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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배우는 역사 : 나폴레옹의 대관식

by 조우성 변호사

[인생내공 / 명화로 배우는 역사] 나폴레옹의 대관식


나폴레옹의 즉위식은 19세기 초반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 그의 정치적 권력과 영향을 상징한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제라르의 '나폴레옹의 즉위식(대관식)'은 가장 유명하다.


1. 역사적 배경


나폴레옹 본다파르트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중심 인물이었다. 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이 즉위식은 나폴레옹이 자신을 프랑스의 황제로 선포하며, 그의 지배력을 공식화한 중요한 이벤트였다.


나폴레옹의 즉위식은 그의 지배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는 혼란과 불안정의 시기를 겪었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우월하고, 정치적으로도 능숙하여 국가를 통제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식화하고 국가를 안정화하기 위해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이 즉위식은 나폴레옹의 정치적 야망과 프랑스의 국가적 상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정치적 중심이 되어, 프랑스를 전쟁과 혼란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프랑스의 국력을 강화하고, 전세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2.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됨으로써 프랑스 혁명 정신은 퇴색한 거 아닌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혁명의 의미가 없어졌는지 여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주장한다.


☞ 대표적 학자 : 알란 스키드모어(Alan Sked)


스키드모어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자비로운 독재자'라는 책에서 나폴레옹이 독재자로서 권력을 휘두르며 프랑스 혁명의 초기 목표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혁명의 초기 목표는 왕정을 폐지하고,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권력이 중앙집중화되었고, 그의 독재적인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혁명의 원래 이상과 상충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일부 역사학자들은 나폴레옹의 통치가 프랑스 혁명의 어떤 이상을 실현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코드 나폴레옹을 제정하여, 프랑스의 법률 체계를 현대화하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려고 했다. 이러한 법률개혁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 중 일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 대표적 학자 : 앤드류 로버츠(Andrew Roberts)

로버츠는 '나폴레옹: 라이프, 레거시, 그리고 래슨'이라는 책에서 나폴레옹의 통치가 프랑스의 국가적 통합과 안정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프랑스 혁명의 의미가 손상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나폴레옹의 통치는 프랑스 혁명의 어떤 이상을 실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나폴레옹의 통치가 프랑스 혁명의 목표를 일부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며, 다른 측면에서는 그의 독재적인 통치가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상충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그림 : 자크-루이 데이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가. 완성시기 : 1807년


나. 그림의 특징

- 대따 크다. 가로 6.21미터, 세로 9.79미터이다.

- 그림 속에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는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의 어머니와 형제, 그리고 프랑스의 중요한 정치인들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 나폴레옹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교황의 도움 없이 자신의 왕관을 씌우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나폴레옹이 교황의 권력을 거부하고,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 또한 그림 속에는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이 황후로 즉위하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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