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히키코모리, 고립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를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사회적 참여를 회피하고, 6개월 이상 자택에 머무는 상태"로 정의한다. 1998년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斎藤環)가 현대적 의미로 체계화한 이 현상은,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사이토 타마키의 저서 '사회적 히키코모리: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1998)은 히키코모리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현상임을 지적한다. 그의 연구는 일본 사회의 완벽주의와 과잉 동조의 문화가 이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제시한다.
일본 내각부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로 추정되는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특히 40-50대의 '중고령 히키코모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히키코모리 현상이 더 이상 청년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히키코모리의 주요 원인으로는 일본의 교육 시스템, 경쟁 사회, 집단주의적 문화가 지목되고 있다. 특히 'KY(空気を読む, 공기를 읽는다)'로 표현되는 집단 동조 압박이 사회적 위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디지털 전환은 히키코모리 현상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최근 연구들은 온라인 서비스의 발달로 인한 '편안한 고립'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한다. 식료품 구매부터 행정 서비스까지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고립을 장기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8050 문제'다. 80대 부모와 50대 히키코모리의 동거 가구가 증가하면서, 노老-고립의 이중고가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이는 가족 해체와 사회 안전망의 붕괴를 암시하는 심각한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치료적 접근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의 임상연구들은 '단계적 재사회화 프로그램'의 효과를 보고하고 있다. 온라인 상담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대면 활동을 늘리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으며,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치료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이제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 2023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약 58만 명의 '은둔형 외톨이'가 확인되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으며, 각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역설적으로 히키코모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강제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고립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고립을 선택한 이들을 단순히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