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나침반 - 의(義)와 이익 사이에서 길을 찾다

by 조우성 변호사

[두 개의 나침반 - 의(義)와 이익 사이에서 길을 찾다]


# 2500년 된 질문

공자가 남긴 말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君子喻於義 小人喻於利"일 것이다. 직역하면 "군자는 의를 밝히고, 소인은 이를 밝힌다"가 된다. 여기서 '喻(유)'는 단순히 '안다'는 뜻이 아니다. 밝히고 통달한다는 의미다. 즉 군자와 소인은 각각 다른 것을 자신의 나침반으로 삼아 그것에 통달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모든 갈등은 결국 두 개의 나침반 사이에서 벌어지는 선택의 드라마다./ 매순간 우리는 옳음이라는 나침반과 이익이라는 나침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2500년을 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공자는 이익 자체를 악하다고 보지 않았다. 문제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였다. 의와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분기점이었던 것이다.

# 시대의 거울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면 공자의 이 말이 얼마나 예언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익'이라는 나침반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주주 가치 극대화이고, 개인의 성공은 소득과 재산으로 측정된다. 정치마저 표와 지지율이라는 이익의 논리에 휘둘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결국 모든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 2008년 금융위기가 그 증거다. 개별 금융기관들이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파탄에 빠졌다. /탐욕의 끝은 언제나 모든 이의 파멸이었다./ 환경 파괴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지구라는 터전을 망가뜨리고 있다.

그렇다면 의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공자가 말한 '의(義)'는 마땅함, 즉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바른 일을 뜻한다. 이는 추상적 도덕률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요구되는 판단력이다. 부모가 아픈 자식을 위해 밤을 새우는 것, 교사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수업을 준비하는 것,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모두 의의 실천이다.

# 제3의 길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과연 의와 이익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공유가치창출(CSV)'이나 '임팩트 투자'는 의와 이익의 결합을 추구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이익도 창출하자는 것이다.

/진정한 혁명은 대립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움직임들은 공자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21세기의 군자는 의와 이익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상생으로 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익을 포기하고 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이익을 창출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 말이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다"라고 선언하며 수익의 전부를 기후 변화 대응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통적인 기업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 일상의 혁명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저 일상에서 작은 선택들을 돌아봐야 한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동료가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여 의로운 삶을 만든다.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조직과 사회에서도 의의 나침반을 들고 있어야 한다. 회사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사회에서 불의한 일이 벌어질 때 침묵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고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역사를 바꾼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당장의 손해를 무릅쓰고 옳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간디도, 킹 목사도, 넬슨 만델라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옳음을 선택했기에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 새로운 군자상

21세기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자 시대의 군자가 아니라 새로운 군자상이다. 의와 이익의 대립을 넘어서서, 의를 통해 진정한 이익을 창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 말이다. 개인의 성공과 사회의 발전이 함께 가는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아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로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다.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의로운 삶이란 손해를 감수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삶이다. 그리고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것은 능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어떤 나침반을 따라 사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매일매일의 선택 속에서 어떤 나침반을 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선택들이 쌓여서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다. /우리는 매순간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를 투표하며 살아간다./ 공자의 2500년 된 지혜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나침반으로 살 것인가.

<작성 :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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