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잠룡(潛龍), 그 깊고 푸른 기다림
조선 땅에도 숱한 용(龍)의 전설이 전해진다. 임진강 용소(龍沼)에 살던 이무기가 천 년을 기다려 용이 되었다는 이야기, 미르 폭포에 얽힌 용추(龍湫) 전설 등. 용은 비와 구름을 부르고, 풍요를 가져오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신비로운 용도 처음부터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은 아니었다. 깊은 물속에서 웅크린 채, 훗날을 기약하는 잠룡(潛龍)의 시절이 있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첫머리에 '잠룡물용(潛龍勿用)'이란 말이 나온다. 풀이하자면 '물속에 잠긴 용이니, 아직 때가 아니니 쓰지 말라'는 뜻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용이 아니다. 이미 용의 형상을 갖추었으나, 세상에 나서기엔 아직 이른 것이다. 마치 떫은 감을 땡감이라 부르듯, 풋내 나는 젊은이의 치기 어린 행동을 경계하는 말과도 통한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용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훗날 비룡(飛龍)이 되어 구만리 장천을 호령하기 위한 웅크림, 그 깊고 푸른 기다림의 시간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인생도 잠룡의 시절을 품고 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오나라 왕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 청했고, 월나라 왕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들은 패전의 치욕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한(漢)나라 명장 한신(韓信)은 또 어떠했는가. 건달패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칼을 뽑지 않았다. 훗날 대장군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 잠시 치욕을 감내한 것이다. 이렇듯, '잠룡'의 시기는 훗날 '비룡'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과도 같다.
동양에만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이라고 다를쏘냐. 나사렛 예수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악마의 유혹을 이겨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또 어떠한가. 10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 그는 또다시 10년간의 표류를 겪는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끈기와 인내. 이 모두 '잠룡'과 닮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잠룡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주역은 그 답을 '현룡재전(見龍在田)'이라 일러준다. 잠룡이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 즉 재야에 묻혀 있던 인재가 비로소 세상에 쓰임 받는 때를 말한다.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제갈량을 얻은 일화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강태공이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드리운 채,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기다린 고사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룡재천(飛龍在天)'이라 하여, 하늘 높이 솟구친 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역은 '항룡유회(亢龍有悔)'를 경계한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니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지었지만, 불로초(不老草)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 불렸던 서양의 정복자, 그는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사인은 분명치 않지만, 정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의 탐욕 때문은 아니었을까.
"큰 나무는 바람에 꺾이기 쉽고, 높은 탑은 그림자가 길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성공의 정점에 섰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교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묵묵히 내일을 준비하는 '잠룡'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닌, 인내와 기다림이다. 마치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언젠가 비상(飛上)할 그 날을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 지금은 비록 흙탕물 속 잉어, 미꾸라지 신세일지라도, 언젠가 등용문(登龍門)을 박차고 오를 그 날을 꿈꾸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