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아픈 공격을 한다

by 조우성 변호사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아픈 공격을 한다]



모르는 이가 던진 돌은 그저 둔탁한 소음을 낼 뿐이다. 스쳐 피멍이 들 순 있어도 영혼에 흉터를 새기진 못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유독 아픈 건, 그 칼날이 내 심장의 가장 무르디무른 곳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약점의 지도를 내 손으로 직접 쥐여주었으니.



우리의 마음은 저마다 하나의 성채와 같다. 평생 높은 성벽을 두르고 깊은 해자를 파며 스스로를 지킨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나 약점은 성 가장 깊은 곳 밀실에 숨겨둔다. 하지만 우리는 홀로 성을 지키는 고독한 군주로 남을 수는 없는 법.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기꺼이 성문을 열고 그에게 ‘성채의 설계도’를 건넨다. 비밀 통로, 가장 얇은 벽, 아군만의 암호까지 전부.

이 위험천만한 교환은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인류는 명백한 적보다 변심한 아군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 편을 가려내고 결속을 다지려 서로의 가장 깊은 곳을 공유했다. ‘마음의 지도’를 교환하며 신뢰를 쌓은 것이다. 이 지도의 공유야말로 생존을 위한 가장 오래된 사회적 계약이었다. 그러니 그 계약을 맺은 동맹의 칼날이 외부의 창칼보다 훨씬 더 뼛속 깊이 파고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를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빗대었다. 추위에 떠는 고슴도치들은 온기를 나누려 서로에게 다가서지만,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멀어지면 춥고 다가서면 아프다. 이 슬픈 딜레마는 그대로 우리네 삶의 역설이 된다. 온기를 얻으려 건넨 내 마음의 지도가 어느 날 나를 겨누는 공격 좌표가 되는 비극. 이는 상대의 순전한 악의 때문만은 아닐 때가 더 많다. 그저 너무 가까웠기에, 서로의 가시를 피할 도리가 없었던 것뿐이다.

상처의 깊이는 증오의 크기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한때 존재했던 사랑의 깊이를 재는 가장 정밀한, 비극적 척도다. 왜 그 공격은 그토록 정교하고 치명적이었을까. 타인의 공격이 아니라, 한때 내 일부였던 것의 배신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를 빚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그 공격은 외부의 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를 찌르는 파편처럼 아프다. 사랑이란 어쩌면 타인에게 나를 해체할 권능을 위임하는, 가장 장엄하고 위대한 도박이다.

그러니 한번쯤 물어볼 일이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타인의 마음 지도는 얼마나 상세한가. 그리고 당신의 지도를 들고 있는 그 사람은, 그 지도의 신성한 무게를 알고 있는가. 그 성스럽고도 서늘한 교환 위에, 인간의 모든 관계는 위태롭게, 그러나 눈부시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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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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