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 5월, 표트르 3세는 프로이센과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펜이 종이를 떠나는 순간, 러시아 제국의 운명이 갈렸다. 7년 전쟁에서 승리의 문턱에 선 러시아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이다. 궁전의 침실에서 그 소식을 들은 예카테리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독일 출신의 황후가 러시아를 더 사랑하게 된 순간, 역사는 새로운 궤도에 올랐다./
#1 운명적 만남, 필연적 충돌
1744년 겨울, 열다섯 살의 소피 프리데리케가 러시아 황실에 도착했다. 독일 안할트-체르프스트 공국의 공녀는 표트르 대제의 손자와 결혼하기 위해 온 것이다. 엘리자베타 여제의 선택이었다. 후계자 표트르를 위한 신부감으로 그녀만큼 적절한 인물은 없었다. 독일계 혈통으로 유럽 왕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아직 어려 러시아 문화에 동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예카테리나로 개명한 소녀는 러시아어를 익히고 정교회로 개종했다. 남편 표트르는 달랐다. 그는 여전히 독일을 그리워했고, 프리드리히 2세를 숭배했다. 결혼 18년 동안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같은 독일 혈통이었지만, 한 사람은 과거에 머물렀고 다른 한 사람은 미래를 향해 걸었다./ 표트르는 군대 놀이와 독일 문화에 빠져있었고, 예카테리나는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를 읽으며 러시아의 미래를 그렸다.
1762년 1월, 엘리자베타 여제가 세상을 떠났다. 표트르 3세가 황제가 되었다. 그가 즉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리드리히 2세와의 화해였다. 러시아가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며 얻은 동프로이센을 무상으로 돌려주었다. 군인들이 분노했다. 귀족들이 술렁였다. 정교회가 동요했다.
#2 신뢰라는 이름의 무관심
표트르 3세는 아내를 신뢰했다. 정확히는 무시했다. 예카테리나를 정치적 위협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타 여제의 통치를 보고도 그랬다. 자신의 어머니 안나 레오폴도브나의 실패만 기억했을 뿐이다.
예카테리나는 달랐다. 그녀는 18년간 러시아 궁정을 관찰했다. 권력의 메커니즘을 배웠고, 인맥을 쌓았다. 근위대 장교들과 친분을 맺었고, 귀족들의 신뢰를 얻었다. /가장 큰 무기는 완벽한 러시아어였다. 언어는 곧 정체성이고, 정체성은 곧 정당성이었다./ 남편보다 러시아인다워 보였다.
표트르 3세의 실정이 계속되었다. 정교회 재산을 몰수하려 했고, 근위대를 프로이센식으로 개편하려 했다. 덴마크 침공을 준비했다. 매번 예카테리나가 반대 의견을 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아내의 조언을 여성의 감정적 반응 정도로 여겼다.
6월이 되자 예카테리나는 결심했다. 러시아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개인적 야심이 아니라 제국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그런 설득이 필요할 만큼 그녀도 갈등했다. 남편을 배신하는 것이었으니까.
#3 여름밤의 역전극
1762년 6월 28일 밤, 상황이 급박해졌다. 알렉세이 오를로프가 예카테리나에게 경고했다. "폐하가 체포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예카테리나는 일어나 검은 드레스를 입었다. 죽음을 각오한 옷이었다.
페테르호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마차는 달렸다. 예카테리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실패하면 죽음이었다. 성공해도 역사는 자신을 남편을 배신한 여자로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살아야 했다.
근위대가 먼저 움직였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와 세묘노프스키 연대가 예카테리나를 황제로 선포했다. 표트르 3세는 오라니엔바움에서 체스를 두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것은 6월 29일 오후였다. 그는 믿지 못했다. 아내가? 그 순종하던 예카테리나가?
7월 9일, 예카테리나 2세가 공식적으로 즉위했다. 표트르 3세는 퇴위 문서에 서명했다. 6개월간의 통치였다. 그는 예카테리나에게 편지를 썼다. "나를 독일로 보내달라. 나는 러시아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을 알았다는 것,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비극이었다./
#4 사랑이 만든 권력의 진실
7월 17일, 표트르 3세는 로프샤 궁전에서 죽었다. 공식 사인은 복통이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예카테리나 2세는 3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다. 영토를 넓혔고 문화를 꽃피웠다. 역사는 그녀를 대제라 불렀다.
두 사람 모두 독일 출신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사랑은 달랐다. 표트르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예카테리나는 새 고향을 선택했다. 그 차이가 운명을 갈랐다.
/권력은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백성을, 나라를, 미래를 사랑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 표트르 3세는 자신을 사랑했고, 예카테리나는 러시아를 사랑했다. 침실에서 시작된 쿠데타는 그래서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조직의 리더들도 묻는다. 누가 나를 배신할 것인가? 잘못된 질문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권력 자체인가, 아니면 권력이 섬겨야 할 대상인가? 예카테리나의 선택은 그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