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속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세부적 사실관계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다소 수정하였습니다.
야망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담대한 계획을 가슴에 품고 결과를 이루기 위해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 내가 왜 그때 그런과욕을 부렸지?”라며 스스로 자책하는 순간이 있다. 그 행동들이탐욕에 기초한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음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김정혁 씨(47세)는 전자 부품을공급하는 K사 영업담당 부장이다. K사 영업담당 대리로 입사해 15년째 근무하고 있다. 성실을 신조로 삼고 있는 정혁씨는 주어진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열심히 일한다. 그런 정혁씨를 K사 박대표 역시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어느 날 정혁씨는 P사의 곽정화 이사(45세)로부터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로 만나자는 건지 궁금했다.
“사실 제가 I사 구매 담당 임원과 개인적으로 친합니다. I사 내부적으로 고민거리가 있더군요. 제가 좀 생각을 해봤는데 오히려그 상황을 잘 활용하면 부장님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허심탄회하게 말씀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I사는 K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주요 매출처였기에 정혁씨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무슨 고민이 있다는 걸까?
곽 이사의 설명은 이랬다.
I사는 오랫동안 제조 전체 라인에서 K사 부품을쓰기에 K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K사 부품 가격이 경쟁사에비해 다소 높은 것이 흠이라면 흠. 하지만 K사 제품은 경쟁사제품에 비해 성능이 탁월했다.
I사는 현재 라인 확대를 고려 중인데 K사 부품단가 때문에 고민이라는 것. I사는몇 차례 K사에 단가 인하를 요청했지만 K사 박대표는 시장에서가격이 한번 무너지면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I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혁씨는 그런 박 대표의 접근이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옳다고 보았다. 곽이사는 정혁씨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제안을 했다.
“김 부장님. 솔직히 저나 부장님이나 이제 직장생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모르지 않습니까. 제 말을 너무 곡해하지는 마시고 들어봐 주세요.”
곽 이사는 I사 구매 담당 최 이사와 친분이 있다고 했다. 최 이사는 현재 상무이사인데 내년에 전무이사 진급을 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야 할 수도 있단다. 최 이사는 K사 부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전무승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곽 이사의 구체적인 제안이 이어졌다.
K사의 제품 제조 방법에 관한 노하우를 알려주면 중국 쪽에 제조회사를 하나 잡아 유사품을만들어 싼 값에 납품하겠단다. 신설법인을 하나 세우고 곽 이사가 대표이사가 된 다음 제품을 공급하는식으로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 신설법인 지분 40%를 부장님께 드리겠습니다. 물론 차명으로 관리해 드리구요. 부장님은 절대 노출돼서는 안되니까요. 저는 I사 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이 제품을 유통할 수 있는 라인이있습니다.”
K사 박 대표는 부품 제조 공법에 대해 일부러 특허를 내지 않았다. 특허 출원할 경우 특허명세서에 구체적인 공법이 모두 기재되어야 하는데, 그렇게되면 경쟁사들이 그 공법을 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박대표는 번거로운 절차지만 공법을 부정경쟁방지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줄여서 ‘부정경쟁법’)에 따라 ‘영업비밀’로서보호, 관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곽 이사는 정혁씨에게 K사의 영업비밀을 빼내 달라고 부탁한 셈이다.
“K사 제품과 성능 차이가 크지 않다면 I사에서대량 구매해 주기로 I사측 이사님과 이미 협의를 마쳤습니다. K사부품가격이 업계 표준에 비해서 좀 비싼 것도 사실이잖아요. K사의 단가는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합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거잖아요.”
평소의 정혁씨라면 당연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요?’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겠지만, 정혁씨는 이상하리만치 그 말에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반 시장가 보다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장에 런칭시키기 위해불철주야 뛰었던 것이 정혁씨. 하지만 박 대표는 자사 제품이 우수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엔지니어 출신 CEO들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정혁씨는 며칠을 고민했다. K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곽 이사가 제안한 내용이 솔깃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기술만 없다 뿐이지 곽 이사와 같이 제품을 팔기 시작한다면 K사 박대표 정도는 시장에서 충분히 극복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급은 K사 제품만 판매하고있지만 새로운 법인에서 곽 이사와 함께 다양한 제품들을 아웃소싱한다면 제품 라인업을 훨씬 다변화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혁씨는 곽 이사와 이 모든 내용을 확약 받는 계약서를 썼다. 자신의 회사지분 보장, 그 회사에 자신이 지명하는 1인을 이사로 세운다는점, 추후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지분을 자기 명의로 옮겨준다는 점 등.
K사 연구소에는 정혁씨가 취직을 시켜 준 박 대리가 있다.믿을 만한 친구였다. 정혁씨는 거래처에서 기술적인 내용을 물어보는데 자신은 영업담당이라답변을 잘 못해 곤란을 겪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서 그런다고 핑계를대로 각종 기술 자료를 요청했다. 다만 일단 회사에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 정혁씨는 박 대리를 통해 확보한 자료를 곽 이사에게 여러 차례 넘겼다. 그후에도 정혁씨는 곽 이사와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시장에는 K사 부품과 성능이 유사한 제품이 나왔다. 그 제품은 I사에 납품되는 것을 시작으로 K사가 납품하던 납품처, 그리고 그 외의 납품처에 파상적으로 납품이 되었다.
K사는 발칵 뒤집혔다. 박 대표는 어떻게 된 일인지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연구소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감사가 이뤄졌다. 잘넘어가는 듯 했는데, 박대리가 허가를 받지 않고 접근이 차단된 사이트에 2차례 로그인 했던 기록이 발견됐다. 회사는 박대리를 강하게 압박했고, 결국 박대리는 이 전모를 실토하고 말았다. 박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답게영업비밀 보호에 관해서 2중 3중의 조치를 해놓았던 것.
박 대표의 정혁씨에 대한 배신은 실로 컸다. 정혁씨도 자신이 이렇게 쉽게 적발될줄은 미처 몰랐다.
박 대표의 고소로 정혁씨는 부정경쟁법 위반죄. 업무상 배임죄로 구속되었다. 아울러 정혁씨가 모든 사건의 전모를 털어놓는 바람에 곽 이사도 부정경쟁법 위반죄와 업무상 배임죄 공범으로 구속이되었고, 이 사건은 국내 중소기업 기술의 중국유출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기사화되었다.
세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스코틀랜드의 왕(던컨)으로부터 신임을받는 두 장군 맥베스와 뱅코는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던 길에 정체가 불분명한 세 마녀를 마주치게 된다.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이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왕위에대한 야욕에 사로잡히게 된다. 맥베스의 아내(레이디 맥베스)는 편지로 먼저 이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승전을 축하하기위해 맥베스의 영지에 머물게 된 던컨 왕을 해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맥베스는 이에 양심의 가책를 느끼며주저하지만, 아내는 그의 나약함을 꾸짖으며 살인을 부추긴다. 결국맥베스는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그러나 원하던 왕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맥베스는 죄책감과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고, 이로 인해 폭정을 일삼으면서 백성과 귀족들의 원성을 사게 된다. 여기에마녀의 예언을 들었을 당시 함께 있었던 동료 뱅코의 자손이 왕위에 오른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암살자들을보내 뱅코까지 죽이게 된다. 이후 맥베스는 죽은 뱅코의 망령을 보는 등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되고, 이를 떨치기 위해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마녀들은맥베스에게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예언과 함께 "여자가 낳은 자는 결코 맥베스를 죽일 수 없으며, 버넘 숲이 던시내인 언덕으로 오기 전엔 맥베스가 망하지 않는다."는예언을 남긴다.
이에 맥베스는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등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한편 던컨 왕의 살해 계획에 가담했던 맥베스의 아내는 몽유병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숨을 거둔다.
그리고 맬콤을 옹립한 잉글랜드 군이 스코틀랜드로 쳐들어오고 맥베스의 포악한 정치에 억눌렸던 귀족들도 이에 합세한다. 그리고 맥베스는 맥더프와 싸우게 되는데, 맥더프는 버남 숲의 나무를쳐들고 성에 이른다, 맥더프는 자신은 "여자에게서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미의 배를 가르고 나온 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마녀의 예언이 떠올라 절망에 빠진 맥베스는 힘없이 맥더프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되고, 이후 던컨 왕의 첫째 아들인 맬콤이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맥베스는 충직한 던컨 왕의 신하였다. 하지만 마녀의 예언이 그의 야망에 불을지폈다. 그리고 그 야망은 신념이 되고 결국 큰 화를 자초했다.
정혁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쳤다. “제가 무엇에 홀렸었나 봅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던 정혁씨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정혁씨는 자신의 삶에 큰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찾아온 곽 이사의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 그 유혹이 자신의 현재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과도한 욕망을추동(推動)시켰던 것이다.
우리를 무언가에 홀리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이런 잘못된 욕망에압도되는가? 우리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의 잠을 깨우는 교묘한 주문(呪文)은 언제 어디서든 유혹의손길을 뻗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