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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3. 2015

그 친구, 제가 책임집니다.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으이그... 이런 친구는 언제나 말썽을 피운다니까요. 영창에서 제대할 때까지 수감되어 있다가 나가주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겁니다. 안그래요? 검찰관님?”


사단 법무부 주임원사인 최상사는 혀를 끌끌 찬다.

  

“피의자 양진수(가명)는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1994년 11월 20일, 000소재 X사단 00연대 ** 대대 화장실에서 문구용 커터칼로 자신의 오른 속목을 두차례나 그어 전치 3주에 이르는 자상(刺傷)을 가한 것이다.”


내가 최상사로부터 건네 받은 범죄사실.

이 사건을 군사법원에 기소(起訴 ; 재판을 해 달라고 청구하는 행위)해야 하는 군검찰관인 나는 관련 법조문을 뒤적여 봤다.


군형법 제41조 제1항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신체를 상해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敵前)인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그 밖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군인은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 나라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는데, 이는 군형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100% 맞는 소리이다. 내 몸을 내가 다치게 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는 항변이 통하지 않는다.

군인은 어디까지나 국방을 실현하기 위한 전력(戰力)이요 자원(資源)이므로, 이를 함부로 상하게 하는 행위는 군형법에 따라 ‘근무기피목적사술죄’라는 큰 죄에 해당되고, 통상 제대할 때까지 기간 동안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최상사님. 양 이병은 왜 그랬답니까?”


“00연대 주임원사에게 설명들었는데, 그 놈은 처음 자대(自隊) 배치 받을 때 부터 완전 고문관이었다고 합니다. 팔굽혀 펴기를 3개도 못한다네요. 행동도 느리고. 중화기 중대 소속이라 무거운 장비를 들고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죠. 상사나 동료들의 원성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벌써 이번 자살기도가 3번째랍니다. 해당 부대에서는 완전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입니다.”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라고 되어 있는 법조문 문구에 잠시 눈이 머물렀다. 과연 양 이병에게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 있었을까? 물론 몸을 다치게 되면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없으므로 근무를 기피하는 결과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양이병은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 아니라 ‘죽을 목적’이 더 컸던 것 같았다. 


상처가 난 사진을 보니 커터칼로 오른손목을 꽤나 깊게 그은 것 같은데...

하지만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법적으로 따져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사건이었다. 수많은 사건 처리 중의 한 건인 셈.


조금 있다가 나의 상사인 N 법무참모님이 사단장님 보고를 마치고 법무부로 돌아왔다.


여기서 잠깐 보충설명을 하자면, 사단급 부대에는 군형사범들을 처리하는 부서인 ‘법무부’가 있다. 법무부의 수장은 대위급 법무참모이며, 그 밑에 중위급인 검찰관, 이 업무를 보조하는 하사관들과 병사들(법무병)이 있다.

나는 1994년 당시 사법시험을 합격한 후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육군 모 사단의 검찰관으로 복무 중이었으며, 내 상사로는 대위인 N 법무참모님이 계셨다.


법무관 시절 야간행군 중. 맨 좌측이 접니다.


N 법무참모.


법무부에 소속되어 있는 법무장교들은 일반 보병과는 달리 그렇게 군기가 센 편이 아니다. 그런데 나보다 3살 많은 이 법무참모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군인정신으로 충만한 사람. 그래서 솔직히 좀 피곤하다. 

사법시험 합격 후 어차피 해야 할 3년간의 군 복무과정. 법무장교로서 다소 편하게 보내다 간다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아주 깐깐한 상급자를 만나 내 군 생활도 좀 꼬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찰관님, 주임원사님. 잠깐 제 방으로 좀 오시죠!”

법무참모의 호출에 나와 최상사는 법무참모실로 들어갔다.


“양해를 좀 구하겠습니다. 이번에 근무기피목적사술죄로 구속된 양 이병. 저희 법무부에서 제대할 때까지 데리고 있기로 했습니다. 사단장님께 방금 결재 득했습니다. 법무병으로 보직변경될 겁니다.”


“네?”

최상사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최상사는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간청하든 말했다.


“참모님. 그런 사고뭉치를 우리 법무부에 데리고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그 친구가 자살이라도 하면 참모님이나 저나 징계받는다는 건 잘 아시지않습니까?”


법무참모는 최상사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한 듯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법무참모의 반응은 완전히 내 예상을 뒤엎었다.


“그 친구... 불쌍하잖아요.”


평소 사납고 군기잡기로 유명한 법무참모 입에서 ‘불쌍’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다니.

 

“구속된 그 친구 면담을 해봤는데, 애는 아주 착해요. 그리고 그렇게 체력이 딸리는 애를 중화기대대로 배치시키면 어떻게 합니까? 다행히 그 친구, 컴퓨터를 다룰 줄 알더군요. 

제가 제 방에 별도로 책상 하나 놓고 밀착 관리하겠습니다. 상사님 신경 안 쓰이게 할 테니 제 뜻에 좀 따라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 이대로 전과자 만들어서 내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법무참모가 사단장님께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사단장님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사단장님은 법무참모로부터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양 이병을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검찰관님, 상사님. 우리, 젊은 애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줍시다. 정말 부탁합니다.”


계속 이 부대에서 근무해야 할 법무참모와 주임원사에게 부담스러울 따름이지 솔직히 나야 앞으로 6개월쯤 있다 다른 부대로 전속될 것이므로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법무부의 막내로 들어오게 된 양 이병.

표정이며 자세며, 잔뜩 주눅든 모습이 고문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주임원사는 담배만 계속 피워 물었다.


법무참모는 약속한 대로 자기 방에 책상과 의자를 추가로 준비해서 그 곳에 양 이병을 앉혔다. 1994년 당시만 해도 군대 내에 컴퓨터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법무참모는 자비를 들여 용산에서 컴퓨터를 구입한 다음 양 이병에게 주었다.


양 이병은 법무참모의 ‘전속 PC병(兵)’이 되었다. 

나나 주임원사는 과연 양 이병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았다.


“검찰관님, 보세요! 양 이병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정말 깔끔하지 않아요?”


법무참모는 수시로 양 이병이 작성한 보고서를 내게 들고와서는 자랑을 했다. 마치 ‘양 이병 잘 해내고 있죠? 그죠?’라는 시위라도 하듯이.

양 이병은 점점 표정이 바뀌어갔다. 심지어 농담까지 하기도 했다. 수요일 전투체육 시간에는 같이 족구도 하고 막걸리도 먹으면서 한 식구로 점점 동화돼갔다. 

양 이병의 어머니가 떡이랑 음식을 해 와서 우리 법무부 식구들에게 대접을 했다. 법무참모실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살려주셔서...”라면서 연신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시던 그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1995년 5월 초.


나는 후반기 부대로 발령을 받았다. 

법무참모와 작별인사를 하는 날. 거수경례를 하고 전출신고를 하는데 핑 눈물이 돌고 목이 메었다. 아니 이건 무슨 일?


법무참모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연인간에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이런 모양 빠지는 일이?


존경심?

그랬다. 초반에는 법무참모와 검찰관으로서 티격대기로 했는데, 양 이병 일을 겪으면서 나는 그를 존경하게 된 것이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내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가 갑자기 터져 나왔던 것이다.


“조검찰관님, 남은 군 생활 잘 하시고, 우리 언젠가 인연이 되면 같이 법조인으로서 일해봤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법무참모의 마지막 덕담이었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나는 1997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N 법무참모는 그로부터 한참 뒤에 전역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서로 바쁜 생활을 하는 통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소식을 주고 받았다.


2013년 5월.

나는 18년간의 법무법인 태평양 생활을 마감짓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하기 위해 독립을 준비 중이다. 


“변호사님, 우리 이제 같이 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예전에 제게 그러셨잖아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해 보자고?”


내가 그 즈음 N 법무참모, 아니 노수철 변호사님께 날린 작업 멘트였다. 노 변호사님은 적이 놀란 눈치였다.


그렇게 나와 노수철 변호사님은 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2013년  6월, 다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기업분쟁연구소(cdri)'이다.   http://www.cdri.co.kr/



뒷 이야기


[기쁜 일 축하 및 자랑]


저와 같이 기업분쟁연구소를 설립하셨던 노수철 변호사님이 2016. 9. 말일자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 영전하시게 되었습니다.

법무관리관은 군 사법 운영 및 제도 개선을 총괄하고 군 사법조직을 지휘·감독하는 국방부의 고위직으로서, 국방부 장관의 법률참모로 불리기도 합니다. 원래는 현역 장성의 보직이었는데, 참여 정부 시절 개방형 공모직으로 바뀌어 민간인에서 선발됩니다.  


노수철 변호사님이 얼마나 이 자리에 적합한 분인지는 윗 글을 보시면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

제가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은 노변호사님의 개인적인 명예 뿐만 아니라 군(軍) 조직을 위해서도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년간 저와 같이 기업분쟁연구소를 운영하시다 더 큰 뜻을 품고 공직으로 가시는 노 변호사님, 앞으로 군의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실 것을 기원합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기업분쟁연구소 임직원 일동







조우성 변호사의 세바시 강의 영상


https://youtu.be/Fp0gPXr_v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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