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 없는 인정(情), 그 붕괴의 연대기

by 조우성 변호사



[법(法) 없는 인정(情), 그 붕괴의 연대기]


빌딩 숲은 이미 서늘했다. 유리창에 부딪힌 가을볕이 힘없이 부서졌다. 한때 그들은 거침없이 질주했다. 강남의 어느 한복판에서 타오르던 스타트업의 신화. 그 빛나던 시절의 기록은 이제 모니터 속의 숫자로만 남았다. 사무실을 채우던 격렬한 토론과 거친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이제는 싸늘한 키보드 소리와, 입 밖에 내지 않는 침묵의 무게만이 공간을 점유했다. 성장의 엔진이 멈춘 곳에서, 균열은 소리 없이 번지고 있었다. 조직의 공기는 탁하고 무거웠다.


창업자 김민준 CEO는 그 서늘한 공기를 알았다. 그는 본래 사람을 믿었고, 관계의 온기를 신봉했다. 수평적 문화, 자유로운 소통. 그 아름다운 가치들 속에서 그는 군림하는 군주이기보다, 함께 땀 흘리는 '좋은 형'이기를 스스로 택했다. 그는 모두의 인정과 박수를 갈망했다. 어쩌면 조직의 성공보다 그것을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 개인의 실존적 욕망이, 조직의 공적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이야. 그는 스스로가 파놓은 '인정(人情)'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었다.


문제는 핵심 개발팀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왔다. 박선임. 그는 개국공신이었고, 한때는 회사의 가장 빛나는 칼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칼날을 무디게 했다. 고속 성장하는 조직의 속도를 그는 따라잡지 못했다. 혹은, 따라잡을 의지를 상실했다. 그의 정체와 나태는 이제 팀 전체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병목이 되었다. 다른 팀원들의 어깨 위로 감당 못 할 짐이 옮겨졌다. 조용한 분노가 수면 아래서 끓었으나, 누구도 감히 그 불편한 진실을 '좋은 형' 김민준에게 직고하지 못했다. 아니, 김민준 스스로가 그 진실을 직시하길 거부했다. 그는 박선임과 보냈던 초창기의 그 땀과 눈물, 그 사사로운 관계의 질긴 끈을 차마 베어내지 못했다. 엄정한 질책이나 결단력 있는 조치 대신, 그는 망설였다. 그의 리더십은 '좋은 사람'의 굴레에 갇혀, 정작 조직이 필요로 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외면했다. 둑의 작은 균열을 알면서도 메우지 않는 자의 태만이었다.


한비(韓非)의 법(法), 인정(人情)의 칼을 겨누다


이천 년 하고도 아득한 수백 년 전, 법가(法家)의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韓非)는 이미 이 풍경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목도한 것은 난세의 혼돈이 아니라, 혼돈을 초래하는 인간 본성의 나약함이었고, 그것을 다스릴 비정한 시스템의 필연성이었다. 한비자는 『한비자』에서 거듭 경고했다. 군주가 인자함을 내세워 사사로운 정(情)에 기대어 상벌(賞罰)의 기준을 흐리면, 나라는 반드시 기운다고. 법(法)이란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도량형이며, 조직의 뼈대를 이루는 근간이다. 그러나 김민준 CEO는 그 저울을 스스로 기울였다. 박선임이라는 '사(私)'가, 조직이라는 '공(公)'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는 '술(術)', 즉 군주가 마땅히 익혀야 할, 감정을 숨기고 냉철하게 법을 집행하는 통치의 기술을 알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인자함이라는 달콤한 가면 뒤에서, 그는 조직의 기둥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방치했다. 한비자에게 리더의 가장 큰 죄악은 잔인함이 아니라, 바로 이 '정에 얽매인 무능'이었다.


이러한 통찰은 서양의 고전에서도 서늘한 메아리로 울린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군주의 통치에 더 안전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단순한 잔인성을 숭배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존속과 안녕이라는 대의, 즉 조직의 생존을 최우선에 두어야 하며, 이를 위해 리더는 때로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결정을 감수해야 한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었다. 동양의 한비자가 '법'을 통해 사적인 정을 넘어서라 했고, 서양의 마키아벨리가 '두려움'을 통해 사랑보다 더 안전한 통치를 역설했듯, 시대를 초월하여 리더의 고독한 결단이 요구된다는 준엄한 공명이다. 김민준은 팀원들에게 '사랑받는 리더'가 되고 싶었지만, 그 대가로 '리더십의 엄정함'과 '조직의 규율'을 잃었다. 그 결과, 팀원들은 그의 친절함 뒤에 숨겨진 무능과 비겁함을 감지했고, 이는 존경의 상실로 이어졌다.


칼날이 무뎌진 왕국의 비극


결국, 비극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신규 프로젝트는 박선임의 태만과 김 CEO의 우유부단함이라는 늪 속에서 끝없이 지연되었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핵심 인력들이 하나둘 말없이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민준의 인자함이 아니라, 그의 결단력 없음과 그로 인한 불공정에 절망한 것이다. 한때 빛나던 성장의 칼날은 속절없이 녹슬고 무뎌졌다. '악역'을 두려워한 리더는, 역설적으로 조직 전체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가장 '나쁜 리더'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포용하려다 모든 것을 잃는, 이 허무한 결말. 진정한 리더십은 화려한 박수갈채를 받는 순간이 아니라, 모두의 원망을 감수하며 홀로 칼을 드는 그 고독한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 찰나의 인기에 취해 모두를 잃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조직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비정함을 감수하는 고독한 '법의 집행자'인가. 인정(人情)에 발목 잡힌 리더십, 그 끝은 언제나 폐허다. 한비자의 경고는 이천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갑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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