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11)- 현자성중기사
#1
친구를 만났다.
억울하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상심이 큰 상태였다.
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그럼에도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계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계포(季布)는 초한전에서 항우의 일급 장수였다.
계포는 초한전에서 끊임없이 유방을 괴롭혔다. 하지만 최종 승리자는 유방.
계포에게 큰 어려움을 겪었던 유방은 계포의 목에 천금의 상금을 걸었다.
#2
계포는 주씨(周氏) 집에 몸을 숨겼다. 주씨는 계포에게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고 했다. 계포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주씨는 계포의 머리를 자르고 허름한 옷을 입혀 노예로 변장시킨 다음 다른 노예들과 함께 노나라의 협객인 주가(朱家)에 그를 팔았다.
#3
주가는 대단한 협객이었고, 계포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주가는 계포의 사면을 위해 유방의 측근들을 설득했다.
“계포가 황제(유방)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자기 주군에게 충성한 것뿐입니다.”
결국 주가의 노력으로 계포는 유방에게 발탁되었고, 벼슬이 중랑장에까지 올랐다.
#4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우 아래서는 어느 누구도 빛을 보기 어려웠다(왜냐하면 항우는 본인 스스로 엄청난 무장이었기에, 비리비리한 부하들이 감히 비할 바가 안되었거든). 그러나 계포는 일찍부터 명성이 대단했다. 직접 적진에 뛰어들어 빼앗은 적기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계포도 일단 쫓기는 몸이 되자 노예로 변장하면서까지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한 결단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왜나하면 어찌 보면 비굴하게 삶을 이어간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으므로. 차라리 사내 대장부라면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멋지지 않느냐...고 할 수 있기에).
그러나 계포는 자기의 능력을 믿고 굴복을 능히 감수했던 것이다. 또한 자기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굴욕을 참고 견딘 끝에 한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진실로 용기 있는 자는 가벼운 죽음을 하지 않는다. (현자성중기사賢者誠重其死)“
- 사기, 계포난포열전-
#5
사마천은 헛된 죽음을 경멸한다. 그런 죽음은 ‘아홉마리 소에서 털 하나’(구우일모)를 뽑는 것과 다름 없다. 또 별 볼일 없는 자들이 한순간의 욱하는 감정 때문에 극단적인 언행을 취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생각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런 자들의 그런 언행은 결국 마음을 다시 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6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바로 성숙한 마음이다. 솔개는 때론 먹이를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닭보다 더 낮게 날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솔개가 닭보다 높이 못 난다고 말할 순 없다. 때와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자신을 낮출 수도 있다.
머리를 깎고 노예와 함께 은둔생활을 했던 계포의 심정이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진다. 나는 그것을 비굴함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