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자의 역설—온화함이라는 가장 치열한 싸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회의를 마친 사람들이 각자의 층으로 흩어진다. 누군가는 주먹을 쥔다. 누군가는 입술을 문다. 순간의 모욕, 부당한 질책, 억울한 평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말해야 했던 것들, 쏟아내야 했던 분노가 식도를 긁는다.
그러나 문은 열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참은 것인가, 삼킨 것인가. /일상은 이렇게 미세한 전쟁의 연속이다./
중국의 고전 『채근담』은 이렇게 말한다.
"燥性者,火熾,遇物則焚。寡恩者,氷淸,逢物必殺。凝滯固執者,如死水腐木,生機已絶。俱難建功業而延福祉."
성질이 급한 사람은 타는 불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태워버리고, 은덕이 적은 사람은 얼음처럼 차가워 닥치는 것마다 반드시 죽여버리며, 마음이 막혀 고집스런 사람은 죽은 물이나 썩은 나무와 같아서 생기가 이미 끊어져 버렸으니, 이 모두 공적을 세우고 복을 누리기 어렵다.
# 불처럼 타오르고, 얼음처럼 얼어붙고
『채근담』이 해부한 세 부류의 인간.
첫째는 급한 성질의 소유자다. 그는 불과 같다. 만나는 것마다 태운다. 그의 말은 즉각 발화하고, 그의 행동은 지체 없이 폭발한다. 옳다고 믿는다, 그 순간만큼은. /그러나 그가 지나간 자리엔 재만 남는다./ 관계는 끊어지고, 신뢰는 무너지고, 기회는 소실된다. 한순간의 통쾌함을 위해 긴 시간의 축적을 포기하는 셈이다.
둘째는 은덕이 적은 자다. 얼음과 같다.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화를 내지 않는다—다만 냉소한다. 비웃고, 무시하고, 외면한다. 그의 침묵은 분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생명이 없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한다. 현명하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은. 그러나 그의 세계는 점점 좁아진다.
셋째는 고집스럽게 막힌 자다. 죽은 물, 썩은 나무다. 생기가 끊어졌다. 변화를 거부한다. 과거의 방식, 낡은 신념, 굳어진 편견에 매달린다. 일관되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비켜간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고, 나무는 자라지 않으면 마른다.
우리 모두는 이 세 유형 중 하나다. 혹은 그 혼합체다.
# 순간의 쾌감이 가져오는 긴 시간의 대가
문제는 이것이다—순간의 감정 분출이 가져오는 손실을, 우리는 정확히 계산하지 못한다.
심리학은 말한다. 분노는 편도체에서 시작되어 0.2초 만에 뇌 전체를 장악한다고.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한다. "왜 그랬을까." "참을 걸."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 번 깨진 신뢰는 복구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건 역설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이 강하다고 느낀다. 순간적으로는 그렇다.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가 가장 약하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반면 참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약해 보이지만, 그는 가장 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온화함은 세계를 다르게 보는 힘이다.
# 억제가 아니라 전환이다
그렇다면 온화함이란 무엇인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인가. 분노를 삼키는 것인가.
아니다. 진정한 온화함은 억제가 아니라 전환이다.
불교는 분노를 '진(瞋)'이라 부르며 탐욕, 어리석음과 함께 삼독(三毒)으로 규정한다. 왜 독인가. 분노는 우리 자신을 먼저 중독시키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순간, 가장 먼저 상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심장은 빨리 뛰고, 혈압은 오르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폭발한다. /타인을 향해 불을 지르지만, 그 불은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태운다./
온화함은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는 나를 공격한 게 아니라, 자신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는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연민에서 출발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다. 나 역시 실수하고, 상처받고, 두려워한다. 이 인식이 온화함의 시작이다.
# 매일의 작은 선택이 만드는 운명
온화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성품이다.
아침 식탁에서, 회의실에서, 퇴근길 지하철에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삼키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쌓인다. 처음에는 고통스럽다. 마치 근육을 단련하듯,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품이 되고, 성품은 운명이 된다./
인생의 모든 성취는 결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업의 성공, 조직에서의 승진, 가정의 행복—모두 관계의 산물이다. 온화한 사람은 관계를 쌓는다.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그의 말은 신뢰를 만들고, 그의 행동은 존경을 낳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영향력은 커진다.
반면 급한 성질의 사람은 순간의 승리를 얻고 긴 전쟁에서 패배한다. 차가운 사람은 혼자 남는다. 고집스런 사람은 세상의 변화에서 낙오된다.
결국 온화함은 생존 전략이다. 약자의 비굴함이 아니라, 강자의 여유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동서고금의 지혜가 공통으로 가르치는 진리다.
온화함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매일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수십 번의 선택 앞에 선다. 화를 낼 것인가, 참을 것인가.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불처럼 타오르며 모든 것을 태울 것인가. 얼음처럼 차갑게 모든 것을 죽일 것인가. 썩은 물처럼 고여 있을 것인가.
아니면 흐르는 물처럼, 자라는 나무처럼, 온화하게 강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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