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의 법정 : 신화 속 현대법 읽기](1) "문명의 도둑, 진보의 영웅: 프로메테우스의 법정 변론"
#1 신의 형벌을 받은 최초의 내부고발자
카프카스 산맥의 절벽에 사슬로 묶인 신이 있다. 매일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고, 밤이 되면 다시 재생되는 끔찍한 형벌이 반복된다. 인류에게 불을 전해준 대가로 프로메테우스가 치르는 형벌이다. 제우스가 인류를 어둠 속에 방치하려 할 때, 그는 신들의 힘의 원천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했다. 단순한 불의 전달이 아니었다. 금속 가공술, 건축, 천문학, 의술, 항해술까지 - 문명의 기초가 되는 모든 지식을 가르쳐주었다. 인류를 위한 위대한 선물이었지만, 동시에 신들의 독점적 권한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이기도 했다.
#2 2024년, 올림포스 법정에 선 프로메테우스
이 태곳적 사건이 현대 법정에 회부됐다고 가정해보자. 검사와 변호인은 어떤 법리를 다툴까?
첫째, '긴급피난'의 성립 여부다. 형법 제22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위법성 조각사유로 인정한다. 변호인은 당시 인류가 불과 기술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2019년 대법원은 생존권 보장을 위한 기본재의 무단 사용을 제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다만 "피난행위가 위난에 처한 이익보다 현저히 큰 이익을 침해한 경우"는 긴급피난이 성립하지 않는다. 제우스 측은 신들의 질서라는 더 큰 이익이 침해됐다고 반박할 수 있다.
#3 기술유출과 공유의 경계에서
둘째, 산업기술 유출 혐의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상 이는 중대한 범죄다. 2023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유출 시도 사건에서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사례는 달리 봐야 한다. 그의 행위는 '인류 공동유산(Common Heritage of Mankind)' 개념과 연결된다. 이는 달, 심해저, 우주공간 등이 특정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문명 발전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신들이 독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셋째, 내부고발자 보호 문제다. 2009년 현대차 썬루프 하자 제보자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익 목적의 내부고발이 정당한 내부절차를 거쳤다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절차를 무시했지만, 제우스의 독점이 워낙 강력해 내부 절차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2021년 팬데믹 당시 제약회사의 부작용 은폐를 폭로한 내부자가 보호받은 판례가 있다.
#4 인류의 생존권과 지식재산권의 균형
넷째, 특허권 남용과 강제실시권이다.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유예 논쟁이 대표적이다. 2021년 WTO는 개발도상국의 백신 생산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적으로 유예했다. 이는 인류의 생존권이 지식재산권에 우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화이자가 개발한 코로나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특허를 개발도상국에서 무상 개방한 사례다. 신들의 불을 자발적으로 나눈 셈이다.
#5 AI 시대의 새로운 프로메테우스
이 사건이 현대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AI 기술 때문이다. AI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2023년 말 샘 알트만의 OpenAI 퇴출 드라마는 AI 기술의 통제권을 둘러싼 현대판 신들의 전쟁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AI 기술의 오픈소스화를 주장하고, 구글의 'AI First' 정책은 기술 독점을 추구한다. 어느 쪽이 제우스이고, 어느 쪽이 프로메테우스일까?
법적 관점에서 보면 프로메테우스는 분명 유죄다. 하지만 그의 불법행위는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다. 때로는 법을 넘어서는 선의의 반란이 필요하다는 역설적 진실을 이 신화는 전한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새로운 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리고 그 불은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진보는 반항자들의 손에서 시작된다" -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