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포스의 법정 : 신화 속 현대법 읽기](2) "진실을 찾을 권리와 알지 말았어야 할 진실: 오이디푸스의 딜레마"
어두운 복도 끝에서 진실이 손짓한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정체를 찾아 나선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는 진실을 향해 걸어간다.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들을 심문하며, 진실의 퍼즐을 맞춰간다. 마침내 그가 발견한 것은 무시무시한 진실이었다. 자신이 친부를 살해했고, 친모와 혼인했다는 사실. 진실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는 목을 매 자살했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영원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진실 추적이 부른 비극적 결말이다.
#1. 알 권리와 모를 권리의 대립
현대 법체계는 '알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정보공개청구권, 입양인의 친생부모 정보접근권, 정부 기록물 열람권이 그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를 권리' 역시 존중받는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보받지 않을 권리, 환자의 병명 비고지 요청권이 대표적이다. 2023년 대법원은 말기암 환자의 '모를 권리'를 인정하는 획기적 판결을 내렸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이 두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2. DNA 데이터베이스의 그림자
2023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DNA 검사로 밝혀졌다. 과학수사의 승리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DNA 정보의 수집과 보관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미국 '23andMe' 유전자 검사 회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경각심을 일으켰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은 유전정보 처리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범죄 수사를 위한 예외 조항은 계속 확대되는 추세다. 현대의 오이디푸스들은 손쉽게 자신의 유전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이 항상 축복은 아니다.
#3. 진실추적의 윤리학
형사소송법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 목사의 고해성사 비밀보장, 기자의 취재원 보호 등이 인정된다. 2024년 한 언론사 기자는 중대 비리 제보자의 신원을 끝까지 밝히지 않아 구속까지 됐다. 법원은 "진실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며 그를 무죄 선고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 추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 균형점을 놓쳤다.
#4.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
소셜미디어는 현대인을 투명인간으로 만든다. 2019년 메타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50억 달러의 벌금으로 이어졌다. 챗GPT의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프라이버시 논쟁도 뜨겁다.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새로운 기본권으로 부상한 이유다. 2023년 EU의 AI 규제법은 '디지털 진실 추적'에 제동을 걸었다. 개인의 동의 없는 프로파일링을 금지하고, 안면인식 기술의 사용을 제한했다. 그러나 테러 방지,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개인정보 수집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현대의 오이디푸스들은 디지털 미로 속에서 새로운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진실과 비밀, 알 권리와 모를 권리 사이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 추구라는 인간의 숙명적 충동이 부를 수 있는 재앙을 경고한다. 동시에 그의 의지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영웅적 면모를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더 많은 진실에 접근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큰 지혜가 필요하다.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현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축복이 되기도 한다." 빛나는 스크린 앞에 선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절실한 경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