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2세 경영을 묻다

by 조우성 변호사


[아버지의 '세(勢)', 아들의 '정(情)', 한비자, 2세 경영을 묻다]


그의 사무실은 언제나 적막했다. 통유리 너머 공장 지붕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번졌다. 아버지가 남긴 왕국이었다. 2세 경영인인 그는 수십 년 된 자동차 부품 회사의 수장이었다. 아버지의 손에는 늘 절삭유와 쇳가루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는 투쟁으로 이 왕국을 세웠다. 그의 손은 태블릿PC 위에서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는 물려받았다.


그는 '사랑'을 믿었다. 직원들은 '식구'여야 했다. 아버지 세대로부터 이어진 끈끈한 의리, 그 온기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 여겼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젊은 직원들의 눈빛은 달랐다. 그들은 '식구'라는 말의 온기보다 '공정'이라는 단어의 냉철함에 반응했다. 그의 '사랑'은 종종 '이해관계'라는 이름의 불만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진심은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고뇌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시대의 강, 세(勢)와 정(情)의 간극


그의 아버지는 난세의 군주였다. 맨손으로 '세(勢)', 즉 조직의 지위와 권력을 쟁취했다. 그의 말은 법이었고, 그의 눈빛은 '술(術)', 즉 통치의 기술이었다. 직원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동시에 존경했다. 그것은 거친 시대의 생존 방식이었다. 아들은 달랐다. 그는 아버지가 이룩한 '세'를 거저 물려받았다. 그에게는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도, 투쟁의 절박함도 없었다. 그는 그 빈자리를 '사랑'과 '인정(人情)'으로 메우려 했다. 그것이 더 세련된 방식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한비(韓非)는 이미 그 길의 끝을 보았다. 한비자는 '세'를 물려받은 군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법(法)'이라고 단언했다. '세'는 지위에 불과하며, 그것을 공고히 하는 것은 오직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냉철한 시스템, 즉 '법'뿐이다. 군주가 '법'을 버리고 사사로운 '정(情)'에 기대어 통치할 때, 조직은 반드시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다. '식구'라는 이름으로 무능한 자를 감싸고, '의리'라는 명분으로 공정한 평가를 미루는 것. 그것이 한비자가 본 망국(亡國)의 징조였다.


법(法) 없는 사랑, 그 공허한 메아리


자동차 산업의 물결은 거셌다. 디지털 전환의 파고는 높았다. 이런 격변기에 필요한 것은 리더의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생존을 담보할 명확한 시스템이다. 성과에 따라 보상하고, 역량에 따라 기회를 주는 비정한 공정함이다. 2세 경영인의 '사랑'은, 이 시스템의 부재를 가리는 가장 아름다운 허울에 불과했다. 그의 '진심'은, 실력 있는 자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고, 나태한 자들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한비자가 말한 '술(術)'은 리더가 감정을 숨기고 '법'을 집행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는 거꾸로 '법'을 숨기고 '감정'을 드러냈다. 젊은 직원들이 원한 것은 '이해관계'라는 속물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공정한 질서'였다. 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베푼 온정은, 조직의 가장 성실한 다수에게는 가장 큰 불공정이었다.


물론 현대 경영의 거목 피터 드러커는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의 '성과'는 한비자의 '법'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서만 피어나는 꽃이다. 공정한 '법'이 없는데, 어찌 올바른 '성과'가 있으랴. 리더의 숙명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세우고, 그 시스템을 통해 조직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 고독하고 비정할지라도, 그것만이 리더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무게다. 그는 이제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고, '법의 집행자'라는 고독한 칼을 들어야 한다. 아버지의 왕국은,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켜져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법(法) 없는 인정(情), 그 붕괴의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