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스로를 정의하려 하는가? 서류 한 장에도, 명함 한 귀퉁이에도, 심지어 모바일 화면 속 작은 아이콘 아래에도 우리는 기어이 '나'를 규정하는 이름표를 달아주려 애쓴다. 학생, 직장인, 개발자, 디자이너, 혹은 그보다 더 세분화된 '전문가'라는 이름들. 이 단단한 이름표는 과연 우리를 보호하는 갑옷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가두는 투명한 그릇인가.
고대 중국의 현자, 공자는 이미 오래전 그 그릇의 한계를 꿰뚫어 보았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제사상에 오르는 제기(祭器)들이 각기 엄격히 정해진 용도에 따라 다른 모양과 쓰임새를 지녔듯, 인간이 하나의 쓰임새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 명제는 단순히 재주를 많이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특정 '기능'으로 한정 짓는 완고함에서 벗어나라는 준엄한 외침이었다. 진정 배우는 자는 "학즉불고(學則不固)"라 했듯,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고루해지지 않는 법이다.
21세기, 우리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통섭(統攝)'의 시대를 산다. 철학과 IT가 만나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과학의 냉철한 시선이 인문학의 따뜻한 감성을 품는다. 동양의 지혜가 서양의 기술과 융합하며, 융합의 미학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공자가 이상적 인간형으로 주장한 군자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통섭적 인간'의 원형이 아니었을까. 그는 각 분야의 '그릇'들을 넘어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강물'과 같았다.
서양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또한 이 고대 지혜에 공명한다. 그는 리더가 빠지기 쉬운 '전문성(Specialty)의 함정'을 경고했다. 전문가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체의 균형을 잃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영은 파편화된 기술이 아닌, 총체적 시야로 조율해야 할 오케스트라와 같다. 지휘자는 모든 악기의 소리를 알지만, 그 자신이 특정 악기 하나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의 역할은 조화로운 '전체'를 창조하는 데 있다. 드러커는 말한다. "전문(專門) 자체는 하나의 단편에 불과하여 아무런 성과도 생산하지 못한다. 한 전문가의 산출물이 다른 전문가의 산출물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전체로서의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문가'를 칭송한다. 그러나 가장 깊이 파인 우물은 가장 좁다. 가장 정교한 그릇은 가장 제한된 용도만을 가진다. 현대는 오히려 '하나의 쓰임새'에 갇히는 것이 가장 큰 쓸모없음이 될 수 있는 역설의 시대다. 쓰임새가 없는 것은 큰 문제다. 하지만 제한된 쓰임새로 나 자신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의 지혜. 혹은 그릇을 넘어선 '강물'의 유연함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당신은 아직도 스스로를 특정 '그릇'에 담고 있는가? 그 고정된 쓰임새가 오히려 당신을 제한하고, 당신의 흐름을 막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과연 하나의 그릇인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을 담고 흘려보낼 수 있는 유연한 강물인가? 당신은 어떤 '불기(不器)'의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