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권력게임

by 조우성 변호사

[2인자의 반역사(叛逆史)] 트로이 목마의 귀환 - 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권력게임

1.

1997년 7월,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길 아멜리오는 CEO직을 잃었다. 파산 직전의 애플을 구하려다가 NeXT 인수를 통해 스티브 잡스를 불러들인 그였다. 권력의 아이러니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조직을 구원하려던 자가 조직의 창립자를 복귀시켰고, 그 창립자가 구원자를 대신했다.

2.

1996년 애플은 죽어가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윈도우 진영에 밀려 시장 점유율은 3%까지 추락했다.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11년 전 쫓겨나 넥스트를 운영하며 실리콘밸리 변방에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서 기업 회생 전문가로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는 애플 CEO로 부임하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직원 3분의 1을 해고하고, 적자 사업부를 정리했다. 그러나 애플에게는 뭔가 더 필요했다. 바로 혁신이었다.

3.

아멜리오가 NeXT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BeOS를 개발한 장루이 가세가 3억 달러를 요구한 반면, 잡스는 4억 달러였지만 NeXTSTEP 운영체제의 기술적 완성도가 높았다. 무엇보다 애플의 DNA를 아는 창립자가 함께 온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1996년 말 NeXT 인수가 결정되었고, 1997년 2월 인수가 완료되며 잡스는 애플의 고문으로 복귀했다.

4.

잡스의 복귀는 점진적이었다. 처음에는 고문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영향력을 확대했다. 제품 전략에 의견을 냈고, 마케팅에 관여했다. 이사진과 개별적으로 만나며 자신의 비전을 설파했다. 픽사에서의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과 NeXT에서의 기술적 경험이 그를 11년 전과는 다른 리더로 만들었다. 반면 아멜리오는 구조조정 전문가였지만 혁신의 아이콘은 아니었다.

5.

결정적 순간은 1997년 실적 악화와 함께 왔다. 분기마다 쌓여가는 적자, 하락하는 주가, 그리고 불투명한 미래가 이사회의 결단을 재촉했다. 잡스가 구체적으로 아멜리오 축출을 주도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대안을 제시했다. 이사회는 객관적 성과보다 미래 가능성을 선택했다.

6.

아멜리오의 축출은 재정 성과로 결정되었다. 1997년 6월 분기 실적에서 애플은 16억 달러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는 12년 만의 최저점에 도달했다. 7월 6일 이사회는 아멜리오에게 사임을 종용했다. 잡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아멜리오의 한계를 부각시켰다. 이사들에게 선택은 분명했다. 숫자로 증명된 경영자인가, 애플다움을 체현하는 창립자인가.

7.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아멜리오는 객관적 성과를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애플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냈다. 적자를 흑자로 돌렸고, 조직을 재정비했다. 잡스는 주관적 가치를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의 영혼이었고, 애플다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1990년대 말 실리콘밸리는 기술보다 비전을, 관리보다 창조를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이 시대적 흐름은 잡스에게 유리했다.

8.

권력의 역설은 이렇다. 아멜리오는 잡스 없이는 애플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잡스를 불러들임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 조직의 상징적 존재를 복귀시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도박이다. 그 상징이 단순히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살아있는 의지일 때는 더욱 그렇다. 현대 조직에서 창립자나 전설적 리더의 복귀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돌아오는 순간 기존 리더십의 정통성을 의심받게 만든다.

이 사건은 리더십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유능한 관리자와 카리스마적 비전가 중 누가 진정한 리더인가? 조직을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것과 조직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아멜리오와 잡스의 대립은 이 질문에 대한 실리콘밸리의 답이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지만, 꿈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와 조직이 어느 쪽을 필요로 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작성 :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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