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로펌
요즘은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난 후 ‘아차_!’하는 순간들이 종종 발생한다. 나름대로 내가 알고 있는 법률지식에 근거해서 상담을 하고 사건을 수임한 후 돌아와서 찬찬히 다시 리서취를 해보면, 최근에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초기 단계에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즉시 의뢰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사건 수임을 완곡하게 거절하면 그나마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연히 이길 것인 양 큰 소리 치고 사건을 수임한 후 소송을 진행해 가는 도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낭패였을 것이다. 그 때가서 의뢰인에게 ‘이건 어차피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는데요..’라고 얘기하면 엄청 욕 먹을 것은 뻔한 일이다.
최근에 이와 같이 아차 하는 경험을 1-2번 한 이후로는 뭔가 체계적으로 판례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사실상 판례실력은 사법시험을 거쳐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최고의 수준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자꾸 까먹게 된다. 특히 변호사로서 활동하다보면 그 때 그 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고양이 세수하는 식으로 판례에 대한 up-date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망을 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리고 말이 좋아 legal-mind지, 대충 얼렁 뚱땅 감(感)으로 상담하는 경우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최근부터 다시금 판례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수험가에서 가장 정평있는 판례 교재를 하나 사서 쉬엄 쉬엄 보고 있다. 그런데 막상 판례집을 읽어보면서 깜짝 놀라게 되었다. 우선 내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결과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결론이 나 있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꽤 나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사회 발전에 따른 분쟁의 첨예화, 다양화로 인해 예전에는 주석서에서 이론적으로만 문제되던 부분들도 실제 분쟁이 제기되어 대법원 판례로 버젓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소송을 진행하면서 막연히 “이러저러한 원고의 주장은 법리적 타당성이 없어 부당합니다.”라고 두루뭉실하게 반박했던 것들 중에도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판례들이 상당히 나와 있었다. 내가 이 판례들을 다 알았더라면 재판 과정에서 훨씬 충실한 변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드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너무 쉽게, 타성에 젖은 채 업무에 임했다는 반성이 많이 들었다. 변호사의 가장 기본은 법리적인 충실함이다. 아무리 사건 유치가 중요하고 현란한 말솜씨가 폼나고 좋지만, 결국은 세밀한 법리적인 충실함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인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나 사법연수원에서 판례공부를 할 때보다는 실무경험을 축적한 바탕 위에 판례를 읽어보니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오고 활용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판례를 읽으면서도 “아하~ 이렇단 말이지. 그럼 일반 기업체에서 이 판례를 응용하여 이러저러한 조치를 해 두면 영업비밀 유출은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새로운 Idea가 창출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Idea에 기초해서 내가 만나는 기업체 사장님들께, 영업비밀 보호에 관련된 새로운 컨설팅을 Package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보니 내가 공부하고 있는 판례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보물단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내용들을 변호사로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고객의 만족도도 높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률 상품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조인은 평생동안 공부해야만 한다던 선배들의 조언이 피부에 와닿았다. 오늘부터 매일 1시간씩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판례공부에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내 무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