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능이라는 신화: 리더의 가면인가, 민낯인가

by 조우성 변호사

[HBR Insight] (2) 감성지능이라는 신화: 리더의 가면인가, 민낯인가

* 대상 논문

What Makes a Leader?

Author: Daniel Goleman

Year: 1998

Key Concept: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리더십의 핵심 역량

* 일러두기

이번 컬럼에서는 대상논문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20세기의 영광이 저물고 디지털이라는 낯선 파도가 밀려오던 그 혼돈의 시절, 기업이라는 배를 이끌 선장들은 새로운 항해술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성과 효율이라는 낡은 나침반은 더 이상 길을 가리키지 못했다. 바로 그때,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지면을 통해 하나의 복음을 전파했다. 1998년의 일이다. "무엇이 리더를 만드는가?(What Makes a Leader?)"라는 이 도발적 질문에 그가 내놓은 답은 시장의 심장을 관통했다. IQ도, 기술적 역량도 아니었다. 그것은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었다. 리더십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라는 선언은, 강철의 시대에 지친 조직에게 따뜻한 위로이자 명쾌한 해답처럼 보였다.

그러나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강가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만 한다. 그 복음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 시대의 진리는 때로 다른 시대의 족쇄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신화가 세워진 자리, 그 허약한 지반

골먼이 그린 세계는 명확했다. 1990년대 후반, 안정된 위계와 예측 가능한 성장을 구가하던 미국의 거대 기업이 그 이론의 무대였다. /모든 이론은 그것이 탄생한 시대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이 이론은 몇 개의 단단한, 그러나 지금은 흔들리는 가정 위에 서 있다.

첫째, 감성지능은 훈련 가능한 ‘기술’이라는 선언이다. 이는 노력하면 누구나 감성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을 전제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질과 성격이라는 뿌리 깊은 영역을 간과한다. 내성적 인간에게 외향적 리더의 사회성 기술을 강요하는 것은, 나무에게 바위가 되라는 형벌과 다르지 않다.

둘째, 감성지능은 선(善)이라는 암묵적 믿음이다. 골먼의 세계에서 높은 감성지능은 언제나 조직의 성과와 구성원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감정은 도구일 뿐,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이론은 감성지능의 ‘어두운 측면(Dark Side)’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한다.

셋째, 맥락의 증발이다. 자기인식, 자기조절, 동기부여, 공감, 사회성 기술이라는 5개의 성배(聖杯)는 어떤 상황, 어떤 문화에서든 통용되는 보편적 진리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화염 속에서 대원을 이끄는 소방 지휘관의 리더십과, 고독한 실험실에서 창의성을 독려하는 연구소장의 리더십이 어찌 같을 수 있는가. 맥락이 사라진 이론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거인의 어깨에 던져진 돌멩이들

시장의 열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학계의 날카로운 돌멩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측정의 모호성’을 향했다. 감성지능을 과연 어떻게 과학적으로 잴 것인가. 대부분의 EI 테스트는 자기보고식 설문에 의존한다. 이는 과학적 측정이라기보다 개인의 주관적 고백에 가깝다. 메이어(Mayer)와 살로비(Salovey) 등 초기 연구자들은 골먼의 모델이 기존의 성실성이나 외향성 같은 성격 특성과 무엇이 다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며 그 과학적 토대의 허약함을 찔렀다.

‘과장된 중요성’ 역시 주요 비판의 대상이었다. 골먼은 감성지능이 IQ나 기술적 능력보다 ‘두 배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학문적 증명이라기보다 극적인 효과를 노린 수사학에 가까웠다. 리더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 능력은 포기할 수 없는 전제 조건이다. 감성지능은 그 위에 더해지는 필요조건일 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가장 치명적인 공격은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Adam Grant)로부터 나왔다. /감정은 다루는 자의 손에서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는 이름 없는 칼과 같다./ 그는 2014년 ‘The Atlantic’ 기고문을 통해 감성지능의 어두운 이면을 남김없이 해부했다. 그에 따르면, 감성지능이 높은 리더는 자신의 감정을 위장하고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여 비판을 무력화하고 사적인 이득을 취하는 데 능숙할 수 있다. 그들은 진심 어린 눈물 연기로 반대 의견을 잠재우고, 공감을 무기 삼아 상대를 정서적으로 착취한다. 이때 공감은 때로 상대를 찌르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된다.

시장에서 길을 잃은 개념, EQ라는 허상

/시장은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신화를 사랑하는 법이다./ 골먼의 정교한 5가지 구성 요소는 ‘EQ’라는 세 글자의 마법적 단어로 단순화되어 소비되었다. ‘EQ가 높다’는 말은 ‘착하고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골먼의 원의(原意)는 다르다. 감성지능이란 분노와 불안 같은 격한 감정의 파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목표 달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냉철하게 통제하는 능력에 가깝다. 그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고도의 자기 관리 기술이다.

수많은 기업이 이 ‘EQ’라는 유행에 편승했다. 채용과 승진의 기준으로 삼았고, 리더십 교육의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그 결과,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엔지니어는 저평가되고,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적’ 인물들이 리더로 발탁되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다. 저자의 의도는 실무의 편의 속에서 그렇게 변질되고 남용되었다.

감성지능을 넘어, 다시 인간을 묻다

모든 이론은 시대의 산물이며, 다음 시대 이론의 자양분이 된다. /성공한 이론은 종종 스스로를 극복할 다음 이론의 씨앗을 제 몸 안에 잉태한다./ 감성지능 이론의 계보도에서 우리는 리더십 담론의 거대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골먼의 이론이 가진 ‘조작 가능성’과 ‘진정성 부재’의 한계는 ‘진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진성 리더십은 감정을 교묘하게 ‘관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기반한 ‘진짜 나’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때로는 서툴고 거칠더라도 자신의 진실한 모습으로 신뢰를 얻으라는 요구다. 감성지능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중한다면, 진성 리더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다니엘 골먼의 공헌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기계의 부품처럼 취급하던 조직에 감정과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강철의 시대에 인간의 얼굴을 복원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이론을 성역에 가두고 만병통치약으로 숭배하는 순간, 우리는 리더십의 복잡성과 인간의 다면성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위대한 리더십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매 순간 계속되는 위태로운 질문 그 자체이다./

결국 리더의 자리는 감성지능이라는 화려한 갑옷이 놓이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한 인간의 맨얼굴이 놓이는 자리다.

<조우성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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