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어찌하여 '인(仁)'을 버려야 하는가

by 조우성 변호사


[군주는 어찌하여 '인(仁)'을 버려야 하는가]


공기가 동결되었다. 물류 스타트업 '네오스페이스'의 회의실. 창업자 강민우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해서 오히려 비정했다.


"여섯 달입니다."


그가 띄운 화면의 모든 화살표는 아래를 향했다. 남은 자금, 시장 점유율. 모든 숫자가 죽음을 예고했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내리친 번개였다.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들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리더 강민우를 신뢰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앞에 선 것은, 그들이 알던 '좋은 리더'가 아니었다. 그는 생존이라는 냉혹한 현실,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인(仁)을 버리고 법(法)을 쥐다


강민우는 고뇌했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인(仁)'과 '정(情)'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그것이 현대적 리더십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온정의 그늘에서 안일함이라는 독초가 자라났다. 시장은 그들의 꿈을 기다려주지 않았고, 거대 기업의 진격은 자비가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조직을 병들게 한 것은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 자신의 나약한 온정이었음을.


이천 년 하고도 수백 년 전, 한비(韓非)는 이미 갈파했다. 군주가 사사로운 정(情)에 흔들리면 법(法)이 무너지고, 법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강민우는 그 밤, 왕관이 아니라 칼을 쥐기로 결심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군주가 아니라, 조직의 생존을 위해 욕먹는 법(法)의 집행자가 되기로 했다. 그는 스스로가 첫 번째 제물이 되어, 자신의 '인(仁)'을 베었다.


형명(刑名), 안일함의 목을 베다


이튿날부터 '네오스페이스'는 전장이 되었다. 강민우는 한비자의 '형명(刑名)'을 칼처럼 휘둘렀다. '이름(名)'과 '실체(形, 實)'가 다르면 '형(刑)'을 가한다는 이 비정한 논리. 역할(名)에 합당한 성과(實)를 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처단했다. 말이 아닌 숫자로, 감정이 아닌 결과로 모든 것이 판단되었다.


매일 아침의 회의는 심판대였다. 전날의 성과가 적나라하게 공개되었고, 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문책당했다. "감정은 접어두고, 결과로만 말하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성과가 부진한 팀은 해체되었고, 비핵심 사업은 중단되었다.


사무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자정을 넘겨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충혈된 눈으로 코드를 응시하는 개발자들, 밤샘 제안서로 고객을 붙잡는 영업팀. 그들을 움직인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처절한 공포, 즉 '형(刑)'의 다른 이름이었다. 한비자가 말한 '형벌'이란 시장의 냉혹한 심판 그 자체였고, 강민우는 그 심판을 조직 내부로 끌고 들어온 집행관이었다. 몇몇은 떠났다. 그 비정함을 견디지 못해서, 혹은 동의하지 않아서. 그러나 남은 자들은 단단해졌다.


심연의 끝, 그 비정한 불꽃


여덟 달이 지났다. 그들은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기적처럼 투자를 유치했다. 생존했다. 성공의 축배를 들던 날, 강민우는 홀로 창밖을 보았다. 그는 조직을 구했지만, '좋은 리더' 강민우는 죽었다. 직원들의 눈에는 존경과 함께, 지울 수 없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한비자는 형벌은 시작이요, 덕(德)은 완성이라 했다. 그러나 그 혹독한 형벌의 계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어떤 덕도 뿌리내릴 수 없음을 강민우는 알았다. 두려움은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일함이라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게 만든 비정한 촉매였다. 벼랑 끝 심연에서 피워 올린 불꽃은 그래서 더 강렬했다. 리더의 숙명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 가장 비정한 칼날이 되어 조직의 길을 내는 것임을, 그는 그 쓴 축배와 함께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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