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다음 할 일

by 조우성 변호사

<T공자의 까칠한 조언> 부모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다음 할 일


토요일 오전 10시, 스타벅스 창가 자리. 결혼을 넉 달 앞둔 이수연(35) 씨는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관자놀이를 눌렀다. 신혼집 문제였다. 그녀와 예비 신랑은 직장과 가까운 마포의 한 아파트로 겨우 예산을 맞췄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도 집은 강남에 있어야지. 잠실 그 아파트는 어떠니. 5억 정도는 보태줄 테니.” 5억은 고마운 돈이다. 그러나 그 돈은 부모의 지분이고, 간섭의 명분이 될 터였다. 이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집의 문제가 아니다. 독립의 문제다. 성인이 된 자녀의 삶에 부모가 설정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부모의 기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 포장을 뜯으면 ‘통제’라는 단어가 나온다. 자녀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부모의 지원을 거절하는 것은 배은망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인의 삶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이다./ 부모의 돈으로 얻은 안락함은 종종 자기 결정권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관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자의 선 긋기


이런 상황은 2500년 전에도 존재했다. 『논어』 「이인(里仁)」편의 한 구절은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사부모기간, 견지부종, 우경불위, 노이불원.)

"부모를 섬길 때에는 완곡하게 간언해야 한다. 나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공경함을 잃지 말고 그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로 인해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흔히 무한한 공경과 인내의 아이콘으로 인용된다. 그러나 T공자의 시선은 다르다. 이 문장의 핵심은 ‘불원(不怨)’, 즉 원망하지 않는 마음에 있다. 원망은 왜 생기는가? 내 책임이 아닌 것을 억지로 책임지려 할 때 생긴다. 공자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효도의 유효기간


전통 해석은 ‘우경불위(又敬不違)’, 즉 공경하고 거스르지 않는다는 부분에 머문다. 그러나 원문의 진짜 칼날은 첫 단어 ‘기간(幾諫)’에 숨어있다. 기(幾)는 ‘희미하다’, ‘기미’라는 뜻 외에 ‘거의’, ‘가깝다’는 의미도 가진다. 즉, 부모의 잘못이 명확할 때가 아니라, 그럴 기미가 보일 때 ‘미리, 그리고 완곡하게’ 간언하라는 것이다. 이는 원칙 중심성에 기반한 T적 분별력이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개입하되, 그 방법은 부드러워야 한다는 현실적 조언이다.


다산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견지부종(見志不從)’, 즉 부모가 내 뜻을 따르지 않음을 본다면, 자식의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설득은 자식의 의무이지만, 선택은 부모의 권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최종 선택은 나의 권리다./ 공자가 만약 21세기 가족 상담사였다면, ‘자녀의 인생에 무단횡단하지 마시오’라는 푯말부터 세웠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 가족심리학이 말하는 ‘경계 설정(Boundary Setting)’의 원형이다. 자녀의 역할은 자신의 의견을 ‘정중히 전달’하는 데까지다. 그 의견을 부모가 받아들이고 말고는 부모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의견을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는 나의 영역이다. 공자가 마지막에 ‘노이불원(勞而不怨)’,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 것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을 책임지는 성숙한 개인에게 보내는 T적 격려다. /내 선택으로 인한 수고로움을 내가 감당할 때, 비로소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다./


결정은 통보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이수연 씨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그녀가 마포의 아파트를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설득’이 아니라 ‘통보’다. 예컨대 주말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저희의 미래를 위해 깊이 고민하고 의논했습니다. 저희 둘의 힘으로 시작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서, 마포 아파트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하지만, 이제 저희가 책임지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서운해할 것이다. “우리 말은 무시하는 거냐”며 화를 낼 수도 있다. 여기서 ‘우경불위’, 즉 공경하되 거스르지 않는다는 태도가 빛을 발한다. 부모의 감정은 존중해야 한다. 그들의 실망감에 맞서 싸우거나 가르치려 들지 마라. “서운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이건 저희 두 사람의 인생에 대한 중요한 결정이라서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과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것이 T적 공감의 핵심이다.


이제 당신이 그어야 할 선


부모의 기대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용기다. 그 용기를 위한 몇 가지 행동 원칙이 있다.

경제적 독립을 완성하라. 부모의 지원은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지원을 받는 순간, 당신의 발언권은 약해진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의 시작이다. 독립 없이는 어떤 경계 설정도 모래성과 같다.


결정과 통보를 분리하라. 중요한 결정을 부모와 ‘상의’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이다. 당신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통보’하라. 통보할 때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당신은 허락을 구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을 알리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설득은 두 번까지만 하라. 공자의 ‘기간’은 무한한 설득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신의 논리와 진심을 담아 한두 번 설명했다면, 역할은 끝났다. 반복되는 설명은 논쟁이 되고, 논쟁은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그 이후에는 행동으로 증명하면 된다.


부모의 감정을 책임지려 하지 마라. 부모의 실망감은 당신의 불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가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주인은 부모다. 당신은 그들의 감정을 위로할 수는 있지만,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독립된 개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켜야만 한다. /그것이 독립의 대가이고, 어른의 숙명이다./


효도의 완성은 복종이 아니라 독립이다. 그리고 진정한 독립은 부모 역시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선택하라. 그리고 그 선택을 원망 없이 책임져라. 2500년 전 공자가 했던 조언의 진짜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공자의 '피드백 루프'는 냉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