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화이트보드가 빨간 펜으로 가득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줄이 그어진 항목들. 팀장은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뭔가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 그런데 다음 주 회의는 또 같은 논쟁을 반복한다. 계속 무언가를 지우는데, 조직은 여전히 표류한다. 왜 그럴까.
# 리스트의 함정
마이클 포터가 1980년에 남긴 문장이 있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경영자들의 바이블이 된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말을 오해한다는 데 있다. 전략을 'No 리스트'를 만드는 행위로 착각한다.
하지 않을 일을 정하는 건 명확하고 통제 가능해 보인다.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나간다. 그 과정이 우리에게 착각을 준다. 뭔가 결단력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 말이다. 하지만 이건 복잡한 문제 앞에서 손쉬운 답을 찾으려는 태만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No'는 단 하나의 강력한 'Yes'가 없을 때 나타나는 증상 아닐까.
# 중력의 발견
전략의 진짜 본질은 타협 불가능한 단 하나의 핵심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 핵심은 조직의 중력 같은 것이다. 한번 정의되면 올바른 자원과 인재를 스스로 끌어당기고, 관련 없는 모든 걸 밀어낸다. 이 강력한 인력 앞에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더 이상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니다. 자동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제거된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를 보라. 당시 애플은 수십 종의 모델이라는 바다에서 익사 직전이었다. 잡스가 한 일은 제품 목록을 줄이는 단순 뺄셈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미치도록 위대한 제품을 만든다"는 타협 불가능한 'Yes'가 있었다. 슬로건이 아니었다. 채용부터 예산, 마케팅, 포장 디자인까지 영향을 미치는 무자비한 운영 원칙이었다.
이 광적인 기준 앞에서 평범하고 수익성 있던 기존 사업들은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No'는 그의 위대한 'Yes'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한 게 아니라, 해야만 하는 단 하나에 모든 걸 건 것이다.
# 세 가지 질문
당신의 전략 회의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목록을 찢어버려라. 그건 두려움의 산물이다.
대신 이 고통스러운 질문에 답해보라.
첫째, 세상에 우리 조직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그 타협 불가능한 핵심 말이다.
둘째, 이 핵심을 지키기 위해 당장 편안하고 수익성이 좋더라도 죽여야 할 활동은 무엇인가.
셋째, 이 핵심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내일 아침 가장 먼저 내려야 할 단 하나의 결정은 뭔가.
전략은 버리는 기술이 아니다.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단 하나를 세우는 기술이다. / 당신의 조직을 움직일 압도적인 중력, 그 'Yes'를 찾아라. / 그러면 우주를 떠돌던 'No'들은 제자리를 찾아 스스로 정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