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경계선

by 조우성 변호사

[몸이 말을 걸어올 때]


2년 전 일이다.


판례 사이트를 계속 뒤지고 있다. 커피 잔이 세 개 비어 있었다. 형사사건 최종변론을 앞둔 밤이었다. 의뢰인의 운명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손가락은 증거 자료를 뒤적이고, 눈은 판결문의 활자를 좇았다. '조금만 더'라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완벽한 변론, 그것이 나의 강박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새벽 네 시, 변론 준비를 마쳤다. 눈은 무거웠다. 어깨는 뻐근했다. 머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말했다. 괜찮다고,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의뢰인을 위한 일이라고. 나는 몸의 항의를 무시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마음이 요구하면 몸은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아침이 왔다. 두통이 왔다. 메스꺼움이 왔다. 몸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강력하게 항의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마음과 몸 사이에 주종관계는 없다는 것을. 몸은 마음의 하인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동등한 존재이며, 때로는 마음보다 더 정직한 존재라는 것을.


진통제를 삼켰다. 법정용 가방을 챙겼다. 중요한 변론이 있으니 버텨야 한다고 합리화했다. 서류의 글자들이 춤을 췄다.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소파에 쓰러졌다.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움을 청했다. 5일간 입원신세를 졌다. 그 5일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몸의 신호를 외면했는가. 정의, 승소, 완벽한 변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몸에게 폭력을 가했다. 조금만 더, 이번 사건만 더, 마지막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몸은 묵묵히 견뎠다. 그러나 영원히 견딜 수는 없었다. 어느 선을 넘으면 반드시 반란을 일으켰다.


동양의 오래된 지혜에 '심신일여(心身一如)'라는 말이 있다.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뜻이다. 둘은 분리될 수 없다. 하나가 아프면 다른 하나도 아프다. 그러나 나는 이 지혜를 잊고 살았다. 마음의 욕망을 위해 몸의 한계를 무시했다. 승소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과,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몸 사이의 균열을 방치했다.


퇴원 후 나는 작은 변화를 시작했다. 사무실에 타이머를 두었다. 한 시간마다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 11시가 되면 컴퓨터를 껐다. 어떤 사건 자료가 남아 있어도 멈췄다. 공원을 산책하며 햇빛을 쬐었다. 몸이 보내는 피로, 졸음, 통증이라는 미세한 신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었다. 몸을 도구가 아닌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었다. 몸은 성과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다. 몸이 아프면 나 전체가 아픈 것이다. 이 당연한 진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쓰러져야 했다.


과로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밤샘 작업은 열정의 증거이고, 주말 근무는 책임감의 표시라는 믿음. 성과가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는 풍토. 이 안에서 몸의 신호를 존중하는 것은 나약함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진정한 나약함은 몸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다.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변화는 순탄하지 않다. 중요한 사건이 오면 나는 여전히 옛 습관으로 돌아가려 한다. 밤을 새우고 싶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싶은 강박이 찾아온다. 때로는 그 유혹에 굴복한다. 다시 몸의 경고를 무시한다. 그러면 몸은 더 강하게 저항한다.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이 찾아온다. 나는 그제야 다시 경계선을 상기한다.


이 경계선을 지키는 것은 일생의 과제다. 단 한 번의 각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매 순간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이 '더'를 외칠 때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법정에서 설 때의 용기만큼이나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


승소는 순간의 영광이다. 건강은 평생의 자산이다. 과도한 업무는 단기적 성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균형만이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귀 기울여야 할 것은 박수 소리가 아니다. 우리 몸이 속삭이는 작은 신호들이다.


몸은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피곤하다고, 쉬고 싶다고, 한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몸의 언어를 읽는 법을. 마음의 폭력을 멈추는 법을. 쓰러지지 않고 오래 걷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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