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저녁 8시, 신제품 론칭팀 사무실이다. 공기가 무겁다. 출시를 불과 48시간 앞둔 시점이다. 치명적 결함이 발견됐다. P팀장은 창백한 얼굴로 C본부장실에 섰다.
C본부장은 차갑게 말했다. "출시 연기는 없다." P팀장이 반박했다. "고객 안전 문제입니다. 지금은 덮을 수 없습니다." 본부장은 P팀장을 노려봤다. "박 팀장, 나 못 믿나? 내가 책임진다. 일단 출시해. 10년간 나만 보고 따라온 자네가 왜 이래?"
P팀장은 C본부장을 10년간 따랐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다. 그는 C본부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P팀장은 눈을 감았다. "...알겠습니다."
2주 후, 모든 것이 터졌다. 결함은 은폐되지 않았다. 언론이 보도했다. 회사는 뒤집혔다. C본부장은 징계위원회에서 말했다. "P팀장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나는 몰랐다." P팀장은 모든 것을 뒤집어썼다.
그는 충성했다. 그는 명령을 따랐다. 그러나 그는 배신당했다. 이것이 그의 실패다. 무엇이 충성을 독으로 만들었는가.
P팀장의 비극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조직의 고질적 병폐다. 이 상황의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충성의 대상을 혼동했다. 그는 '조직'이 아닌 '사람'에게 충성했다. 둘째, 책임의 무게를 망각했다. 상사의 "책임진다"는 말은 법적 효력이 없다. 실행한 자가 책임을 진다. 셋째, 판단력을 포기했다. 그는 감정적 의리(義理)가 이성적 판단(判斷)을 마비시키도록 방치했다.
본질은 명확하다. 충성은 판단력을 전제로 할 때만 가치가 있다. 판단력이 결여된 충성은 맹목일 뿐이다. 그것은 조직을 구하는 칼이 아니라, 자신과 조직을 함께 찌르는 흉기다. P팀장은 그 흉기를 스스로 쥔 것이다.
사마천은 『자객열전(刺客列전)』에 형가(荊軻)를 기록했다. 진(秦)나라가 연(燕)나라를 압박했다. 연나라 태자 단(丹)은 형가에게 진시황 암살을 맡겼다.
태자 단은 형가를 극진히 대접했다. 미인을 바쳤다. 천리마를 내주었다. 형가는 이 '알아줌'에 감동했다. 그는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계획은 허술했다. 형가는 함께 갈 조력자를 기다렸다. 태자 단은 조급했다.
"형가가 떠나기를 미루자, 태자 단은 그가 후회하는가 의심했다. '날이 이미 다 저물었는데, 형가는 어찌할 생각인가?' 형가는 노하여 태자를 꾸짖고는 마침내 떠났다."
형가는 떠밀리듯 떠났다. 그는 어린 진무양을 데리고 갔다.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 형가는 죽었고, 연나라는 멸망의 속도를 재촉했다.
형가의 선택은 무엇이었나. 그는 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떠났는가. 형가의 내면은 복잡했다. 그는 이미 태자 단에게 막대한 보답을 받았다. 그는 '의리 없는 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암살의 성공'이라는 본질적 목표보다 '태자의 의심을 씻어주는 것'이라는 감정적 부채를 우선했다.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태자 단이 아니었다. '알아줌'에 대한 집착, 그 자신의 아집이었다. 이것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이다.
사마천은 형가의 무모함을 냉정하게 그린다. 그의 기록은 묻는다. 그것은 진정 의리였는가. 아니면 영웅으로 죽고 싶은 객기였는가.
손자(孫子)는 말했다. "장수는 군주의 명이 있더라도, 싸워서 이롭지 않으면 싸우지 않을 수 있다." (군명유소불수, 軍命有所不受) 이것이 진짜 충성이다. 조직의 패배를 알면서도 상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충성이 아니라 태만이다.
서양의 사상가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군주론』에서 현명한 군주는 직언하는 신하를 곁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쓴소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신하는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성과를 내는 경영자'의 첫 번째 조건으로 '공헌에 집중하는 것'을 꼽았다. 조직의 공헌이 우선이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이는 '집단 순응(Groupthink)'의 오류로 설명된다. 리더의 잘못된 의견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집단 전체가 파멸하는 과정이다.
P팀장이 바로 형가였다. C본부장의 "나 못 믿나?"라는 말은 태자 단의 의심과 같다. P팀장은 '무능한 팀장'이 아니라 '의리 없는 팀원'이 되기를 택했다. 그는 C본부장에게 충성함으로써 회사 전체를 배신했다.
조직에는 수많은 형가가 있다. 그들은 '예스맨'으로 불린다. 그들은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들은 판단을 멈춘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상사는 그들을 가장 먼저 버린다. 형가가 태자 단의 조급증 때문에 죽었듯이 말이다.
진정한 충성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그 용기는 냉철한 판단력에서 나온다.
맹목적 충성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당신의 무기는 의리가 아니라 판단력이다. 내일 당장 실천할 3가지 지침이다.
질문하라: 불합리한 지시를 받으면, "예"라고 답하기 전 "이 지시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 (목표와 수단을 분리하는 5분 훈련)
점검하라: 당신의 충성이 '상사 개인'을 향하는지, '조직의 원칙'을 향하는지 매주 금요일 퇴근 전 10분간 기록한다. (충성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
반대하라: 다음 회의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명확한 근거를 들어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측정 기준: '다 좋은데 이것 하나는...'이 아닌,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로 시작하기)
충성은 가장 날카로운 무기다. 그러나 판단력이라는 손잡이가 없으면 자신을 베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