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8월 3일,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항해사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는 스페인 팔로스 항을 떠났다. 산타 마리아, 핀타, 니냐 세 척의 범선에 90명의 선원을 태우고 서쪽으로 향한 이 항해는,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왕은 자신의 왕관을 톨레도 대주교에게 맡겨 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두 달여의 항해 끝에 선단은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다. 콜럼버스는 그곳을 인도의 일부로 확신했고, 원주민들을 '인디오'라 불렀다. 이듬해 3월 스페인으로 귀환한 그는 4월 바르셀로나에서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알현하고 항해 결과를 보고했다. 7명의 원주민과 녹색 앵무새를 동행한 그의 행렬은 각지에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금이나 향신료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왕실은 가능성을 보았고, 같은 해 17척의 대선단을 편성하여 2차 항해를 지원했다. 콜럼버스는 네 차례의 항해를 수행했으나 끝내 황금의 땅을 찾지 못했으며, 1506년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도달한 곳이 아시아라고 믿었다. 신대륙이라는 사실은 후에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밝혀졌고, 그의 이름이 대륙의 명칭이 되었다.