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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3. 2015

돌고 도는 선행의 위력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세일정밀(주) 정태섭 사장(가명).


그는 회사 사업부문을 A에게 5억 원에 팔았는데, 이를 사갔던 사람이 당초 설명과 다르다는 이유로 정 사장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만큼 사업의 전망이 좋지 않자 A는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런지 무리한 고소를 했던 것이다.

정 사장은 경찰, 검찰단계에서 변호사 도움을 받지 못한채 수사를 받다 결국 법원에 기소됐다. 나는 정 사장이 기소된 후에 정 사장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아 변호를 시작했다.


1차 공판기일.


재판시간보다 30분 먼저 법정에 도착한 나와 정 사장. 정 사장은 여간 초초한 기색이 아니었다. 우리는 법정에 앉아서 먼저 진행되는 국선변호 사건을 지켜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23세. 유흥주점의 아르바이트생. 현재 구속상태.


피고인은 사건 당일 자신이 일하던 유흥주점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손님(피해자)이 옆 자리 아가씨와 시비가 붙었다. 피고인은 이를 말리려고 중간에 나섰다가 손님을 밀치게 되었고 손님은 비틀거리다 넘어져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안면에 찰과상을 입은 것이다. 병원에서 나온 진단서상으로는 전치 6주.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피고인이 억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손님의 부상상태가 심하고 더구나 유흥주점 사장은 나 몰라라 발뺌을 하는 바람에 손님은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고소를 했던 사안이다.


아르바이트생은 2년 전에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벌금 전과가 있어서 이번에 만약 합의가 되지 않으면 집행유예도 어려운 상황 같았다.


재판을 담당한 판사도 사정이 딱한지 국선변호사에게 물었다.

“이 사건 합의가 안 됩니까? 피고인이 고의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피해자가 워낙 완강합니다. 합의금을 요구하는데 피고인의 가정 형편상 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피해자는 합의금으로 1,500만 원을 요구하는 상황.


그 때 갑자기 다리를 저는 어떤 아주머니가 법정 중간으로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판사님. 저는 저 녀석 애미되는 사람입니다.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가 몸도 성하지 않고 다니던 식당을 그만두는 바람에 아들이 돈 벌이 나갔다가 이리 되었습니다. 판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발 선처를 바랍....”


판사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피해자와 합의를 볼 수는 없습니까? 합의가 되면 벌금이나 집행유예도 가능할 텐데 말입니다.”

“판사님, 남편이 오래 전에 병으로 세상 떠나고 혼자서 아들 하나 키워왔습니다. 제가 재주가 없어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돈이 웬숩니다.”

재판은 종결되었고, 검사는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 사장이 내게 물었다.


“변호사님. 제가 저 청년 합의금을 대신 내주면 어떨까요?”


정 사장의 눈에는 걱정스런 표정이 잔뜩 담겨있었다.

   

“돌아가진 제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변호사님. 제가 돈을 대신 준비할 테니 저 친구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좀 알려 주시죠.”


나는 아르바이트생의 국선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국선변호사도 이 사건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정 사장의 제안을 말했더니 대뜸 ‘정말 고맙습니다’며 내게 인사를 했다.

국선변호사는 정 사장으로부터 받은 합의금을 피해자에게 송금했고 피해자로부터 ‘고소취하서 및 처벌불원서(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를 받아서 법원에 제출했다. 2주 후 그 아르바이트생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받고 바로 그 날 석방되었다.


1달 후 정 사장의 재판.


고소인 A씨가 법정에 출석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변호인보다 재판장이 더 고소인을 추궁하면서 무리한 고소가 아니냐며 지적했다. 고소인 A씨는 말을 얼버무리며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2달 후 정 사장의 1심 선고기일.

기대했던 대로 정 사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재판장이 제 고등학교 선배입니다. 제가 정 사장이 합의금 대신 내준 것을 재판장에게 말씀드렸죠.”


정 사장에 대한 무죄선고 이후 국선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 와 해 준 말.

아, 재판장도 알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정 사장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이 정 사장을 바라보는 눈빛은 일반 피고인을 보는 것과는 좀 달라 보였다.

정 사장의 선행은 결국 돌고 돌아 정 사장 본인을 살린 셈인가..





오지랖 넓은 정 사장.

그 아르바이트생을 자신의 운전기사로, 그의 어머니를 구내 식당 주방장 보조로 채용했다.


지금도 정 사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아름다운 사람.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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