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Oct 04. 2017

날이 추워진 뒤에야 (feat. 세한도)


본문 속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세부적 사실관계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다소 수정하였습니다.



세상 인심이 어디 한결같을 수 있겠는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세상 인심. 그럼에도 한결 같은 굳은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그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기에.




이영후 사장은 작은 IT업체로부터시작해서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가며 수출전문 회사를 키웠다. T사는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 받지 않고 자체매출만으로도 일정 궤도에 올랐다. 그러던 이 사장이 곤경에 빠지게 된 계기는 키코(KIKO)때문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수출기업들은항상 환율변동(특히 환율하락)에 따른 환 리스크에 노출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은행들은 2005년부터2008년까지 수출 중소기업들에게 환차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상품이라며 KIKO에 가압을 권유했고, 일부 기업에게는 재무상태가 좋지 않음에도불구하고 KIKO에 가입하면 대출을 해주겠다는 등 대출과 연계시켜 상품을 적극 판매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KIKO 상품에가입한 기업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심지어 도산하는 회사까지 속출했다. 




T사는 KIKO로 인해 2년치 영업이익을 통째로 날렸다. 이 사장은 매출 신장세를 예상하고 무리를 해서 공장부지를 사들이고, 공장에서가동할 여러 설비까지 대출을 받아 구입한 상황이었는데, KIKO 사태로 인해 현금 유동성에 큰 압박을받게 됐다. KIKO 피해 업체들은 협의체를 결성해서 공동으로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오랜 법정 투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사장이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최소 50억 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필요한 상황. 그때 이 사장은 지인의 소개로 부동산 시행 전문가 윤 사장을 만났다.


윤 사장은 이 사장의 어려운사정을 충분히 들어 안다면서 드라마틱한 상황 반전은 역시 부동산 개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새로운 사업 제안을 했다. T사가 이미 확보해 놓은 공장부지가 있으니 이를 상업용지로 전환한 다음 주상복합건물을 신축해서 분양하면 1년 이내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다만 이를 위해서는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고도의 전문적인 작업’이 필요했고,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통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은 윤 사장 자신이 전문이라고 했다. 


이 사장은 부동산 시행 쪽으로는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윤 사장을 믿고 진행해 보기로 했다. 윤 사장은 인허가 업무와 금융기관 대출을 맡았다. 윤 사장은 초기 작업 진행을 위해 이 사장에게 1억 원을 요구했다. 인허가 업무를 하려면 설계사무소를 선정해야 하고 여기 저기 작업도 해야 하는데, 이번 건은 급행으로 진행해야 해서 업무추진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이사장은 윤 사장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급히 돈을 마련해 주었다.


윤 사장은 담당 공무원과인허가 업무를 긴밀하게 진행한다고 수시로 이 사장에게 보고했다.  금융기관 대출은 인허가가 떨어짐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놀랍게도 6개월 만에 인허가 업무가 완료됐다. 윤 사장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금융권 대출도 덕분에 잘 마무리 되었다. 원래 대출금은 한도만 설정해 두고 천천히 대출을 집행할 수도 있었으나 당시 T사가 여러모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대출을 받아 T사의 급한 불을 끄는 데 사용했다. 금융기관도 공사비 이외의 용도로 T사가 돈을 집행하는 문제에 대해 묵인해 주었다.




하지만 그 후 문제가 터졌다. 인허가과정에서 윤 사장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3,000만 원)을 제공했음이 감사에서 적발됐다. 담당 공무원이 관련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서 인허가를 진행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결국 인허가는 직권으로 취소되었고, 담당 공무원은 수뢰죄로 구속됐다. 이 사장 역시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윤사장이 직접 주도한 일이어서 자신은 잘 모른다고 변명이었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이 사장을 더 나쁘게 봤다. 모든 일을 주도했던 윤 사장은 사건이 적발되자 수사에 적극 협조했기에 불구속 처리 되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기에 수사기관은 이 사장의 죄질을 나쁘게 보아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이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사장이 구속되자 회사는 엉망이 됐다. 금융기관 대출은 인허가를 전제로 이루어졌는데 인허가가 취소되었기에 대출은 기한이익이 상실되어 금융기관은 원금전체를 당장 갚으라고 통보했다. T사는 그럴 여력이 안되었다. 금융기관은 바로 T사 공장부지 및 본사 사옥에 대한 경매 조치에 들어갔다. 당장 운전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납품에 차질이 생겼고, 기존 거래처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이 사장 구속 2달만에 회사는 거의 마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중소기업이다보니 회사가 대표이사 중심으로 운영이 되었던 이유도 컸다. 

급여가 2달 째 밀리자 직원들은 이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신고했다. 결국 이 사장은 뇌물공여죄, 대출사기죄, 근로기준법위반죄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 받았다. 이사장은 2심에 항소,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1심 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Y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이어갔다.




황문영 사장은 사회에서 알게 된 지인이다. 어느 날 나를 찾아온 황 사장은 이 사장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 변호사님. 제가 이 사장님을 좀 돕고 싶은데 조 변호사께서 다리를 좀 놓아주십시오.”

황 사장의 설명은 이랬다.


이 사장이 갑자기 구속되자 회사는 급속도로 기울었고, 집안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사장은 구속 전에 따로 여유자금을 빼놓거나 하지도 못했다. 이 사장은 병든 노모를 모시고 있었고, 부인도 몸이 안 좋아 계속 병원을 다녀야 했다. 자녀들도 아직 어렸다. 당장 생활비가 힘든 상황이었다. 이 사장은 고민 끝에 교도소 안에서 사업관계로 서로 정을 맺었던 여러 지인들에게 편지로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매월 얼마씩이라도 생활비를 대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 


“아. 황 사장님도 그 편지를 받으셨던 건가요?”


내 물음에 황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황 사장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다른 회사 사장에게 전해 들었다. 

“이 사장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정리(情理)를 생각해서 부탁할 만한 곳 여러 군데 편지를 썼지만 다들 움직이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저라도 좀 돕고 싶어서요.”


이 사장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받지도 않았는데 왜 도우려고나서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




3년 전 황 사장은 이 사장의T사와 거래 중이었다.  황 사장은 T사로부터 1억 원 정도의 거래대금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T사는 KIKO로 인해 자금 사정이 극히 안 좋을 때였다. 황 사장 회사는 당시만 해도 T사보다 훨씬 작은 회사였는데, 그 대금을 받지 못하면 부도가 날 위험이 있었다. 황 사장이 거래하는 몇몇 업체들은 다들 KIKO 문제에 휘말려서 황 사장에게 줄 대금을 미루고 있었다. 황 사장은 거래업체마다 가서 통 사정을 했다. 물론 이 사장도 만나러갔다. 


황 사장의 애처로운 설명을 들은 이 사장은 “네, 알았습니다. 제가 힘들다고 황 사장님께 곤란을 겪게 할 수는 없지요.”라고 답했단다. 그 후 이 사장은 어렵게 자금을 마련해서 황 사장에게 보냈다. 어찌 보면 당연히 줘야 할 물품대금을 준 것인데, 황사장에게는 그때 이 사장의 조치가 정말 고마웠다. 


“다른 거래업체들은 전부 핑계를 대면서 대금지급을미뤘지요. 그때 이 사장님의 결단이 없었으면 오늘의 저도 없습니다.”




나는 황 사장 부탁으로 Y교도소에있는 이 사장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황 사장의 뜻을 전했다. 이 사장은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 사장은염치 불구하고 부탁한다면서 정말 필요한 집안 내 필요자금 상황을 내게 설명해줬고 부인 연락처도 알려줬다. 나는 그것을 황 사장에게 전했다. 황 사장은 적지 않은 돈을 정기적으로 이 사장 부인에게 보내줬고, 이 사장 노모의 병원 문제도 여러 모로 신경 썼다. 황 사장의 이러한 지원은 이 사장의 출감 때까지 이어졌다.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공자는 말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알 수 있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의 진가는 곤란을 겪어봐야 안다는 뜻이다.


‘세한도(歲寒圖)’는 조선후기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그림이다. 문인화(文人畵)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보(國寶)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초라한 집 한 채와고목(古木) 몇 그루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김정희의 증조부는 조선의 21대 임금인 영조(英祖)의 사위였다. 덕분에 김정희는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그 자신마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되었다. 모두가 정치적 투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유배 중에 그는 아내의 사망 소식을듣게 된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서울 친구들의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희는 오직 책을 벗 삼아 지낼 뿐이었다.


김정희의 제자 우선(蕅船) 이상적(李尙迪,1804~1865)은 그런 김정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연경에갔던 이상적이 『경세문편(經世文編)』이란 책을 구해다 보내주었다. 어렵게 구한 책을 권력 있는 사람에게 바쳤다면 출세가 보장되었을 텐데, 이상적은 바다 멀리 유배되어 아무 힘도 없는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 책을 받은 김정희는 가슴 깊은곳에서 밀려오는 뭉클한 감정에 눈물짓고 말았다.



이상적 초상


유배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김정희는 문득 『논어(論語)』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바로 「자한(子罕)」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이었다. 

공자(孔子)가 겨울이 되어 소나무나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김정희 자신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김정희는 이상적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바다 멀리 유배된 신세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상적의 뒤를 봐줄 수도 없었고, 그에게 돈으로 보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마음을 작품으로 전하는 것뿐이었다. 붓을 든 김정희는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의리를 비유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이 세한도다.


이어 김정희는 이상적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중 일부분이다.


“지난해에는 만락집과 대운산방집 2가지 책을 보내 왔더니 올해에는 120권이나 되는 우경문편을 또 보내주었네. 이런 책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천만리머나먼 곳에서 사들인 것으로 한때 마음이 내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세상의 도도한 인심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쫓거늘 이렇듯 마음과 힘을다해 구한 소중한 책들을 권세와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바다멀리 초췌한 늙은이에게 보내주었네.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력가들을 떠받들 듯이 말일세.


태사공(사기의 저자 사마천)께서는 권세와 이익으로 어울린 사람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서로 멀어지게 된다고 하셨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함 속에 사는 한 사람일진대 그 흐름에서 벗어나 초연히 권세 위에 곧게 서서 권세와 이익을위해 나를 대하지 않았네

태사공께서 하신 말씀이 틀렸단 말인가?

공자께서는 날씨가 추워져 다른 나무들이 시든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잣나무의 푸름을 알게 된다고 하셨네. 소나무 잣나무야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변함이 없지 않은가

추워지기 전에도 송백이요 추워진 후에도 그대로의 모습이니 성인께서는추워진 후의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특별히 말씀하신 것이라네.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에 높은 지위에 있을 때라 하여 더 잘하지도 않았고 귀양을 온 후라 하여 더 못하지도 않았네. 이전에 나를 대하던 그대는 크게 칭찬할게 없었지만 지금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만하지 않은가?

성인께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특별히 일컬으신 것은 단지 시들지 않고곧고 굳센 정조만이 아니라 추운 계절에 마음속 가득 느끼신 무언가가 있어서 그러하였을 것이네.”




형편이 좋을 때 호의를 베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누구나 할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 성의를 다해 배려하고 진심을 베푸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한때 고마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이를다시 베푸는 일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송백과 같은 황 사장의 마음이 절망 속에 갇혔던 이 사장에게 큰 힘이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사람의 인연이 오랫동안 함께 하길 기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