해 보이는 이태리 레스토랑이라는 목표가 생기자 이성을 잃고 내달렸다. 

다만 모파상 소설 속에서 마틸드는 고생만 한 것이 아니다. 빚을 갚는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삶의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한 것으로 그려진다.

성희씨가 이번 동업분쟁에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혹독한 경험이 성희씨에게는 또 다른 삶의 교훈으로 작동하여 치열한 삶의 현장에 제대로 발을 딛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성희씨는 이 역경을 자신에게 도움되는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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