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협의 의리: 비공식 네트워크의 힘

by 조우성 변호사

유협의 의리: 비공식 네트워크의 힘


1. 조직도에 없는 권력


금요일 오후 5시 45분, 마케팅팀의 공기는 얼음장 같았다. 다음 주 론칭할 신제품의 웹페이지 서버가 다운된 것이다. 지금 복구되지 않으면 주말 내내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 팀의 실무자인 김 차장은 매뉴얼대로 IT 헬프데스크에 긴급 티켓을 발행했다. 10분 뒤, 시스템이 보낸 자동응답 메일이 도착했다. ‘처리 예상 소요 시간: 24시간.’ 그것은 사형선고였다.

김 차장은 발을 동동 굴렀다. 상사에게 보고하고, 다시 IT팀에 공식적으로 항의 메일을 보냈다. 그의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직함과 공식적인 절차는 위기 앞에서 무력했다.

그때 옆 부서 이 과장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는 상황을 듣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박 선임, 나야. 혹시 지금 서버실이야? 마케팅팀 신제품 페이지가 죽었는데, 잠깐만 봐줄 수 있을까?” 짧은 통화가 끝났다. 20분 뒤, 거짓말처럼 웹페이지가 복구되었다. 이 과장은 서버실 박 선임과 같은 낚시 동호회 회원이었다.

김 차장은 허탈했다. 그의 논리와 절차는 이 과장의 전화 한 통을 이기지 못했다. 조직도 위에 그려진 선은 명확하다. 그러나 정작 일을 움직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다. 공식적인 직함이 당신의 힘의 전부인가. 보이지 않는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가.


2. 관계, 가장 강력한 자본


이 상황의 본질은 공식적 권력의 한계다. 조직은 설계도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 힘의 역학을 세 가지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첫째, ‘권한’과 ‘영향력’의 차이다. 김 차장은 직함이 부여한 ‘권한(Authority)’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과장은 개인적 신뢰가 만든 ‘영향력(Influence)’을 발휘했다. 권한은 조직이 주지만, 영향력은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시스템을 뛰어넘는 것은 언제나 영향력이다.

둘째, ‘프로세스’와 ‘네트워크’의 충돌이다. 공식적인 프로세스는 안정성과 공정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속도와 유연성을 잃는다. 비공식적 네트워크는 이 경직된 시스템의 혈관을 뚫는 모세혈관과 같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자원과 정보를 실어 나른다.

셋째, ‘거래적 관계’와 ‘신뢰 자본’의 차이다. 김 차장과 IT팀의 관계는 ‘티켓 발행과 처리’라는 거래다. 감정이 없다. 이 과장과 박 선임의 관계는 낚시터에서 쌓아 올린 ‘신뢰 자본’에 기초한다. 이 자본은 공식적인 화폐보다 더 큰 구매력을 갖는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관계 자본(Relationship Capital)’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수렴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 순간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자산. 이것이 당신의 진짜 실력이다.


3. 주가, 시장에 숨은 영웅


사마천은 『유협열전』에서 국가의 공식적인 질서 바깥에 존재했던 거인들을 그렸다. 유협(游俠)은 벼슬아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마디는 때로 법보다 무거웠다. 그중 주가(朱家)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평범한 상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집에는 늘 천하의 인재들이 들끓었다.

한나라의 개국공신 계포가 역적으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천금의 현상금이 걸렸고, 그를 숨겨주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떨어졌다. 모두가 그를 외면할 때, 계포는 주가를 찾아갔다. 주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숨겨주었다.


“주가는 계포를 숨겨준 뒤, 아무렇지 않게 한나라의 실력자 등공을 찾아갔다. ‘계포가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그는 유능한 장수입니다. 그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은 천하의 인재를 잃는 것입니다.’”

주가는 돈을 원하지 않았다. 명예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는 등공을 설득하여 계포의 사면을 받아냈다. 그의 힘은 관직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오직 ‘저 사람은 믿을 만하다’는 평판, 그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신뢰의 네트워크에서 나왔다.


4. 약한 연결이 강한 힘을 만든다


주가와 같은 유협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그들이 ‘네트워크의 허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약자를 도왔다.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켰다. 이 ‘의리(義理)’와 ‘신용(信用)’이 그들의 자산이었다. 그들은 공식적인 권력 구조에 속하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연결함으로써 그 어떤 권력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것이 관계 자본의 본질이다.

사마천이 기록한 유협의 세계는 공자(孔子)가 말한 ‘인무신불립(人無信不立)’의 사회적 증명이다. 신뢰 없이는 개인도, 사회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주가는 자신의 모든 행동으로 신뢰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의 네트워크는 이익 공동체가 아니라 신뢰 공동체였다.

서양의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이를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개념으로 탁월하게 설명했다.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정보나 기회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강한 연결)가 아니다. 오히려 가끔 연락하는 다른 부서의 동료나 동호회 회원(약한 연결)이라는 것이다. 이 과장과 박 선임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강한 연결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약한 연결은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고 위기 시에 예상치 못한 도움을 준다.

오늘날의 조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부서 간의 장벽은 높아진다. 이런 환경에서 최고의 인재는 자기 부서의 일만 잘하는 전문가가 아니다. 부서의 경계를 넘어 필요한 사람과 정보를 연결해내는 ‘네트워크 직공’이다. 그들은 공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15분의 커피 타임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 그들은 이메일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과거에 자신이 베풀었던 작은 친절을 먼저 떠올린다. 이 비공식적이고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조직의 경직된 동맥을 뚫고, 혁신과 문제 해결의 피를 돌게 한다. 당신의 연봉은 당신의 직무 기술에 대한 대가일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진짜 가치는 당신의 이름 석 자가 가진 신뢰의 무게로 결정된다.


5. 내일 실천할 3가지

관계 자본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의도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을 조직의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허브로 만들어 줄 최소한의 실천 지침이다.


기록하라: 나의 도움 지도 그리기

최근 한 달간 업무적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 5명과 도움을 준 사람 5명을 각각 적어보라. 당신의 네트워크가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받기만 하는 관계는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예상 소요 시간: 15분, 노트에 정리)



연결하라: 목적 없는 15분 투자하기

일주일에 한 번, 다른 부서의 동료에게 커피를 사겠다고 제안하라. 단, 어떠한 업무적 용건도 꺼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라. 이것은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위한 순수한 투자다. (기대 효과: 약한 연결의 강화)


제공하라: 먼저 돕는 사람이 되어라

사내 메신저나 협업 툴에서 다른 팀의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신이 아는 작은 정보나 팁이라도 먼저 제공하라. 5분의 작은 친절이 미래에 1시간을 벌어줄 신뢰의 씨앗이 될 것이다. (측정 방법: 주 1회 이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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