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짙었다. 인공지능 교육 플랫폼. 설립 5년. 시장의 환호와 투자금의 장밋빛 거품. 그 모든 것이 먼 과거의 기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때 격렬한 토론으로 뜨거웠던 회의실은 싸늘했다. 빛나던 사무실의 유채색 파티션이 시간의 때를 맞아 탁하게 바랬다. 서버의 낮은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성장은 멈췄다.
그 정체의 한가운데, 기술 총괄 이사 박서연이 섬처럼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알고리즘이 이 작은 왕국을 세웠고, 그녀의 밤샘과 헌신이 벼랑 끝의 회사를 몇 번이고 구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조직의 가장 빛나는 칼이었다. 대표 김민준은 통유리창 너머로 그 칼을 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감탄했다. 조직의 운을 바꾼 그 예리함에. 이내 불안했다. 그 칼날이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본능적 공포였다.
그것은 인간적 질투라기보다, 권력이 그 속성상 감지하는 실존적 위협이었다. 김민준은 이상주의자였으나, 그는 서류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이 조직의 '주(主)', 즉 군주였다. 그리고 박서연의 '공(功)'은 이미 그의 '세(勢)', 즉 군주의 절대적 권좌를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더 자주 불렸고, 그녀의 말 한마디는 개발팀 전체를 움직였다.
이천 년 하고도 수백 년 전, 난세를 살았던 법가(法家)의 거인 한비(韓非)는 이 아슬아슬한 풍경을 이미 꿰뚫었다. 공고진주(功高振主). 공이 높으면 군주가 흔들린다. 이것은 신하의 교만이나 배신에 대한 윤리적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군주의 통치 시스템 부재에 대한 가장 서늘하고도 구조적인 진단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군주는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세 가지 도구를 쥐어야 한다.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냉철한 '법(法)',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법을 집행하여 신하를 다루는 '술(術)',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지위, '세(勢)'다.
김민준은 창업자로서 '세'를 쥐었으나, 그의 왕국에는 '법'과 '술'이 부재했다. 그의 왕국에는 박서연의 공을 공정하게 측정하고, 그 공에 합당한 보상을 내릴 '법'이 없었다. 시스템이 부재하자, 그녀의 공은 '회사의 공적 자산'이 아닌 '박서연 개인의 사적 영향력'으로 축적되었다. '법'이 통치하지 않는 곳에서, 개인의 영향력은 곧 권력이다. 김민준은 박서연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 부재가 스스로 키워낸 그 사적(私的) 권력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술'이 없었다. 그는 박서연이라는 날카로운 칼을 쥐고 조직의 목표를 향해 휘두를, 즉 그녀의 능력을 조직의 목표로 온전히 활용하고 통제할 기술이 없었다. 그는 그녀와 투명하게 협력하는 대신, 그녀를 경계했다. 그녀의 빛나는 제안을 사소한 이유로 묵살하고, 미묘한 방식으로 그녀를 고립시켰다. 군주가 '술'을 잃고 '정(情)', 이 경우는 불안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에 기대는 순간, 모든 신하는 잠재적 역적이 된다. 한비자는 군주의 눈물과 웃음조차 신하에게 읽히는 것을 경계하라 했다.
박서연의 탁월함은 죄가 아니다. 그것은 죄일 수 없다. 그것은 조직의 '운명'을 개척할 동력이었다. 그러나 군주가 그 역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할 때, 바로 그 역량이 군주 자신의 운명을 위협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된다는 이 역설. 이것이 권력의 비극이다.
이것은 박서연의 처세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물러나 공을 낮추는 것은 개인의 미덕일 수 있으나, 조직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뛰어난 장수가 스스로 칼을 무디게 만들어 군주를 안심시킨다면, 그 군대는 어찌 척박한 전장에서 승리할 것인가.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한비자의 논리는 인정사정없이 냉혹하다. 군주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세'를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박서연은 떠나거나, 혹은 무뎌질 것이다. 그녀의 빛나는 알고리즘은 빛을 잃고, 회의실의 안개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김민준은 자신의 왕좌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킨 것은 이미 모든 성장의 동력이 꺼져버린 폐허다. 인재의 '공'을 '덫'으로 만드는 조직. '공고진주'는 탁월한 신하의 비극이 아니라, 그를 담아내지 못한 군주의 비극이며, 그 군주를 가진 조직 전체의 종말이다. 한비자의 경고는 이 시대의 유리벽 안에서도 여전히 차갑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